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 가우디 투어

by 이연

문득 깼다. 사방이 짙게 어둡다. 몇 시쯤 됐을까. 분명 새벽일 것이다. 나의 시차 적응 패턴이야 뻔하다. 어제 체한 건 생체 리듬 때문일 수도 있어,라고 생각하면서 어둠을 더듬이고 불을 켠다. 여긴 방도 전구색을 쓰네. 거리의 시간이 멈춘 느낌이 드는 이유는 아마 꽉 찬 주홍빛 때문일 것이다. 눈을 뜨니 바르셀로나. 오늘은 가우디 투어를 하고. 어제 다녀온 바닷가는 정말 좋았다. 처음 보는 푸른색이었어, 여러 번 머물고 싶은 풍경, 바람이 털어주는 신발 속 모래, 라디오를 들고 와서 춤을 배우는 사람들. 어제 빠에야도 정말 맛있었지. 행복한 기분이 계속 들어.







볼드모트인가. 별로 이름을 부르고 싶지 않은 이와 굉장히 닮은 사람을 봤다. 다르지만 머리도, 옷도, 손도, 안경도, 체형도 다 닮았다. 불편한 심정으로 자꾸 눈이 가는 내게 조용히 타일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너무 스스로를 나무라지 말라고.







춥다. 다시는 카페인을 먹지 않을 것이다. 그게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 싶겠지만 내겐 지대한 영향이 있다. 커피를 먹으면 몸이 많이 약해진다.







오늘은 정말 더운 샤워를 해야겠다.






가우디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스탠리 큐브릭과 스티븐 잡스가 생각났다. 이들은 모두 천재구나. 천재들은 공통점이 있다. 완벽주의에 고집불통, 그래서 주변인들은 다소 괴롭다. 그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있는 것. 시대를 초월하는 통찰력. 가지 않은 길을 먼저 닦아 비추는 것. 가우디의 섬세함을 느꼈던 오늘 중 가장 좋았던 것은 그가 디자인한 의자에 앉은 것과 부드러운 성당 벽을 쓰다듬은 일이었다.







관광지를 지나며 하는 생각. 살면서 지나가다 찍힌 내가 몇 장이나 될까. 우연이 담긴 화상들.







춥다. 일기에 춥다는 말을 적은 횟수는 내 생각에 한참 못 미친다. 길을 걸으며 계속 춥다고 내뱉고 다녔어. 이상한 날씨다. 바람이 차갑고 하늘은 회백색이 됐다. 투어는 좋지만 어쩐지 기운이 빠진다. 오래 친구와 있을 때 지친 기색을 못 감추는 것처럼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모든 음식을 반 이상 남겼고 걸음도 터덜터덜. 젖은 휴지처럼 걸었다. 타인의 흐름에 나를 맡기는 것은 이따금 편리하지만 자주 지치는 일이다.


영화 아멜리에에서 보고 참 먹고 싶었다. 생각보다 더 좋았다.







사진이 많이 남았다. 하지만 난 남이 찍어주는 사진을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색한 웃음과 어정쩡한 내 포즈가 싫다. 혼자 오면 좋은 배려로 먼저 찍어주겠는 분들이 계신다. 그 따뜻함을 감히 거절할 수 없어 응하지만 내겐 필요하지 않은 사진들이다.







여행을 오기 전 명함을 잔뜩 만들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려고. 오늘 많은 사람을 만났고 정겹게 이야기를 나눴지만 단 한 장도 주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든 기억되는 일을 피하고 싶어 졌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우스운 일이다. 지나가는 풍경처럼 사람을 잡지 않고, 어떤 대화를 기다리는지 알 수 없는 자신을 헤아리며 걷는다. 그럼에도 가방에서 채 빼지 못한 명함 열 장은 대체 뭔지. 이게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님을 알면서. 제일 잘 알면서.







눈 앞이 흐리다. 이 모든 피로는 춥기 때문이야. 추위는 차마 거짓으로도 좋다고 말 못 한다. 감기약 두 알을 삼키고 누워 심통이 난 듯 일기를 적는다. 겨우 여섯 시인데 아홉 시였던 어제의 귀가보다 말도 안 되게 지치는 건 왜일까. 가우디 투어는 좋았고 힘들었다. 과거의 내가 들어볼래? 한다면 나는 글쎄. 안 들어도 좋은 하루 보냈을 거야.라고 대답해줄래. 내일은 지치지 않는 여행을 하고 싶다. 이따가 몸이 좀 괜찮아지면 분수를 보러 가야겠다. 교통권은 여섯 번 썼다.


조명이 아니라 햇빛이다






빠에야는 익히지 않은 쌀로 만드는 거라 저녁엔 체하기 쉽다고 했다. 아! 그래서 그랬군요. 어제 나는 호되게 체했었어요. 힘든 귀가였답니다. 내일은 편안의 날이에요. 자주 쉬고. 그럴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