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8일 : 오랜 비행, 그라나다

by 이연

아침 일찍 나선다. 멀미약을 먹으니 더 멀미할 것 같은 이 속은 뭐지? 아이폰 7의 배터리는 정말 외출하는 시간만큼 유효해서 집에 오기 전 화면을 어둡게 하고 간신히 보는 지도는 정말이지 애잔하다. 어제도 간신히 귀가했다. 보조배터리는 거추장스러워서 잘 안 들고 다니게 돼. 오늘은 그라나다에 간다. 이거 게임 이름의... 됐다. 아무튼 스페인은 종일 흐릴 예정이다. 땅이 이만큼 큰데 대체 왜..! 네르하랑 바르셀로나 날씨가 같은 거야, 내 수영복은! 비가 와도 수영을 할 테다. 운치 있는 사진을 남기고 말 거라고. 사실 파리 여행 땐 비가 오면 그저 축축하고 기분이 별로였다. 다른 작가의 비 오는 파리는 왜 그렇게 예쁜지. 시선의 차이인가. 그러니 나도 어떤 날씨든 나름의 시선으로 담아내야지. 오늘쯤 되면 시차 적응이 거의 다 되어 더 자고 싶은 기미가 보이는데 비행기 때문에 그러지 못했다. 도착해서 내 소중한 목베개를 이용해 잠을 좀 자야지. 저가항공은 정말 서비스도 안락함도 저가형이기 때문에 마취한 듯 자는 게 상책이다.


안녕 바르셀로나





맥도널드 주문하는데 오백 년의 시간이 걸렸다. 사람들 진짜 느려..







스스로를 엄청 덤벙댄다 생각했는데, 나 정도면 꽤나 꼼꼼한 편이고 그래서 이따금 하는 실수가 커 보이는 것 아닐까, 하는 정신승리를 했다. 대체 1유로를 왜 떨어뜨린 거야.







내 방 물건들은 내가 죽으면 어디로 갈까? 어떤 물건이 나와 함께 오래 늙을까. 태어나지 않은 것들은 때로 창조자보다 오래 살고, 죽지 않는다. 나는 태어났기에 살 수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어릴 땐 그림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 좋았다.






목이 탄다. 도시 간 이동이 비행기로 1시간 30분이라니 이 땅은 얼마나 큰 거야. 오늘은 숙소에서 낮잠도 좀 자고 나와야지. 짐은 18.4킬로가 나왔다. 여행이 아직 2주 남았는데 어쩌려고 그래 연수야..


전용기를 탄다는 느낌으로.... 는 개뿔







얼탱이가 없다. 그라나다행 비행기가 기류 때문에 말라가에 착륙했다. 그리고 단체 버스를 태워준단다.. 정신 나갔냐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라가 공항






말라가에서 버스를 타고 그라나다로 가는 중이다. 버스가 왔을 때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날씨는 천진하게 맑아 도저히 미워할 수 없다. 이런 풍경을 두 시간 만끽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 할까? 이것도 경험이지 뭐.(라고 생각해놓곤 '안 해도 되는 경험'이라 되받아치는 자아)







진짜 힘들게 도착한 그라나다.. 피로가 풀릴 만큼 예쁘다. 밥은 많이 먹기로 했다. 아니 일요일에 왜 이렇게 휴무가 많아,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상처럼 웅장한 음악을 내적으로 재생하며 걷는다. 도착한 곳에서 고로상처럼 음식을 많이 시켰다. 타파스 두 개와 맥주, 샹그리아, 돼지고기 요리. 샹그리아는 첫날 먹었던 곳이 정말 맛있었구나. 아무튼 든든하고 좋은 식사였다. 술을 먹으니 기분이 요상해.







이런 야경은 일정에 없었는데. 울 것 같아. 여긴 아이스크림도 맛있고 분위기도 이국적이고 야경은 끝내주고.. 하..


아이스크림 케이크


가죽가방을 많이 판다


골목길 거리가 정겹다



알함브라 궁전이 왕관처럼 빛난다





데미안 라이스의 음악은 야경에 잘 어울린다. 좋은 위치의 가게에 앉아 녹차를 시켰다. 커피나 술을 먹기엔.. 휴. 최선의 선택이었다. 따뜻한 디카페인 월드에 가고 싶어. 다음엔 동남아?







가본 여행지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바로 스페인이다. 이밖에도 얼마나 멋진 나라가 많을까. 잘못 도착한 말라가도 어쩜 그리 느긋하게 돌아온 나인지. 마음이 많이 넓어졌다. 씻고 자면 시간도 딱 좋을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