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 : 아무것도 안 했어요

by 이연

커튼이 있으니 좋지만 너무 어두운 아침은 조금 쓸쓸하다. 적당하게 환했던 내 자취방이 생각난다. 잘 있겠지. 부드러운 이불도, 나의 잠옷도.




한국에는 일주일 있다 다시 후쿠오카를 갈 예정이다. 그리고 돌아온 후에는 밀린 일이 많다. 어제는 길을 걸으며 어떻게 돈을 벌지에 대해 고민했다. 그림을 그리고 싶다. 좋아하는 색을 쓰고 싶다. 쓸모없지만 갖고 싶은 물건을 만들고 싶다. 여러 생각을 하는 찰나 영감을 주는 것을 발견했다. 사진을 찍는다. 유럽에 와서는 늘 얻어가는 게 많다.






엊그제. 세비야 야간 버스에서 만났던 분들과 포르투에서 다시 만났는데, 내 모습을 보고 모자를 벗으니 못 알아보겠다고 하셨다. 나는 아, 원래 이렇게 하고 다녀요,라고 대답하며 나의 원래라는 게 무엇이지? 하고 생각했다. 누추한 모습과 단정한 모습 전부 다 내 것이다. 그러니까 원래라고 규정할 수 있는 모습은 없구나. 그럼에도 우리가 스스로 다울 수 있는 무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자각해야 한다. 그게 아마 우리가 믿는 '원래' 혹은 '본연의' 것에 가까울 것이다.


거리의 무도회





한국에선 어떤 일을 하셨어요?라는 질문에 디자인을 했다 답하면 다들 와, 그렇게 생기셨어요.라고 하는데 어딜 봐서 그런 건지 당사자는 전혀 알 수 없다.





첫날 먹은 생선 튀김을 먹으러 또 왔다. 가게 아저씨는 여전히 친절하시고, 미리 나온 맥주는 공복인 배 속에 들어가 혈관을 타고 흐르는 느낌이다. 오늘도 포르투는 날씨가 좋아요. 샐러드는 간소하지만 맛있다. 채 썬 당근과 양배추, 토마토 위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끝. 아아. 생선 튀김 어서 먹고 싶어. 음. 오늘은 20유로만 쓰는 날이다. 어제 80유로를 썼거든.. 아주 돈 쓰는 게 제일 재밌지? 그럼요.






너무 맛있다. 아주 막 속상할 정도로. 그런 기분 알지. 맛있어서 짜증 나는 거. 그렇게 심하게 맛있다. 행복하다. 아깝지 않은 1.3킬로였어.





아깐 낮잠을 좀 잤다. 주변이 시끄러워 일어나 보니 유치원 아가들이 소풍 왔다. 흘끔 나를 쳐다보네, 알았어 이만 가볼게. 지금은 숙소에 들어와서 쉬고 있다. 내가 돈이 얼마나 있더라. 불안한 마음에 계좌내역을 확인했는데 생각보다 더 있네. 음? 이래서 사람은 성실히 살아야 하고... 뭐.. 그렇다는 걸 느꼈다. 잠을 조금 잔 후에 다리 위에 올라갈 거다. 그리고 또 오래, 음악을 들으며 아무것도 안 해야지.





해물밥을 드디어 먹는구나. 아아. 솔직히 그동안 스페인에서 빠에야를 한 번 먹은 것은 좀 너무했다고 본다. 포르투갈의 해물밥은 그리운 한국의 맛과 비슷하다고 해서 기대된다. 사실 아직 딱히 한식 생각은 안 난다. 이상하다. 어렸을 때 더 유난이었던 것 같고. 저녁엔 다리 위에 올라가 야경을 보며 감자칩과 와인을 먹으려 한다.

어디선가 먹어본 맛이다





올라왔다. 오래도 걸렸구나. 동 루이스 다리에 오르니 한강도 그립다. 내 사랑 서울엔 그렇게 멋진 강이 있지. 막상 올라오니 전재산을 털어서 산 물이 맛있고(35센트) 와인 생각이 별로 안 난다. 후우. 아까는 걸으며 '일상적이지 않은 날들'이란 노래를 들었다. 사실 평일에 그냥 밖에 나와있는 것부터 이상해. 사월, 실컷 바쁜 때지. 나는 근데 이렇게 생각도 못한 포르투에서 한량처럼 밥때를 기다렸고. 높은 동산에 앉아 강을 바라본다. 내가 멀리 다닐수록, 먼 곳을 볼수록 얼마나 작은지 체감한다. 이렇게 작은 내 안의 더 작은 마음, 그 안에 오래도 갇혀있었구나. 나는 잘 안다. 언제든 난 다시 슬플 거란 사실을. 그때 기억해줬으면 한다. 지금처럼 별 것 없이도 쉽게 행복해지는 때도 다시 온다고.


드디어 여행을 하는구나- 하고. 오래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