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 싶은 날들
이틀 동안 오두막에 있었다. 인터넷도 잘 되고, 편안한 곳이었지만 어쩐지 고립을 자처하고 싶었다. 비밀을 만들고 싶었달까.
몇 시간이나 매달려 장작에 불을 붙였다. 성냥 두 통을 날리고, 아까운 올리브유를 쓰고, 갖고 있는 종이를 태우고, 끝내 찾은 유튜브에서 하는 말은 '장작불 피우는 방법 중 망하는 법 : 종이 태우기'였다. 종이컵에 휴지를 넣고 기름을 부은 후 불을 붙이니까 잘 타더라. 이걸 보면서 나의 유튜브 성장기를 떠올렸다. 그 어떤 노력을 해도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큰 한방을 어찌어찌 만드니까 불이 붙는다. 이게 붙은 거야? 싶은데 불씨가 있다. 불이 닿지 않았던 곳에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걸 지켜본다고 불이 더 잘 붙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걸 계속 들여다보고 있었다. 매연을 마신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다가간다. 가히 중독적이다. 결국 불이 꺼지고 말았다. 다 탔구나, 하는 순간 일렁이는 불꽃을 봤다. 아직 열기가 남아있을 것이다. 태우는 방법을 알았으니, 더 넓은 화로와 불이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왜 옛날 사람들이 불을 신성시했는지 알 것 같은 순간이었다.
첫날 한 요리. 집에서 할 때는 능숙했는데, 익숙하지 않은 식기로 칼질을 하려니 어색했다. 바질을 힘들게 사 왔는데 밖이 너무 추워서 오는 길에 대부분 얼어버렸다. 그 안에서 나름 괜찮은 녀석들을 골라 데코를 했다.
아주 나 같은 색깔의 가방들. 코토팍시 가방은 작아 보이지만 3L나 들어간다. 전자책을 수납할 수 있을 정도다. 이 가방을 보면 캐나다 생각이 날까. 그럴 것 같다.
책을 열심히 읽었다. 책은 내게 조용히 가르침을 준다. 더 다정해지라고, 사려 깊어지라고, 반성하라고, 심각해지지 말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라고 말한다.
춥고 고요한 시간이었다.
오늘은 다른 숙소로 옮기는 날이었다. 이제 캘거리로 가는 이동만 마치면 캐나다 여행도 끝이 난다. 한국이었다면 연말이 시원섭섭하고 아쉬웠을 것 같은데 이곳에서 보내는 연말은 몹시 단순하다. 짐을 싸고, 짐을 풀고. 추워도 참고 샤워하고, 안도하고. 매일 새로운 핫팩을 뜯고, 산책하고. 얼음이 맺힌 속눈썹을 무겁게 깜빡인다.
밴프에서 소중한 발이 되어준 2번 버스. 이상하게 내가 가려고 하는 모든 곳에 정류장이 놓여있고, 단순하게 연결된다. 창이 크고 넓어서 좋다.
오늘은 한식을 먹었다. 한국에서도 안 먹는 컵밥... 동네로 돌아가면 먹어봐야겠다. 이상하게 외국에서는 한국 음식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음식이 주는 위안이 이렇게 크다니. 다음 장기 여행 때는 음식을 좀 더 다채롭게 챙겨봐야지.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기쁘고 소중하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총 14통, 가격은 39달러. 아니 무슨 엽서가 이렇게 비싼가요? 그래도 뭐 어쩔 수 없다.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기쁨을 보낸 것이니. 우표가 클 줄 알고 여백을 넉넉히 남겼는데 작은 우표였다. 이렇게 깨닫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더 긴 편지를 쓰자. 연말을 맞아 나에게도 한통 써봐야겠다.
촌스럽지 않다. 예쁜 우체통이다. 포르투 생각도 난다.
우체국에 들른 후 과수와 산책을 했다. 서프라이즈 코너 뷰 포인트에 가는 여정이었다. 날이 워낙 추워서 가는 길에 왼쪽 새끼발가락이 얼었다. 이렇게 캐나다에 발가락을 두고 오나 싶었다. 새끼발가락이 삶에서 큰 역할을 하진 않았지만 없으면 크게 허전할 거라 믿는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게 없구나.
봐도 봐도 신비로운 풍경. 모락모락 김이 올라가는 게, 여기에 사람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좋다. 내가 있는 곳도 김이 피어오르겠지.
맡겨둔 짐을 찾고 새로운 숙소로 이동한다. 이번 숙소는 일주일 머무는 곳이다. 별점이 4.98로 한 번도 본 적 없는 평점.
캐리어를 여러 번 챙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자주 되새긴다. 잔걱정이 많구나 나는. 모자 욕심이 많고. 가방도 참 좋아해. 패딩류만 대체 몇 개인 걸까? 전자기기를 좋아해서 충전선만 8개는 되는 것 같다. 다행히 가져온 물건들 전부 잘 사용하고 있다. 안 입을 줄 알았던 롱패딩이 오늘 유용하게 쓰였다.
다시, 2번 버스를 타고 간다. 대체로 할아버지 기사님이다.
새로 도착한 숙소. 이렇게 예쁜데 에어비앤비에 올라온 사진을 보면 이상하다. 인테리어도 잘하면서 사진은 잘 못 찍는 호스트 같다. 카우보이 콘셉트로 꾸며져 있다. 클릭비의 카우보이 노래를 혼자 떠올렸다는 것은 나만의 작은 비밀...
주방에서 이렇게 산이 보인다. 오늘은 유난히 설산이 노랗게 빛났다.
저녁거리를 사러 과수와 함께 나섰다. 멀지 않은 곳에 괜찮은 마트가 있다. 이곳은 채소가 특히 신선하여 마음에 들었다. 소고기도 무척 싼 편이었다. 저녁은 불닭볶음면과 스테이크, 그리고 샐러드였다. 스테이크가 마음에 드는 굽기로 구워져서 기뻤다. 소중한 순간이었지만 사진을 찍지 않았다. 내가 사진을 너무 쉽게 찍는 것 같아서.
욕심이 드는 풍경이긴 하다.
내일도 나는 침잠하고 싶다. 한국에 돌아오면 다시 어딘가에 숨고 싶다. 내일도 핸드폰을 보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