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난 빌딩이 많은 곳을 좋아한다. 어쩌면 빌딩의 불빛들이 밤새 꺼지지 않고 밝게 밤을 비추고 있는 것에 대한 로망인지도 모른다. 그 안에 있을 때는 막상 삶을 살아가느라 바쁘다가도 밖에서 불이 켜진 빌딩을 볼 때면 낭만적이다.
어릴 적 나는 서류더미에 쌓여 안경을 쓰고 일하고 있는 내 모습을 종종 상상하고는 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종종 내가 그리던 내 모습이 생각나기도 한다. 내가 꿈꾸던 나의 미래는 일중독의 여성이었을까? 현실인 지금은 일중독을 꿈꾸면서도 많이 밀려있는 일들을 해결하기보다는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다.
모처럼 오랜만에 쉬는 날, 아침부터 옆 옆집의 공사로 잠을 설쳤고 일어나자마자 밥을 차려 먹은 후 고장 난 핸드폰을 고치러 서비스 센터를 방문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려 고친 핸드폰을 들고 서점을 갔다. 시집 8권을 쌓아놓고 밥을 먹지 않은 아이처럼 허겁지겁 책을 읽어 내려갔다. 한참 초집중해 있는 나의 귀를 깨우는 건 마감 15분 전이라는 알림방송. 책을 원래 있던 자리에 정리를 하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두 권을 더 집고 나서야 계산대로 향했다.
빌딩을 벗어나니 달이 떠 있는 깜깜한 밤이었다. 왜 밤은 항상 먹먹할까? 허탈한 발걸음을 이끌고 집으로 향한다. 빌딩의 빛들은 해가 없는 시간 동안 빛을 내지만 왜 해가 있는 행복하고 풍족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먹먹한 밤 빌딩에 달려있는 간판의 불빛들을 친구 삼아 잠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