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테이블

인생이 맛있는 부부의 아름다운 식탁

by 로버트


5년 정도 블로그를 운영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오래 써왔냐, 어떻게 하면 글을 그렇게 꾸준히 쓸 수 있냐는 질문을 많이 받곤 한다. 보통 '저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는 편인데, 이 진솔한 대답을 겸손으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보니, 요즘은 다행히 위와 같은 질문들에 꽤 확신을 갖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는데, 글이 약 1000여 개 정도 쌓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을 보니 나는 타고난 글쟁이는 아닌가 보다.

나는 주로 생활 그 자체나, 생활에서 느끼는 것들을 일단 나열하고 본다. 사람 욕심이라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어서 당연히 잘 쓰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웬만하면 그런 것들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 닥치고 쓰는 것에 익숙해졌다. 페이스북이건, 트위터 건, 네이버 블로그 건, 그리고 최근에는 브런치까지 이곳저곳. 일단 떠오르는 것들은 적고 적고 또 적는다.

단어들이 중복이 되고, 감정들이 겹쳐도, '잘 쓴다'는 것에 그다지 개의치 않는 편이다.


물론 일단 쓰고 보는 습성을 가진 나도, 때로는 정말로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는데, 주로 애착을 갖게 되는 <무언가>를 묘사하거나 서술하거나 그에 대한 감상을 쓸 때 그렇다. 그런데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일이겠지만, 이게 처음부터 잘 쓰고 싶다, 잘 써야 한다 라고 마음을 먹게 되면 첫 문장 쓰기부터가 쉽지 않다. 한 문장 썼다가 지우고, 한 문단 썼다가 지우고, 때로는 글을 전부 다 써놓고 등록 버튼을 누르기 직전에 전부 삭제해버리는 경험도 있었다.


오늘 내가 소개할 책 한 권에 대한 감상은 내가 그렇게 썼다가 지웠다가를 어언 1년 동안 반복한 글이다. 서두를 떼는 문단만 임시 저장함에 6개 정도는 머물러있다. 결국은 그 모든 임시 저장된 글들을 싹 지워버리고 새롭게 감상을 쓰게 되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정말 잘 쓰고 싶었다. 좋아하는, 그리고 닮고 싶은 사람들에 대한 글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늘 그렇듯,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 버리고 싶었을 때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보았던 이 글들을, 그리고 이 사진들을, 내가 하던 방식대로 줄줄이 한번 소개해보려 한다. 횡설수설한 단어의 나열이지만 어쨌든 이 사람이 이 글들을 정말 즐겁게 봤구나, 정도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것만 해도 목적의 절반은 달성하지 않을까 싶다.




나만의 자랑을 잠시 하자면, 나는 <피렌체 테이블>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이 글에 등장하는 멋진 부부를 알음알음 혼자서 자알 지켜보고 있었다(진짜 자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타 포털 사이트 블로그를 운영하던 중, 아름다운 시간을 더욱 아름답게 묘사하고 서술하는 이 남편분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바쁜 일상으로 지금은 약간 뜸한 업데이트가 진행되고 있지만, 심승규 님이 블로그에 차근차근 올리시는 도쿄에서의 경험담은 여행이라면 귀찮고 두려워서 질색하는 내게도 작은 설렘을 심어주었다. 당시 휴학생으로서 지겨운 취업준비의 레이스를 뛰고 있던 내게, 사실 심승규 님의 블로그는 작은 일탈 구나 다름없었다. 특히 심승규 님이 글 중간중간 내비치는 직업이나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생각은 나에게 늘 잔잔한 충격을 주곤 했는데, 취업준비 동안 가치관이 늘 위태위태해지기 쉬운 나라는 백수에게 항상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오곤 했다.


세상의 잔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자신들의 시간과 행복을 위해 따뜻한 열정을 실천해나가는 신혼부부. 이 부부의 새로운 하루하루를 지켜보는 것이 너무 좋아 열혈 독자로서 해당 블로그의 업데이트 알람도 켜두었었는데, 어느 날은 또 다른 시작을 보여주는 알람이 울렸다.


피렌체로 갑니다!로 시작해서

피렌체 테이블이 시작됩니다 로 끝났던 그 포스팅.


떨리는 가슴으로 하루하루 업데이트를 기다렸던 그 포스팅들은, 더 아름다운 글과 사진들로 촘촘하게 엮여 <피렌체 테이블>이라는 책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었다.




크게 남편의 피렌체, 아내의 피렌체, 그리고 오늘의 레시피로 연결되는 이 책의 구성은 여행기 같기도 하고 요리책 같기도 하다. 한 문장 한 문장 읽다 보면 일기장 같기도 하다.


이미 푸드스타일리스트로서 다양한 강연,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는 김은아 님은 미모뿐만 아니라 글솜씨와 센스도 훌륭하신 크리에이터다. 스스로 이 부부의 팬임을 자랑하는 우리 엄마는,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눈부신 센스와 크리에이티브 발전을 이야기할 때 꼭 이 아내분을 언급하곤 하는데 나 역시 그 말에 백 퍼센트 동감하는 바이다. (요즘 애들은 어쩜 이렇게 잘하니! 부부의 <차리다 스튜디오> 사진들을 볼 때마다 하시는 말씀...)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남편분인 심승규 님 역시 내가 늘 닮고 싶어 하는 선배이다. 때때로 내가 직장과 직업,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의 경계에서 고민할 때 저 어딘가에 존재하는 가이드라인처럼 내게 나비효과를 일으키시는 분이다. 글이 좋아 그 글을 쓴 사람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고, 그 글을 쓴 사람이 좋아 글이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나에게 있어 이 선배는 두 가지에 다 해당했다.


이 부부가 서울을 떠나 피렌체에서 써 내려간 글들은, 한 달간의 여행 기라는 뻔한 말로 묘사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책에 담겨있는 것은 한 달간의 '생활'과 아름다운 사람들이 멋진 공간에서 엮어내는 한 달간의 '시간' 그 자체다. 다들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대다수의 여행기를 좋아하지 않던 내가 홀린 듯 이 책을 읽어내려간 것은, 아마 이 글이 단순히 모든 것들을 뒤로 던져버리고 혈혈단신으로 떠나 버린 후 '나 멋지지?'라고 되묻는 여행 이야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소중한 시간,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는 일과 시간들.

우리는 과연 이 모든 것들에 대해 확신을 품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 인생에서 확신을 갖는 일이란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위에서 언급된 것들에 대해 단 한 번이라도 조용히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행복, 사랑, 즐거움, 휴식, 너무나 많아서 오히려 생각하기 힘든 이 존재들에 대해서 나는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혹시라도 이 모든 것들이 뒤섞여 갈피를 잡지 못하는 중이라고 느낀다면, 혼란에 휩쓸리는 것이 귀찮고 불안해 이제 그만 생각하기조차 멈춰버렸다면, 이미 지친 당신에게 <피렌체 테이블>이라는 맛있는 위안을 추천한다.


이들의 멋진 일상과 함께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요리 바보인 본인에게는 결코 불가능하고 쉽지않)은 피렌체의 레시피는 맛있는 덤이니 마음껏 즐기는 것도 좋을듯싶다.



KakaoTalk_20150706_124701585.jpg 사실 이 책은 저희 어머니에게, 당신의 딸도 결혼해서 이렇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환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나쁜 책!


아주 솔직하게, 우스갯소리를 조금 더해 말하자면, 이 책은 때때로 나에게 결혼 장려 서적 또는 올바른 동반자 만나기 지침서로 느껴질 때도 있다. 심지어 이 부부는 여행지에 가서 싸우지도 않는다!


공부하듯 이들의 일상을 배울 필요는 없다. 그저 책을 펼치고 글을 읽으며, 가끔은 맛있는 음식에 입맛도 다셔보고, 영화 속에 등장하는 장면들 중 공감하는 부분에는 고개를 끄덕여보면 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아 이렇게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도 있구나, 그렇다면 나의 행복은,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이의 행복은 어떤 것일까, 나에게 가장 맛있는 위안과 휴식은 어떤 것일까?'

볕 좋은 날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잠깐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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