슬픈 아름다움을 간직한 동양의 하와이
머리로는 당연히 그렇다. 오키나와현(沖縄県)은 일본을 구성하는 47개의 도도부현(都道府県)중 하나이며, 일본어와 일본 화폐를 사용한다. 일본 최남단에 위치한 휴양지로, 전설적인 J-Pop 가수 아무로 나미에를 배출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마음으로는 대답을 망설이게 된다. 오키나와를 생각하면 일본을 떠올릴 때와 달리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지기 때문이다. 오키나와의 역사가 우리나라의 그것과 닮아있어서일 것이다. 바로 일본 본토에게 점령당한 식민의 역사다.
일본 열도와 662km쯤 떨어진 오키나와 본섬은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 고유의 문화를 꽃피웠던 류큐 왕국의 중심이었다. 주변의 크고 작은 섬까지 통치했던 류큐는 중국에 조공하며 조선 왕조와도 독자적인 외교를 펼쳤던 독립 왕국이었다. 그러던 1609년, 지금의 가고시마현인 사쓰마번의 침략을 받았고, 메이지 시대인 1879년 끝내 일본에 병합되었다. 해외에서 류큐 독립을 호소하던 외교관들은 자결했으며, 국왕은 도쿄로 끌려갔다. 불과 31년 후 대한제국이 겪은 굴욕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강제 징용과 수탈 등으로 태평양 전쟁의 희생양이 된 점도 비슷하다. 특히 오키나와 전투(1945년)에서 일본은 본토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파제로 오키나와를 이용했다. 수많은 청년이 강제로 징집되었으며, 무고한 주민들도 총알받이로 희생됐다. 패배가 확실해지자 일본군은 오키나와인을 '잠재적 스파이'로 여겨, 싹을 잘라내기로 한다. '미군에게 잡히면 남자는 사지가 절단되고 여자는 강간 후 살해당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집단 자결을 강요하거나, 이를 어길 시 수류탄을 던져 학살했다.
고작 석 달 동안, 15만 명에 달하는 민간인이 오키나와의 상징인 히비스커스 꽃처럼 붉게 졌다. 생존자는 ‘지옥’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의 일본군 성노예(이른바 '위안부') 피해자를 대하듯, 오키나와 전투 피해자에게도 에두른 '유감의 표시'와 역사 왜곡으로 대응하고 있다.
'오키나와는 일본일까'라는 질문에, 제삼자인 나조차 쉽사리 수긍할 수 없는 이유다.
고대 국가인 류큐에는 예로부터 다양한 토박이말, 또는 '시마쿠투바(しまくとぅば, 섬말)'가 존재했다. 오늘날 오키나와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말로는 아마미어, 구니가미어, 미야코어, 오키나와어, 야에야마어, 요나구니어가 있으며, 모두 유네스코 소멸 위기 언어로 등록되어 있다. 편의상 '류쿠어'라고도 부르는 이들 언어 중 일본어와 상호 소통이 가능한 것은 없다. 굳이 비교하자면, 영어와 독일어와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한다.
류큐 왕국의 고유 문화인 류큐어가 본격적으로 억압받기 시작한 것은 1907년부터다. 일본이 '방언 단속령(方言取締令)'을 선포한 것이다. 모든 교육이 일본어로 이루어졌고, 교실에서 아이들이 류큐어를 사용하면 벌을 주었다. 조선 땅에서 '창씨개명(創氏改名)'을 강요하고 조선어 사용을 금지한 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1945년 광복을 맞이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오키나와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1970년대까지 이어지면서 토박이말이 대부분 자취를 감추었다. 다만, 오키나와에서 들을 수 있는 독특한 일본어 '우치나야마투구치(ウチナーヤマトゥグチ)'에서 류큐어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소멸 위기 언어를 보존하거나 되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멸종 동물은 암수 한쌍을 교배하면 새로운 개체가 탄생하지만, 언어는 다르다. 부모의 언어는 자동으로 자녀에게 상속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 간 내 작은 외삼촌과 고모는 한국어가 모어지만, 미국 시민권자인 두 딸은 영어밖에 구사하지 못한다. 환경과 선택이라는 변수가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멸 언어를 지키려는 사람들은 계획을 세운다. 언어를 배우기 좋은 조건과 학습 동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언어학자들은 이러한 노력을 세 가지로 나누는데, 바로 언어 위상 계획(status planning)과 언어 자료 계획(corpus planning), 그리고 언어 획득 계획(acquisition planning)이다.
먼저 위상 계획이란 말 그대로 언어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다. 오키나와의 경우 류쿠어가 일본어보다 열등한 사투리가 아니라 소중한 지역 전통이자 자산임을 선언하는 데서 출발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오키나와 현청에서 2006년에 발표한 '시마쿠투바의 날에 관한 조례(しまくとぅばの日に関する条例)'를 꼽을 수 있다.
"현내 각 지역에서 세대를 넘어 계승되어온 시마쿠투바가 오키나와현 문화의 기반이며 시마쿠투바를 다음 세대에 계승해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에 비추어, 시마쿠투바에 대한 현 사람들의 관심과 이해를 증진하고 시마쿠투바의 보급과 촉진을 더욱 도모하기 위해 시마쿠투바의 날을 제정한다(県内各地域において世代を越えて受け継がれてきたしまくとぅばは、本県文化の基層であり、しまくとぅばを次世代へ継承していくことが重要であることにかんがみ、県民のしまくとぅばに対する関心と理解を深め、もってしまくとぅばの普及の促進を図るため、しまくとぅばの日を設ける )"
이어서 자료 계획은 문법이나 단어, 표기법 등을 정리함으로써 언어의 체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류큐어는 우리나라말처럼 '한글'이라는 독창적인 문자가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본어의 히라가나(ひらがな)나 가타카나(カタカナ)를 사용한다. 하지만 '오키나와어 사전'이나 '요나구니 말 사전' 등 류쿠어 단어를 수록한 사전이 속속 등장하는 추세이며, 일본어와 차별화된 문법을 연구하는 학자도 생겨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획득 계획은 다음 세대에 언어를 물려줄 수 있도록 교육을 지원하고 확대하는 활동을 일컫는다. 불과 몇 년 전인 2013년, 나하시 교육청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류큐어 교재 '시마쿠투바로 말하며 놀자'를 배포했다. 이듬해에는 오키나와현교육위원회에서 고등학생을 위한 교과서 '고향의 말'을 발간하기도 했다. 류큐어 중 가장 우세한 한 가지 언어만을 싣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여러 언어를 포함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부 오키나와인은 전통 언어를 지키는 데 힘쓰기보다는 더욱 완벽한 '일본화'를 이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일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는 극소수 단체도 존재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은 먹고 살기 바쁜 나머지 류큐어에 대해 신경 쓸 겨를이 없을지도 모른다.
외국인인 나는 오키나와가 어떤 정체성을 택하든, 그것이 자주적인 선택이었으면 좋겠다. 일본 국토 면적의 1%에도 미치지 않지만, 여전히 전국 미군 기지의 70% 이상이 들어선 그 땅이 식민지의 색채가 완전히 지워진 진정한 '평화의 섬'이 되기를 바란다. 외국인에 불과하지만, 동일한 아픔을 간직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정도는 기원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대학원 논문에 실은 인터뷰 내용을 번역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Q.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언어 보호 활동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A. 오키나와에 있는 평범한 가정과 일상생활에서 류큐어가 쓰이도록 유지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말씀하신 목적을 이루려면 무엇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까요?
A. 류큐어를 모어로 구사하는 부모나 조부모 세대의 인식 변화와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류큐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옛날 일본의 교육 정책으로 인해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분이 많아요. 제 부모님도 처음에는 제가 오키나와어로 말을 걸어도 일본어로만 답하곤 하셨어요. 지금은 생각이 바뀌셔서 오히려 제게 오키나와어를 가르쳐주십니다. 가정 내에서 최고의 선생님이시죠.
Q. 류큐어를 보전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오키나와의 정체성과 문화, 가치를 계승하는 일이니까요.
Q. 일본어가 우세한 현실에서 류큐어를 활성화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A. 일본어를 먼저 배우더라도, 이중언어(bilingualism)의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저 역시 일본어와 오키나와어를 함께 구사하고, 딸에게도 오키나와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Q. 또 다른 어려움이 있다면요?
A. 류큐어 안에서도 여러 갈래의 언어가 있기 때문에,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에 대한 갈등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선은 할 수 있는 언어부터 자료를 만들고, 연구를 지속하며 범위를 넓히거나 조금씩 개선해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