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름다운 말라가
아침에 일어나니 맑은 하늘이 날 반긴다. 어젠 정말 태풍이었나. 제주도를 여행할 때도 그랬다. 태풍 너구리가 온 날 가방 속까지 다 젖었다. 간신히 닿은 숙소는 전쟁 중 도피처같이 느껴졌지. 휴지처럼 지친 나는 재잘거리는 스무 살의 수다를 자장가처럼 들으며 종일 잠을 잤었다. 깨보니 하늘이 기적처럼 개어 있었는데, 대체 언제야. 4년 전 여름 기억이다.
문득 지난 인연에 대한 생각을 했다. 신기하게도 헤어지던 날 뭔가가 해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이별은 별게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였다. 나를 갖거나, 포기하는 쪽을 고르는 것. 그런 문제에는 언제나 답이 정해져 있다.
이곳이 바로 유럽의 발코니, 네르하입니다.
해변으로 내려갔다. 아아, 일찍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이 너무 아쉬운 풍경이었다. 여긴 천국인가?
말라가에 도착했다. 저번과 같은 불시착 말고. 의도치 않게 매일 다양한 음식을 좋은 퀄리티로 먹고 있다. 오늘은 이베리코 돼지 스테이크를 먹는다.
한없이 날씨가 화창하다. 바다도 아름답다. 모래 위에 앉는다. 아, 나는 여행 중이구나.
코인 락커에 큰 칸은 3.5유로짜리 토큰이 두 개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모르고 하나를 넣은 나는 그럼에도 잠긴 문 앞에서 당황해 몇 분을 서성였고 여행하는 중에도 그 짐은 잘 있을까.. 그걸 다 잃어버린다면 내 손해는 얼마일까.. 등을 생각했다. 짐은 무사했고 돈은 굳었다.
말라가는 정말 큰 도시고, 활기차며 아름답다. 느리게 걷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걸음을 늦췄다. 바다는 천국 같다. 아, 나도 해수욕하고 싶어. 친구랑 함께 여행하고 싶어. 한국에선 꽤나 인싸(인사이더)라고 자부했는데. 아웃사이더의 공허한 외침이다.
버스에 화장실이 있다고 한다. 정말? 저 계단 아래에 있는 걸까. 어쩐지 별로 마음이 가지 않아 미루고 있다.
여행을 하며 느낀 긍정적 현상은 생각이 줄었다는 것이다. 예전엔 무언가를 하며 그다음, 다음을 생각했다. 우울과 불행의 초점도 오지 않은 미래에 맞춰져 있었다. 지금은 내가 있는 곳이 너무 아름답다 보니 계속 현재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래도 버스 시간을 분 단위로 신경 쓴다. 우습지, 나는 내가 계획이 철저하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단순히 내 기준의 생각이었다. 남들은 나만큼 피곤하게 살지 않는다는 것을 근래 알았다. 뭐 어때, 나의 기질인걸. 나 같은 인간은 어디서도 잘 살 것 같다는 이야기를 늘 듣는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 지금 봐. 이렇게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다인실 호스텔은 정말 오래간만이다. 2층이라니? 사물함도 2층이라니? 옷걸이는 닿지 않는 곳에 매달려있었다. 이거 날 놀리는 건가, 싶을 때쯤 작은 간이 의자를 발견했다. 아.. 이해했어. 그래도 영 불편해, 하필 어제 묵었던 숙소가 호텔이어서 더 그랬나 보다. 그래도 간만에 한국어를 했다. 나는 여기가 불편하다고 했는데 다른 분들은 감지덕지하다고 했다. 맙소사. 앞으로 호스텔 길만 걸을 예정인데..
어쩐지 사진 업로드가 잘 된다 했다. 데이터를 쓰고 있었다니. TOC 호스텔은 와이파이를 밤이 되면 끊는 건가. 납득할 수 없는 불편함이다. 일기를 잔뜩 써놓고 차마 매일 업로드하지 못한 이유도 방에서는 와이파이가 안 되는 호텔에 머물렀기 때문이었다. 외국은 도대체 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밤이 되면 끊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끊기는 것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