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Prologue. 쉽게 포기하는 사람
나는 뭐든지 쉽게 포기하는 사람이었다. 끈기라는 단어를 모른 채 살아왔다. 나를 자극하는 새로운 요소를 좋아했고, 의심 없이 도전했다. 그러다 어려움이 느껴지면 주저 없이 포기했다.
그런 성격 탓에 직업 변동이 심했다. 바리스타, 중학교 강사, 휴대폰 판매원, 주방보조, 웨이트리스, 유학 상담원, 학습지 교사, 고객센터 상담원, 쇼핑몰 판매관리자, 무역사무원, 피트니스 상담, 영어학원 강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군에서 일했다.
지금은 아이 둘을 키우는 30대 중반의 주부이다. 나의 하루 루틴은 똑같이 반복적이다. 제일 여유로운 시간은 바로 아기 낮잠시간. 매일 낮잠을 자는 아기를 보며 지나온 날들을 떠올린다. 하루 일과 중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나에게 허락된 자유시간에 사실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얼 해야 의미 있는 시간이 되는지. 그저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할 뿐이다.
소중한 이 시간, 아기가 깰까 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발걸음 조차 조심스럽다. 시계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거실에 앉아 생각에 잠긴다. 스쳐가는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바쁘게, 그리고 변덕스럽게 살던 내가 매일 조용한 하루를 보내는 것. 어찌 보면 참 행복하고 고마운 일상이다.
하지만 과거의 나와 다른 이질감과 현재의 만족감이 공존한다. 조용히 짹각 짹각 소리를 내는 거실 시계는 그런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모든 것은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한다. 그리고 추억이 모여 생각주머니에 저장된다. 언제나 그랫듯 차곡차곡 쌓여간다.
조용히 앉아 떠나보내는 시간도, 흘려보내는 생각도.
앨범을 넘기듯 한 장씩 간직하고자 한다.
나와 비슷한 혹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며 마음속 그릇을 키워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