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캄캄했다. 제발 7시는 넘었으면, 이게 매일의 소망인데 다행히 7시 30분이다. 과거의 나는 예상했을까? 너무 일찍 일어나는 것을 걱정하게 되는 때가 올 줄.
홀로 조식을 먹는다. 불편했던 어제에 비해 한결 여유롭다. 숙박이 하루 16유로고, 조식을 준다니 굉장히 저렴하다. 아침엔 숙소 관리자와 짧은 대화를 했다. 이럴 때 지난날의 전화영어가 도움이 된다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서 korea라고 대답했더니 North? South? 흔한(재미없는) 농담이 돌아왔다. 나는 남쪽에서 왔고, 김정은은 사실 자주 쓰는 이름이라 말했다. 그러니 그는 숙소에도 김정은이 몇 번 머물다 가서 너무 긴장했다고. 아 이건 좀 웃겼다.
유럽을 다니며 느낀 것은 좀처럼 극장이 없다는 것이다. 한국은 진짜 영화관이 많은데.(서울 한정) 내가 즐겨 가는 영화관만 근처에 3곳은 된다. 돌아가면 영화를 좀 보고 싶어.
어젠 문득 이번 여행 내내 길이 편하고 이질감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4년 전 독일에서의 저녁식사를 기억한다. 환청처럼 한국어를 들어 두리번거린 주변엔 온통 독일 사람뿐이었다. 어쩐지 굉장히 슬퍼졌다. 낯선 느낌. 섞일 수 없는 물질이 된 듯한 외로움이었다. 지금도 거리엔 나만 한국인이지만 그때와 같은 기분이 들지 않아 신기하다. 오히려 한국인 무리를 보면 더 외로운. 사실 모두가 섞이지 않지만 서로 붙어있는 분자들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게 슬플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
다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친구는 마음이 아픈 상태였다. 나는 리스본에 있지. 여긴 겨우 11시 56분이고. 한국은 조금은 지친 밤이다. 친구는 내게 대신 행복해달라고 당부했다. 내가 만약 행복하다 해도 너의 마음을 대신할 수는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알았다고 대답했다.
신트라에 가는 길이다. 그냥 리스본에 오면 신트라-호카곶을 가야 한다 해서 무작정 왔다. 내 계획에는 디테일이 없다. 사실 이건 나라는 사람 전반에 깔린 특징이다. 그림을 그릴 때도 디테일한 묘사를 하지 않고, 러프하며 시원시원하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언제나 명확한 것들에 사로잡힌다.
점심을 먹으러 왔다. 신트라에 도착하니 다들 분주하다. 아니 나만 배고파? 12시 20분인데. 일부러 사람들이 가지 않는 방향에서 가게를 찾았다. 스테이크! 좋아, 힘들 예정이니까 든든히 먹을 거야.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며 내게 되물었다.
-왜 벌써 힘들지?
대답했다.
-생각해봐. 한국에서 매일 돌아다닌다고. 그거 되게 피곤한 일이야. 지금 며칠째 늘 어딘가를 보고, 경험하잖아. 당연히 힘든 거야. 또 스스로를 책망하려는 건 아니지?
-그래. 힘드니까 고기 먹고 힘낼게.
-응. 다만 천천히 걸어. 그래도 괜찮으니까.
이끼 낀 바위,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세월에 나는 앉아있다. 아까는 너무 지쳐서 무어 성 티켓을 끊고 20분을 꼼짝도 못 하였다. 호카곶은? 카스카이스는? 페냐 성은 어쩌려고 그래. 그게 대수야? 내가 죽을 것 같은데. 아마 굽이길을 오른 버스 때문일 것이다. 이런 버스를 예상하지 못하고 멀미약을 미처 못 먹었다. 나는 이 나이를 먹어서도 멀미를 한다. 어른들에게 속은 두 가지 거짓말이 있는데, 하나는 젖살이 대학 가면 빠진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멀미가 어른이 되면 없어진다는 것. 둘 다 남아있다. 어쨌거나 지친 몸을 이끌고 오른 무어 성은 너무나 아름답다. 이번엔 못 갈 페냐 성도 멀리서 보인다. 오랜 세월 신트라를 지킨 고성. 신기하지. 몸이 낫다니.
헤갈 레이라로 간다. 게으른 여행자. 4시 44분인데 그곳은 7시까지 운영한다. 버스 아저씨 어서 출발해주세요.
아깐 그렇게 죽는소리를 하더니 기어코 호카곶을 간다. 시간이 그렇잖아. 노을이 질 시간이야. 아까 시내로 내려오는 버스에서 기사님 옆에 둔 낯선 지갑을 봤다. 다들 자기 것이 아니라고, 기사님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운전을 했다. 그리고 길에서 어떤 젊은이가 다급하게 차를 멈춰 세웠다. 지갑의 주인이었다. 오브리가도,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외치며 일행 둘은 서로 껴안고 기뻐했다. 어쩐지 나도 감동받아서 박수가 나왔어.. 지금 호카곶행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다. 거기 가면 추울 텐데. 흠. 춥다고 안 가나.
나는 노을을 한참 보았다.
호카곶 정류장에서 일기를 적는다. 추위는 그럭저럭인데 손가락이 얼었다. 누가 여기 보고 섭지코지, 만좌모래. 비교가 안되잖아. 끝없는 수평선과 하늘을 보고 나는 정말 눈물이 났다. 유럽의 최서단이 아니라, 그냥 세상의 끝처럼 보였다. 자른 손톱처럼 쉽게 사라지는 해가 아쉬워 한참 보았다. 참나, 내가 여길 다 왔구나. 스스로가 기특한 기분이 들었다. 점이 된 상상을 한다. 지도 위에 놓인 나. 그럼 감정도 다 작아지고 거기 존재하는 나, 라는 사실만 남는다. 그런 축약이 좋다. 지금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이거 오긴 하나? 오겠지. 오니까 사람들이 있겠지. 이번 여행에서 얻은 귀한 깨달음에 대해 말해보자면 내가 저지른 실수, 혹은 닥칠 위기, 네이버에 검색만 해도 다 나온다는 것. 모든 건 스스로를 책망할 필요 없이 세상에 흔한 일이었다. 나는 그간 자잘한 실수들을 실패로 여기곤 했다. 하지만 그건 그냥 꼬인 실이고, 차근히 풀 수 있다. 혹은 끊어내면 된다. 좌절을 비롯한 모든 감정을 소중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내가 겪는 일은 세상에 흔히 벌어지는 것이지만, 단 하나인 내가 겪는 일이니까 특별한 것이 맞다.
어릴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어떤 날들을 사람들은 기념하는데, 사실 그 날은 영영 돌아오지 않고 날짜만 같은 것이지 않나? 기대하는 날 사이에 의미 없이 허비하는 하루들도 단 하나뿐인데. 무언가를 너무 특별히 여기는 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난 유난히 생일을 싫어했다. 태어난 것은 오직 하루야. 날짜는 그저 숫자만 같은 껍데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기념일이라는 건 때로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일일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라면 그리움을 감히 미워할 수 없다. 오늘은 4월 16일. 모두가 깊은 기억을 안았을 하루. 아아, 기억하는 것은 날짜가 아니다. 지난 그때, 그날 하루였다.
감기에 걸린 느낌이다. 뜨거운 샤워를 했다. 역에서 들른 스타벅스가 위로 같았다. 티백 두 개의 카모마일을 마셨으니 몸이 좀 나았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