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의 천국 바르셀로나
언제나 늘 아침밥을 챙겨 먹는다. 오늘의 메뉴는 샐러드와 파인애플, 계란과 소시지. 그리고 포장해온 티라미수를 꺼냈다. 티라미수는 한 입만 먹을 생각이었는데 한 입 남기고 다 먹어버렸다. 이로써 카페인 안 먹기는 오늘도 실패했다. 어쩐지 커피 덫이 많은 나라다.
카사 바트요에 다녀왔다. 가우디의 작품들을 직접 만질 수 있어 좋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편안하다. 자연과 인간을 많이 사랑한 예술가였다. 그를 보며 영감을 얻는 방식을 배운다. 친절한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도 좋았다. 하긴, 입장료가 24.5유로나 하는데.
내가 사랑한 유럽, 이라는 카피가 계속 떠오르는 장면들이 눈 앞을 자주 스친다.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다.
점심은 햄버거를 먹었다. 먹으며, 내가 비행기 타고 온 곳은 바르셀로나가 아니라 천국이었구나, 하고 잠시 충격을 받았지. 점심에 또 체한 듯 속이 좋지 않았는데 햄버거를 먹으니 나았다. 이상하고 기적 같은 일이다. 이 정도 맛있는 빵과 패티, 신선한 야채라면 햄버거는 해로운 음식이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살에는 도움이 안 되겠지만.
점심식사를 마친 후 유명한 스파 브랜드를 전부 가보았다. 여기가 말로만 듣던 고딕지구인지,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전날 가이드님이 가보라고 한 곳을 저장해 놓으니 다 비슷한 구획 안에 있어서 열심히 거리를 누볐다. 옷들의 색감이 굉장했고 질도 좋았다. 한국에서 자라를 갈 때마다 자라나 H&M에서 대체 어떤 옷을 사는 건지 의문이 많았는데 스페인 자라는 종류도, 퀄리티도, 합리적인 가격도 남달랐다. 하지만 정작 내가 사랑에 빠진 것은 망고였다. 헤매던 인생 가디건을 찾았다. 뜻밖의 코트도. 장식이 덜하고 색과 모양, 소재에 충실한 옷을 좋아하는데 그 옷들이 그랬다. 그러니 어쩌겠어, 다른 스파를 다 둘러보고 간 게 망고라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졌는데 심장이 요동쳐서. 결국 구매했다.
훌륭한 인테리어를 보는 것도 좋았다. 확실히 유럽에 오면 미술, 디자인으로 보고 배울 것이 지천에 널려있다. 계단의 디테일, 디스플레이에 쓰인 옷걸이, 한쪽만 접어놓은 소재, 색의 그라데이션. 엘리베이터, 점원들의 옷 전부. 초호화 H&M을 잊지 못한다.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에 왔다. 스페인에 오기 전 계획이라고 짠 게 여기 오는 거였다. 막연히, 그냥 그러고 싶어서.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 추천한다. 사실 미술을 전공했지만 의무감에 보는 고전 회화들이 내겐 좀 버거운 존재였다. 수없이 많은 그림들이 빽빽하게 채워진 방, 궁전이었던 공간을 바꿔 만들어 매우 큰 규모, 그림 속 실감 나는 눈동자. 허투루 볼 수 없는 대단한 그림들이 나를 지치게 했다. 여긴 입장하기 전부터 보드를 타는 젊은이들을 마주하며 색다른 인상을 받았다. 터가 딱 보드를 타기 좋게 생겼어. 넓은 크기와 경사, 적당한 장애물까지. 그들을 구경하다 들어선 미술관에 다시 놀랐다. 마치 다른 차원으로 넘어간 기분. 꿈결처럼 옅어진 보드 소리와 온통 흰색으로 된 높은 공간이 비현실적이다.
Blue라는 작품을 감상했다. 큰 화면이 내내 파란색이다. 그리고 파란색을 연상시키는 비와, 눈동자, 하늘, 슬픔, 파도 등을 내레이션이 읊조린다. 분명 화면은 멈춰있는데 영화를 보는 기분이 든다. 경험을 제공하는 미술, 이거 완전히 내 취향이잖아.
건물이 희다. 나는 공간의 점이 되어 일기를 적는다.
남은 일정은 쇼핑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내일은 동행과 여행하는 날이라 일정이 불투명하다. 가이드님께서 스페인 쇼핑은 바르셀로나에서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드리드에도 별로 없다고. 나는 어쩌자고 바르셀로나 in으로 들어온 것인가. 짚어주신 쇼핑 리스트를 점찍어 별자리처럼 이동했다. 우선 길에 있는 시장에 들렀다. 와우. 어느 나라를 가던 시장을 꼭 가보는 편인데 여기는 특히 활기차고 좋았다. 코코넛 주스를 꼭 먹어보라는 말에 반신반의로 시켰는데(원래 코코넛 주스를 싫어한다.) 이럴 수가. 매일 마시고 싶은 맛이었으니 여러분께도 추천드린다. 1.5유로에 팔고 있으나 안쪽엔 1유로 짜리도 있다. 맛에 반한 나는 두 번 사 먹었다.
시장을 나오니 좀 지쳐. 사실 어제보다 좀 긴장한 채로 나섰다. 나름 안전하다고 자부했던 내 가방을 보고 가이드님이 불안하다고, 옷 속에 그냥 숨기라고 조언해주신 것이 내내 신경 쓰여 핸드폰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다. 소매치기는 먹던 물, 쓰던 교통권, 과자, 닥치는 대로 훔쳐간다고 한다. 마술처럼 느낌도 안 난다는 말에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하는 반성과 긴장을 쥐어맸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지? 신발만 사고 가자. 하며 머리에 지도를 넣어 거리를 누비는데 카탈루냐 독립 시위대가 지나갔다. 연어들 사이에 끼어 이동하는 송사리가 된 기분. 한결 소음으로부터 홀가분해진 후 에스파드류 신발 가게에 도착했다. 한국말을 잘 하시는 사장님 덕에 편히 쇼핑했고, 마음에 드는 신발을 샀다.
그리고 지도를 보니 근처에 츄레리아가 있네! 안 갈 수 없어 간단히 저녁으로 먹을 겸 향했다. 줄이 짧아질수록 어떻게 주문해야 하는지 혼돈이 왔다. 그램 단위로 팔 줄은 몰랐어. 내 차례가 왔다. 머뭇거리며 small one..이라 대답하니 한국 어투로 '백 그람?'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니 '설탕?'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맙소사. 얼떨결에 '네, 주세요.' 해버렸다. 한국인 선배들이 닦아놓은 길을 편히 걸은 기분이라 걸으며 내내 웃음이 나왔다. 한 손엔 망고 쇼핑백. 그리고 다른 손엔 츄러스를 쥔 채 거리를 활보했다. 네, 저는 관광객입니다.
마지막 쇼핑 리스트는 비누였다. 아토피를 낫게 하는 기적의 비누라 불린다나. 그건 조카에게 선물하고 나는 향이 좋은 것으로 하나를 사야지, 했는데 정말 다 예쁘고 향긋해서 애먹었다. 마음을 접고 접어 두 개만 골랐다. 집에 와서 보니 그렇게 고른 것들이라 작고 소중하다.
집에 가려고 향하는데 좁은 골목에 사람들이 버글거려서 인상을 찌푸렸다. 먼발치 오페라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누가 노래 틀어놓고 공연하나, 짜증 섞인 마음으로 지나치려고 하는데, 맙소사! 그 노래가 라이브였다. 짜증 나던 마음은 금세 경이로움으로 바뀌었고 나는 제대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오래 그 음악을 들었다. 꿈인가 싶은 장면을 헤엄쳤다. 내가 살면서 본 버스킹 중 가장 많은 팁을 받은 공연인 듯싶었는데, 직접 본다면 누구든 이것을 무료로 보는데 어떤 죄책감까지 느껴 팁을 던질 것이라 생각한다. 옷만 평상복이고 장소만 거리였지 그들은 화려한 주인공이었고 공간을 오페라 무대로 바꿔놓았다.
이상하지. 바르셀로나는 밤거리도 사랑스러워.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라는 질문을 수없이 읊조렸다. 당연히 되지. 근데 이건 정말.... 완벽한 하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