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7일 : 달리 뮤지엄

by 이연

이젠 시차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자꾸 새벽에 깬다. 이상한 것들로 빚어진 꿈을 꿨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침으로 한국에서 가져온 라면을 먹었다. 에어비앤비에 머무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기에 조리 기회는 오늘이 유일하다. 평소 라면을 즐겨먹지 않지만 역시 타국에서 먹을 때는 맛있다. 계란은 두 개를 넣어야 섭섭하지 않지. 손수 챙겨간 무민 수저세트도 유용하게 썼다.


오모리 김치찌개 라면




마음이 두꺼워졌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일기를 읽고 여러 생각을 했다. 오래된 마음은 단단하고 두꺼워지는 걸까? 어쩌면 풍화되어 얇아져 툭, 끊겨 사라지는 걸지도 모른다. 거기엔 어느새 다른 마음이 자라고. 그러니까, 총량이 있는 거지. 여러 기분을 갖고 느낄 수 있지만 그 안에 차지하는 비중 때문에 이따금 어떤 기분에 지배당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아닐까? 아님 말고. 내 마음의 모양은 그렇다. 괴로운 일들은 두꺼워지지 않았다. 옅어지거나 날이 무뎌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많이 자랐다. 유럽을 처음 왔을 때 23살이었구나. 그렇게 말해도 사람들이 놀랐었는데. 그땐 더 어렸다.


바르셀로나 개선문





데이터 100메가는 다 달리 때문에 썼다. 돈도 약 35유로 쓰니까 달리 박물관 진짜 훌륭해야 해. 이 모든 게 다 일정 전에 잠수 탄 동행 때문에 생긴 일이지만 그래도 나름... 해결이 되긴 했다. 멍청비용이 다수 발생할 뻔했지만 그래도 무사히 마무리됐다.(지하철 1회 발생) 불쌍한 표정을 지으니 환불해주는 21유로란.. 불쌍하고 어려 보이는 외모가 한몫했다. 점심엔 어제 먹은 햄버거 가게를 또 찾아갔다. 메뉴를 너무 잘 시켜서 스스로 놀랐을 정도다. 번이 부시맨 브래드 같은 느낌이라니 훌륭해. 아깐 그렇게 배불렀는데 지금은 목이 탄다. 그래도 미정이었던 하루가 아주 스펙터클하게 흘러가니 재미있긴 하구나. 두 번 재밌으면 울겠다.


스페인식 감자튀김이다. 스틱형 감자튀김보다 훨씬 맛있다


잘못 끊은 표를 좋다고 사진찍었던 당시


이게 진짜였다





기차를 타니 한적하다. 오늘 뭘 했더라? 개선문에 다녀오고 햄버거를 먹으며 갑자기 달리를 보러 가야겠다고 다짐했어. 오후에 근교 당일치기를 가는 건 처음이다. 빠듯해. 집에 오면 열한 시가 넘겠지. 내일은 모자 쓰고 일찍 공항에 가야지. 브런치는 뭐, 여력이 되면 쓰고.








미술관은 건물부터 압도적이다.





이 그림을 보면 입이 떡 벌어진다






달리는 알았던 것이다. 고요의 어스름. 참을 수 없는 외로움과 공포를.






눈코 입도 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림







단단하지만 언제든 위태롭게 무너질 수 있는 인간의 물성


이 작가의 작업은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날 뻔 했다




그림을 좋아한다면 바르셀로나 근교 피게레스에 꼭 와야 한다. 가본 미술관 중 손에 꼽히게 좋았다. 달리의 손이 많이 닿은 박물관의 구조와, 다른 여러 작업들도 전부 훌륭하다. 뜻밖에 몰랐던 달리의 주얼리도 흠뻑 감상할 수 있으니 정말 추천한다. 도시는 한적하고 사랑스럽다. 왜 고향에 박물관을 세웠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은 꽤 피곤했다. 하지만 한 점도 후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