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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트립 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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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트 Oct 28. 2015

트립 투 뉴욕 얼론 - 4

Day2. 헬스 키친, 헬스 키친 플리마켓, 블루보틀 커피, 브라이언트






날이 밝았다.

본격적으로 여행을 시작하려고 하니 제법 긴장됐다. 선크림을 넉넉하게 발랐다. 날씨는 계속 좋았다.

나중에 여행 마무리 포스팅에서도 쓰겠지만 혼자 하는 여행, 걸어야 하는 여행에서 메이크업 픽서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뉴욕 여행 중에 스냅사진 촬영을 신청해두어서 혹시 몰라 집에서 굴러다니던, 예전에 선물 받았지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메이크업 포에버 메이크업 픽스를 들고 갔다. 이날 처음으로 화장하고 칙칙 뿌리고 집에서 나서봤는데 이것은 신세계. 무쌍 커플에 눈이 작기까지 해 눈 화장은 두 시간만 지나도 거뭇거뭇 내려오곤 했는데 메이크업 픽서를 뿌려주니 피부 화장도 잘 지워지지 않고 눈 화장도 번지지 않아 화장은 정말 1도 신경 쓰지 않고 여행할 수 있었다.











얼마 전 뉴욕 여행 정보 어딘가에서 한국에 있는 브랜드를 미국에서 시도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자 뭐 그런 문구를 보고 약간 언짢았던 기억이 있다. 미국에서는 어떤 맛인지 궁금해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나는 서브웨이에 들어갔다. 헬스 키친 플리마켓이라는 벼룩시장에 가기 위해 버스 타러 가던 길이었다.


뉴욕 코믹콘이 여행 일정 중에 개최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혹시 몰라 회사 미국 사무소 소장님도 뉴욕에 오시냐 물었더니 저번 달에 뉴욕 출장이 있어 이번 코믹콘은 오지 않는다고 하셨다. 길거리를 가득 메운 코스프레 인파들과 함께 걸었다. 마블 및 슈퍼히어로 코스프레도 많았으나 확실히 일본 애니메이션 코스프레가 많았다. 각자 다른 머리색을 가진 서양인들이 나루토 복장을 입고 나란히 걸어가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한편으로는 일본이 부럽기도 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이 도시를 여행하면서 이 도시 자체가 부러운 것보다 일본이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진격의 거인 코스프레도 볼 수 있었다.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기다리는데 앞에 코스프레 복장을 한 두 명의 여자가 샌드위치를 열다섯 개 정도 포장하느라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자기들이 콘퍼런스에 참석하는 사람 들것까지 사야 해서 양이 많다고 미안하다고 이야기하길래 보니 코믹콘 참가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 코믹콘은 이번이 처음 참석이냐, 단순히 그냥 방문하는 것이냐 아니면 비즈니스 미팅을 갖는 것이냐 물었더니(B2B, B2C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행사라고 알고 있었음) 자신들은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방문했다며, 나에게 꽤 잘 알고 있는 모양인데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냐고 이것저것 대화를 이어갔다.

샌드위치가 나오는 동안 나눈 짧은 대화였지만 코믹콘이 얼마나 큰 행사이고 전 세계 덕후들이 얼마나 온 마음을 다해 이 행사를 일 년 동안 기다리는지 알 것 같았다. 더불어 세계의 중심이라 불리는 도시에서 시시각각 새로운 트렌드가 탄생하고 있는데 작은 땅덩이 저 시골 어딘가에 위치하며 이 산업에 도움되겠다고 노력하는 회사 생각도 잠깐... 흑흑.


물론 샌드위치는.. 당연히 맛있었다. 전 세계에서 같은 이름의 같은 모양의 같은 맛의 같은 음식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대단하고 무서우면서도 멋지고 신기한 일이다.






나말고도 길에 셀카찍는 사람 많아서 편했다














주말이라 그런가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아 걷고 걷고 또 걷고 걷다가 또 걷고 또 걷고... 헬스 키친 플리마켓을 향해 걸었다. 이마저도 처음에는 구글 지도를 잘못 검색해서 헬스 키친 동네까지 갔다가 다시 플리마켓을 향해 걷는 기염을 통했다. 이때부터 체력을 좀 아껴두어야 한다는 것을 미리 깨달았어야 했는데.

















한적한 동네를 따라 걷다 보니 헬스 키친 플리마켓이 나왔다. 일정이 한가하고 벼룩시장을 정말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추천하겠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주차장에서 하는 벼룩시장 느낌이기 때문에 규모가 크지도 않고 말이 골동품이나 벼룩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 물건은 첼시나 다른 거리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다만 시장 초입에 꽤 멋진 그림을 팔고 있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게는 그림을 한 장 샀다.

구경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으나 별로 볼 것이 없길래;;; 구글 맵을 켜 주변 지도를 검새하니 브라이언트 파크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 유명하다는 블루보틀 커피 한잔 마시며 브라이언트 파크에 앉아있을까 싶어 또 걸었다.









사람은 많았고 커피는 맛있었다.

고소하고 구수하고 따뜻하고... 원두도 원두지만 우유의 맛도 다르게 느껴졌다. 따뜻한 라테를 마셨는데... 그 첫맛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미 블로그에도 글을 쓴 바 있다(치사한 미국 놈들 이 좋은걸 혼자 먹다니ㅠㅠ라고 남겼다) 더러운 거리와 아픈 다리와 힘든 시차 적응 등등을 잠시 잊을 수 있는 맛이었다. 느긋하게 공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커피 한잔을 다 비워냈다.

브라이언트 파크는 정말 말 그대로 작은 잔디밭 같은 느낌이 전부라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거기 앉아 저마다 할 일을 하며 한가롭게 있는 것을 보니 괜히 기분이 몽글몽글했다.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의 편집샵, 수없이 깔린 패션잡화점, 비싸고 맛있는 음식점들 등등 사람들이 이 도시 그리고 이 국가를 좋아하거나 부러워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브라이언트 파크처럼 이렇게 도시에 곳곳이 숨어있는 공원들 때문에 이 도시가 부러웠다. 별 어려움 없다는 듯이 누워있고 구르고 커피를 한잔 마시고 다시 눕는다. 크기가 꽤 되는 도시에는 어김없이 남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정신없이 뛰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유명 드라마 제목이기도 한데 미국 내에서 이와 같은 시설들을 관리하는 부서를 Parks and Recreation이라고 한다. 특별할 것 없는 부서 이름이지만 어쨌든 이와 같은 작은 공간들이 사람들의 심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담담하게 중의적 의미까지 담고 있는 듯했다.










군데 날씨가 아침이라 생각보다 쌀쌀했답니다...






행복해 보이는 나.... 그러나 공원에 앉아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뉴욕 사람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나에게... 4시간 후 어마어마한 시련과 패닉이 닥쳐올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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