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서 일찍 나섰다. 금세 리스본 일정이 끝났다. 오른쪽 골반은 여전히 많이 아프다. 허벅지에 파스를 두 장 붙이고, 어깨에도 각각 붙여본다. 낫길 바라는 작은 의식이다. 아. 수영 학원 다니던 날 힘든 몸으로 간신히 끓여낸 밀푀유 나베가 먹고 싶다.
이맘때가 되면 이렇게 이동하여 어딘가에 불편하게 머무는 일도 일상이 된다. 마음 한편에서 집의 소중함을 세어본다. 이 모든 물건이 다 내 것이라니 하며 느꼈던 끔찍함이 조금 그리워진다. 캐리어를 정리하며 오늘도 어떤 한 점이라도 나 같지 않은 물건은 없다고 생각했다. 영원한 것은 없지만 내가 버리지 않는 이상 떠나지 않을 물건들은 뭔가 그래도 영원할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무슨 말인지. 지금 졸려서 그런가 보다.
시간을 삼십 분 여유 두고 나왔는데 그러길 다행이다. 15분을 플랫폼을 찾느라 헤맸다. 유럽의 터미널은 보통 너무 크다. 이제 교통수단은 악명 높은 라이언 에어 하나 남았다. 끔찍한 공항 노숙이 도사린다. 잘할 수 있을까..
땅덩어리가 왜 이렇게 큰 거야.. 지겹게 버스를 타고 있다. 핸드폰도 계속 만지작거리니 재미없고 인터넷도 너무 느리다. 무엇보다 너무 배가 고파.. 버스 아저씨는 지루하지 않을까, 하며 슬쩍 보았는데 왜 운전 중에 휴대폰을 하시죠..? 제 목숨은 한 개인데..
알고 보니 포르투에 오는데 보통 기차를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 그랬으면 숙소에서 가까웠을 텐데 나는 왜 버스를 택했을까? 가격이 저렴해서? 아니 그게 아니다. 그냥 몰라서 그랬다. 버스를 예약해둔 과거의 나에게 다시 물어도 대답은 같다. 몰랐다, 그냥. 정류장에서 숙소까지는 2킬로였다. 나는 거리를, 늘 산책하는 집 앞 강가의 길이와 비교해서 가늠하곤 한다. 2킬로. 내가 아침에 뛰었던 거리. 뛰면 12분이고 걸으면 20분. 구글 지도로 보니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걸리는 시간이 비슷했다. 걷자. 하고 걷는데 너무나 힘들었다. 이런 돌길이라니! 그러다 힘든 지점에서 멈춰서, 점심이나 먹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럴 땐 조금 비장해진다. 고독한 미식가 모드가 된다. 가장 가까운 가게에 들어섰다. 메뉴가 많구나. 생선요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지만 포르투에 왔으니 의무감에 생선 튀김을 시켰다. 근데 맛이..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지경. 사진으로는 다소 퍽퍽해 보일 수 있는데 엄청 부드러웠다. 이런 표현은 우습지만 사려 깊은 튀김이랄까? 게다가 이게 작은 접시였다. 양도 많아, 맛도 있어, 값도 싸. 지친 나의 모든 니즈를 충족해줬다. 가격은 샐러드, 맥주, 생선 튀김 반 접시 해서 7.40유로. 시내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내 브런치를 읽은 분들은 꼭 여기를 가셨으면 좋겠다.
일기 쓰기 싫다. 여기 영원히 살고 싶다.
하늘이 파랗고, 물도 푸르다. 거리의 사람들은 적당히 행복해 보이고, 불어오는 바람도 깨끗하며 햇살도 사려 깊다. 바다처럼 생긴 강 앞에 앉아 '여기가 포르투구나.' 생각을 한다. 오후에 리스본행 야간 버스에서 만난 사람들과 저녁 약속이 있다. 같이 노을도 보고, 야경도 보려나. 뭐든 좋다. 너무 아름다워서 오히려 눈을 감고 싶은 풍경이다.
사실 전날 리스본에서 동행과 함께 있어서 포르투 카톡방에 답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늦은 귀가 후, '아 저는 다 좋아요!'라는 민폐스러운 대답이나 하다니. 으으. 성격상 무임승차는 거의 해본 적 없는데.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제 정한 식당이 예약이 전부 찼다고 했다. 만회해야지!라는 생각으로 내가 앞장서 여러 식당과 캡처를 제시해서 가게를 정했다. 예약도 했다. 포르투를 가는 버스 안에서. 그래. 나는 도착 전이라 거리 개념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어디가 번화가인지 그제야 알 수 있었고 여긴 번화가와도, 숙소와 꽤 떨어져 있었다. 만나면 사과부터 해야지. 하고 다짐했고 우린 일곱 시에 만났다.
맥주도 먹고, 후식으로 서비스 포트와인까지 받았는데 가격이 1인당 11유로가 나왔다. 아름다운 가격과 맛을 가진 이곳 이름은 Celta Endovélico.
점원의 느긋한 계산에 혜진 씨는 발을 동동 굴렸다. 벌써 해가 다 저물어간다고, 포르투의 야경은 아름다워서 1일 1 야경 해야 하는데 이럴 시간이 없다고. 그럼 우리 어서 계산하고 조금 빠르게 걷도록 해요. 근데 이 사람들 엄청 빠르다. 게다가 아까 낮에 본 저 다리 위를 올라야 한단다. 가파르지만 짧은 계단이 있고 조금 낮은 경사의 긴 길이 있다. 긴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그리고
아주 완벽한 포르투의 야경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포르투에 온다면 꼭 1일 1 야경을 하고, 내려와서 강변 버스킹까지 봐야 완벽하다고 했다. 그래. 그래서 이날이 이만큼 완벽했나 봐. 정말 좋았다.
아아. 깨끗한 이불에 누우니 살 것 같아. 블루삭 호스텔은 여러모로 완벽하다. 내가 호스텔을 디자인한다면 여길 벤치마킹할 것 같다. 포르투는 물가도 저렴하고 호스텔도 깨끗하고 사람들도 느긋하고 그냥 다... 마냥 좋기만 하구나. 오늘은 고생한 다리를 위해 마사지를 좀 해줬다. 야경을 보며 듣는 데스파시토는 완벽했다. 여긴 진짜 사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