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예쁜 내 친구 -1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날이었다. 낯선 교실에 유난히 눈에 띄는 아이가 있었다. 170cm가 훌쩍 넘는 키에 조그마한 얼굴 그리고 또렷한 이목구비. 연예인을 실제로 본다면 이런 느낌 일까.
예쁜 그 아이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마치 매일 만난 친구처럼 나에게 웃으며 대해줬다. 낯설고 어색한 마음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원래부터 친했던 친구처럼 이미 친한 사이가 되어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키가 작았다. 예쁜 내 친구와 같이 걸어 다닐 때 키 차이가 많이 났다. 키 차이만큼이나 친구는 마음도 성숙했다. 나는 내가 보이는 만큼만 이야기를 하면, 친구는 늘 나를 다독이고 포용해 줬다. 나보다 더 큰 마음으로 나를 감싸줬다. 우리는 늘 그렇게 붙어 다녔다.
공부를 잘하던 내 예쁜 친구는 꿈이 소박했다. 담임선생님은 서울의 명문대학을 권유해 주셨다. 그러나 부모님께 부담이 될까 걱정하며 지방의 국립대학교에 지원했다. 친구를 가까이서 자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내심 기쁘기도 했다.
어디서나 빛나는 아이였지만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연예인 기획사로부터 길거리 캐스팅을 수차례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연예인 기획사의 러브콜을 모두 거절했었다. 수줍음이 많고 끼가 없어 연예인은 되기 싫다는 이유에서다.
내가 “재미 삼아 오디션 보는 건 어떠니? 네 덕에 나도 따라가서 서울 구경하게”라고 말해도 웃어 넘기기만 했다.
어디를 가든 눈에 띄게 예쁘고, 똑똑하고 착하기까지 한 내 친구는, 학교에서도 일명 ‘얼짱’이었다. 학교에 남자아이들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익명으로 선물공세를 했다. 적극적으로 잘 보이려 애쓰는 아이들도 많았다. 나의 어리고 작은 마음에 부러움을 숨기기가 힘든 적이 많았다. 그땐 이유 없이 내 친구에게 짜증을 낸 적도 많았다. 지나고 보면 왜 그랬나 싶다. 그땐 참 어렸다.
20살의 대학생이 된 내 예쁜 친구에게 처음으로 남자 친구가 생겼다.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8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첫사랑과 결혼에 성공한 내 예쁜 친구는 신혼 생활도 행복해 보였다.
부부간의 불화로 힘들어하는 지인에게는 언제나 내 예쁜 친구 이야기를 해줬다. 나에게는 마치 잉꼬부부의 표본이자 모든 것이 완벽한 존재였다. 무슨 일이든 웃으며 현명하게 대처하는 내 친구를, 나는 늘 자랑스러워했다.
30대 중반이 되자 서로 연락하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결혼 후 서울에 사는 내 친구와 부산에 사는 나. 거리가 멀어진 탓도 있다. 하지만 아기를 키우다 보면 친구와 약속 잡기가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10대 20대 때에는 매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했었다. 그리고 주말마다 같이 놀러 갈 곳을 계획하곤 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우리도 변화해 가고 있었다. 이젠 각자의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최우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그렇게 30대의 평범함 아줌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기쁜 날,
거의 2년 만에 만남이 이뤄졌다. 각자의 아기를 데리고 조용한 키즈카페에서 만났다. 비록 3시간을 함께 있었지만 30년 치의 추억을 다 꺼내어 펼쳤다. 너무 반가워 목이 쉴 정도로 수다를 떨었다. 눈으로는 아기들이 노는 걸 지켜보며 입으로는 우리의 반가움을 표현하기에 바빴다.
키즈카페에서 나와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다음 주에도 만나서 키즈카페에 가자고, 자주 만나자고 재차 약속했다.
내 마음을 다 털어놓고 지내던 오랜 친구와의 만남은 설렘과 기쁨이 가득했다. 그날의 즐거움이 잊히지 않아 주고받았던 카톡을 열어볼 때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앞으로도 자주 만날 생각에 다음 약속 일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내 예쁜 친구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에도 대답이 없던 내 예쁜 친구.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바쁜 날을 보내고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나의 일상에 집중할 뿐이었다. 그저 바쁜 일상에 지쳐 약속을 잊고 있었을 거라고 치부했다. 그건 단지 내 추측일 뿐이었다.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을 거란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