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을 머물면서 내가 호스텔을 만든다면 어떻게 할까, 무엇이 불편하고 어떤 점이 좋았는가, 꾸준히 생각하는 중이다. 해바라기형 샤워기와 버튼식 수도를 모두들 불편해한다. 그리고 2층 침대의 경우 올라가는 다리가 좀 더 촘촘하면 여성들에게 좋겠다.
아침으로는 초코케익을 먹었다. 촉촉하고 친근한 맛이었다. 오늘은 미술관에 갈 생각이다. 여행이 이번주 목요일이면 끝난다. 어쩐지 긴 느낌이었는데 돌아보면 이리도 짧고 순식간이다. 그간 양말을 너무 버린 탓에 새로 샀는데 새로 산 것은 다 신지도 못하고 한국에 간다.
그래서 부랴부랴 새 양말을 신고 나섰다. 오늘은 월요일. 미술관이 열까? 그걸 도착해서야 생각하는 나도 참 대단하다. 검색해보니 월요일은 12시부터 4시까지 무료라고 한다. 이거 오히려 다행이라 해야할지. 티센 미술관에 왔다.
마지막이 마드리드라 다행이다. 도시에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다니 나도 참 나구나. 많은 볼거리와 쇼핑거리, 다양한 음식과 미술관이 즐겁다.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서울에 살거다.
마크 로스코 그림 앞에 앉아 쉬는 중이다. 미술관은 다른 곳보다 체력소모가 특히 심하다. 뭔가를 잔뜩 본다는 일은 뇌와 다리가 피곤한 것. 그래도 미술관 의자에 앉아 잠시 졸다가는 것을 좋아한다.
숙소 바로 앞에 버쉬카가 있다. 옆은 자라. 그리고 또 근처에 러쉬. 아아.. 나는 눈뜨면 집앞에 무인양품이 있는 곳에 살고싶다. 문명, 너무 좋아. 낮잠을 자고 나오니 기분이 좋다.
어제 호스텔에서 요리하면서 한 대화.
-요리하는거 좋아해?
-응, 아마도?
-그럼 내일 비빔밥 만들자!
-(비빔밥 싫어함)음... 그건 레시피를 몰라..
-그럼 김치 만들래?
-(당황)그건 엄마의 레시피야..
그동안 먹은 츄러스중 여기가 가장 맛있다. 가격 빼고.. 모든게 무난. 초콜라떼도 진하고 맛있다. 남김없이 다 먹었다.
항공점퍼를 18유로에 샀다. 정말, 서울은 지금 반팔입는다는데 혼자 뒤늦은 간절기 아우터를 사고있다. 비루한 변명을 곁들이자면 난 간절기 겉옷이 코트와 경량패딩 두 벌 밖에 없었다. 근데 스페인와서 세가지나 산게 좀.. 좋다고요. 좋습니다. 자라, 망고, h&m보다 풀앤베어, 버쉬카, 빠흐뿌아에서 돈을 많이 썼다. 취향은 여전하구나. 저번에 잔디에 누워 잤더니 개미 한마리를 숙소에 데려온 경험이 있어서 오늘은 돌 위에 앉았다. 춥지도, 덥지도 않아 좋구나. 이번 여행은 그래도 금전빼고 페이스 조절을 잘한 것 같다. 내일도 미술관을 가야지. 오늘 본 거리공연도 정말 좋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악기가 거리로 나오면 좋겠다. 나 정말 쇼핑 빼고는 돈 정말 잘 안내는데.. 팁을 부르는 공연이다.
그냥 앉아있다. 생각해보면 서울에선 늘 걷기만 했지 오래 앉은 적은 드물구나. 이번에 돌아가면 낙산공원도 가고 한강도 갈거다. 나는 도시가 좋다. 번화가에서 어쩐지 편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들 사이에서야말로 나는 혼자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상해. 근데 정말 그래.
숙소의 벽은 주황색이 칠해져있다. 내 방을 페인트로 칠한다면 무슨 색이 좋을까. 회색이나 초록색을 칠하고싶구나. 물론 파란색도 좋다. 샤워를 하며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고 생각했다. 호스텔에서 만난 얼빈의 목소리가 좋다. 뭐라고 칭찬을 건네면 좋을까. 네 목소리와 말하는 방식이 좋아. 이런 칭찬들으면 나라도 기분 좋겠네, 하며 머리를 감는다. 이번 여행은 힘든 순간이 잦았음에도 싫은 날은 없었다. 뭐가 이렇게 좋기만 한건지. 역시 그간 염원하던 '혼자력'이 충전된건가. 혼자력을 얻으려면 우선 많은 것들과 분리될 낯선 장소가 필요하다. 그리고 필요한 물건과 사람과만 관계를 가진다. 혼자력을 얻는 과정에서 어떤 것이 소중하고 잔여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것 없이도 살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돌아가면 난 이제 일을 많이 해야해. 그것도 그 나름대로 기대되고 신나네.
어둠속에선 차라리 눈을 감는다. 눈 대신 손 끝으로, 더듬거리며 열쇠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