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고 짐을 쌌더니 11시. 곧 또 점심시간이네. 밤까지 포르투에 머물다 공항에 간다. 그리고 한다, 공항 노숙을, 새벽 6시까지. 며칠 원 없이 쉰 덕에 몸이 편하다. 내일은 마드리드... 전혀 아무런 생각이 없는데? 근교 가기 귀찮다는 생각뿐인걸. 다음 주면 한국에 가는구나. 짐을 묶고 푸는 일이 지겨워서 방이 그리울 뿐, 돌아가고 싶다던가 그런 생각은 없다. 이곳에 오니 쓸데없는 SNS도 안 하고, 남 소식 모르고 사는 동시에 사람들도 내 소식을 모르게 되어 아주 좋다. 기억되고 싶은 것과 없는 듯 숨는 일, 그 사이를 오가며 여기저기에 나는 산다. 오늘도 조식을 먹으며 리스본에서 산 코르크 지갑 자랑을 했다. 마드리드에서도 자랑은 계속된다.
밥 먹는 게 일과라 일찍 식당에 들어왔다. 한가한 여행자에겐 이런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오늘도 물 대신 술을 마신다. 할 줄 아는 회화는 올라, 그리고 오브리가도.(감사합니다)
길에 가는데 포도가 있었다. 카메라를 드니 포도가 인사를 해주지 뭐야? 멋진 하루야.
이따가 추울지도 모른다는 핑계로 스카프를 샀다. 완전 마음에 들어.. 부드러운데 10유로밖에 안 한다. 나는 나에게 무엇이 잘 어울리는지 직감적으로 안다. 그 물건이 예쁜 것과 내게 어울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 취향이 확고하지만 그것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갖고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기 아이스크림이 이탈리아보다 맛있어요~!라는 말에 왜 매번 속냐. 젤라또는 다 젤라또인 것을.. 한국에서도 맛있다고.
풀 앤 베어에서 청자켓을 샀다. 청자켓이라는 물건, 그것도 데미지 있는 데님을 산 것이 처음이다. 아니 근데 이렇게 잘 어울리는데 사지 않을 수 없잖아.. 기본템이니까..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사라고 했을 것이 뻔하여 그냥 샀다. 스스로의 판단을 믿고..
이런 이런. 또 심심해서 밥 먹을 궁리를 하고 있다. 별로 배도 안 고프면서. 근데 오늘은 외출이 긴 만큼 짐을 좀 많이 갖고 나와서 이동하기 영 귀찮고 힘들다. 유랑에서 소매치기 수법에 대한 글을 읽었다. 내가 지난 도시들 모두 소매치기 소굴이었단다. 가방을 자리에 놓고 스파게티 주문하고 올까 생각했던 내가 안일했다. 아니 근데 웃긴다. 여기 저녁 음식점 7시에 열길래 다들 늦게 식사하나 했더니 5시 푸드코트 바글바글해. 뭐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도우루 강변에 앉아 하늘과 물을 구경한다. 그리고 아주 작은 걱정을 해본다. 공항 노숙 어떡하냐.
지하철부터가 고난이다. 티켓 창구가 고장 나서 다른 역까지 11분 캐리어를 끌고 왔다. 체감 무게는 25킬로인데 라이언에어는 20킬로까지 가능하단다. 다 계획이 있지.. 이럴 줄 알고 뺄 짐을 또 정리해놨다. 시선이 참 다르다. 어떤 사람들은 내 캐리어를 보고 작아서 부럽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크고 무겁겠군요, 한다. 정답은 후자이지만. 아아. 내 욕망의 무게라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 그건 사실이니까.
공항에 도착했다. 6시 30분 비행기니까 지금 7시간 남았구나. 게이트가 언제 열릴까? 공항 노숙은 처음이다. 요란한 청소차가 앞을 왔다 갔다 한다. 나는 맥도널드가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