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포스팅을 매우 많은 업로드 실패 끝에 올립니다. 호스텔 인터넷 사정이 이렇게 열악할 줄 꿈에도 모른 전부 제 잘못입니다.
여기도 스페인이야?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생소하다. 잘못된 주문에 생긴 시간의 틈, 나는 또 일기를 쓴다. 와인을 먹으면 졸리는구나. 바게트에 올리브 오일을 뿌리고 소금을 살짝 쳐서 먹으면 맛있다. 하몽과 와인을 샀는데 네르하에서 먹어야지. 하몽의 첫인상은 저걸 어떻게 다 먹어(큰 돼지다리가 매달려있다.) 였지만 실제로 얇게 잘라서 조금씩 판다. 바보. 당연히 그럴 텐데. 한팩을 2유로 주고 샀다. 원래 하몽의 가격은 모르지만 이게 저렴하다는 사실쯤은 알 수 있다.
메뉴 델 디아 - 스페인 오늘의 메뉴. 합리적인 가격으로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 이날 먹은 메뉴 델 디아는 10.5유로
길을 잃어 조바심에 걷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많은 거리를 거닌다. 그래 놓고 귀가 후 어? 나 다리 왜 아프지, 하는 미련함이란. 기상청은 역시 거짓말쟁이야. 날씨가 깨끗하고 맑다.
나스르 궁전, 다리가 가루가 될 것 같이 크다. 알바이신 지구를 멀리서 보니 평화롭고 예쁘구나. 어제의 전망대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며 속으로 몰래 인사를 했다. 이런 곳에 오면 왜인지 강박적으로 좋은 사진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괴롭다. 보면 또 눈으로 보는 것에 한참 못 미칠 텐데.
비가 온다더니 정말 날이 흐리네...
알람브라 궁전은 루브르 박물관만큼 고된 일정이다. 이걸 모두가 보고 간다고? 잘 걷는다 자신했는데 나는 진심 아무것도 아닌가 봐. 4시간을 꼬박 걸었다. 숙소가 가까운 게 눈물 날 듯 고마웠다. 그러나 한 곳을 빼고 왔으니. 알카사바. 저건 신 포도일 거야, 하며 모르는 척했으나 간신히 알함브라 티켓을 구매한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라고 적었지만 사실 무계획으로 있다 예매를 놓친 것이고, 친구가 소량 오픈한 소식을 전해줘서 구할 수 있었다.) 내가 그라나다에 또 올까? 그건 모르겠어. 하지만 알람브라 궁전은 힘들어서 또 안 올 것 같은데. 그냥 한번 더 힘들자. 하고 올랐다. 그나마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했다.
입구를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멋있네~ 하며 찍고 스쳐 지나간 것이 입구였다니. 아픈 다리 때문에 들어갈까 망설일 땐 다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들어서니 속으로 '와 진짜 생소하다.' 되뇌며 웃었다. 이전까지 봤던 아름다운 궁전, 정원과 확연히 달랐다. 정말 요새였다.
알바이신 지구 전경은 어디서 봐도 감동적이다. 그중 단연코 최고는 알카사바였다. 속이 뻥 뚫리는 요새의 꼭대기에서 도시의 여러 그림자를 보았다. 어쩐지 스페인엔 희소해서 소식이 궁금했던 정겨운 중국인의 이얼싼 소리도 즐겁게 들렸다. 사진을 찍을 때 주변 사람을 꽤 고려하는 편이다. 사람을 넣거나, 프레임에서 나갈 때까지 기다리거나. 전망대에선 사람이 나가길 기다렸다. 그리고 곧 모두가 나갔다. 뭐지? 아래를 내려다보니 사람이 없다. 응? 8시까진 한다고 했는데. 이얼싼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으악! 괜히 작은 심장을 부여잡고 급히 원형 계단을 내려왔다. 사람들이 있었다. 뭐야. 우연히 그 넓은 공간에 혼자 있었던 거였어. 무서웠잖아요. 안심한 나는 천천히 걸어 나왔다.
지금은 스테이크 가게에 와있다. 가볍게 샌드위치를 먹을까? 했으나 아니야. 오늘은 고생했으니 무겁게 스테이크다. 와인 한 잔이 저렴하고 맛있다. 조금 먹었을 뿐인데 나른한 기분이 든다. 이 가게는 예약이 전부 꽉 차 있어서 그냥 오픈 시간에 맞춰서 왔다. 훌륭한 선택이었어. 술을 시키면 안주같이 작은 음식을 준다. 보기엔 차가워 보였으니 컵을 쥐니 따뜻하다. 감자 수프 같은 맛이네. 깔끔하고 좋다. 본 메뉴가 기대된다.
너무 맛있다. 하지만 정말 고기만 덩그러니 나오다니. 이 올리브유에 버무린 소스는 뭐지? 정말 맛있다. 메뉴 설명이 상당히 귀엽다. 사이드 메뉴의 이름은 'Best friend'고 후식의 이름은 'Happy Ending'이다. 베스트 프렌드 웨지감자와, 디저트로는 크림 브륄레를 주문했다. 분명 여기라면 후식도 훌륭할 거야. 여행을 다니며 끼니는 대충 처리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예외지. 제대로 다 만끽하고 갈 테다. 실컷 걸은 탓일까 고로상처럼 여러 메뉴를 시켜 잘도 먹는다. 이런 내가 기특하구나. 많이 먹어. 내일도 행복하자. 드디어 고대하던 네르하에 간다.
온전히 내가 벌어서 온 여행이다. 지친 모습으로 앉아있던 과거의 모습이 전혀 헛되지 않았다. 으. 기분이 좀. 취한 느낌이야. 겨우 와인 한 잔에 이럴게 아닌데 스페인에 온 후로는 술을 조금만 마셔도 이렇다. 결론은 그래서 더 마시고 싶다고. 하지만 참아야지. 내일 네르하 호텔에서 하몽과 와인을 먹을 거니까. 수영도 해야지. 영법을 벌써 다 까먹은 것 같아 속상하다. 방금 떠오르는 살짝 뿌듯한 경험을 적어보자면- 수영 선생님에서 직업이 뭐냐고 물었다. 나는 퇴사했는데 어쩐지 일을 하고 있는 프리랜서 디자이너라 말했다. 주로 어떤 걸 하냐는 물음에 그래픽 디자인, 패키지, 브랜딩, 일러스트 전부 다 한다고, 수영 빼고 다 잘한다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아니라고, 수영도 잘한다고.(쓰면서 살짝 웃었다.) 흐흐. 자랑 맞아요. 나름 열심히 다니는 애제자였는데. 다 까먹은 것 같아요. 알람브라 궁전을 걷는 중 사람이 없는 구간에서 홀로 자유형을 하며 공기 중을 허우적댔다. 이거 맞나, 하며. 내일 다시 확인해야지. 여행 중 가장 기대되는 순간이다. 너무 큰 기대 하면 안 좋은데. 수영이라니 참을 수 없이 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