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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트 Oct 30. 2015

트립 투 뉴욕 얼론 - 8

Day4. 첫 번째



Day4 펜스테이션 베이글, 5번가, MoMA(뉴욕 현대미술관), 할랄 가이즈, Love조각상



첫날과 둘째 날은 오히려 빨빨거리고 돌아다님+긴장해서 돌아다님 콤보 어택으로 시차라는 것이 있는 둥 마는 둥 했는데 넷째 날은 귀신처럼 새벽 네시에 눈이 떠졌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잠이 들지 않아서 아예 포기하고 뉴욕의 아이콘이라는 베이글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이번에도 역시 어플 Yelp의 도움을 받았다. 딱히 엄청난 별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낮은 별점도 아닌 베이글 집이 마침 펜스테이션 근처에 있었는데 영업시간도 오전 6시부터 오후 5시였다. 정확한 이름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베이글&커피였나 아주 심플하고 단순한 이름이었다. 

뉴욕 가기 전 야심 차게 유니클로에서 구매해간 분홍색 패딩이 있었는데 한 번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낮에는 어마 무지하게 더웠으므로. 새벽에 나가면 제법 쌀쌀할 것 같아 기모 후드에 패딩까지 장착하고 나갔다. 다행히 딱 좋았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뉴욕 그리고 그 한복판의 펜스테이션은 새벽의 용산역/서울역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분위기였다. 여전히... 큰 역이라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는 것에 감사하며 가게로 발걸음을 옮겼다. 쓰레기차들이 다니고 찌린내가 났다. 여기저기 홈리스들이 길에 누워있었다.






진짜 너무나 미국적인 분위기였다. 요즘의 카페베네처럼(아놔 며칠 전에 갔다가 깜짝 놀랐네) 다양한 종류의 베이글이 벽돌처럼 쌓여있었고 약 스무 개 정도의 크림치즈를 고를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겠어서 만만하게 베이컨/체다치즈 크림치즈와 통곡물 베이글을 고르고 스트로베리 크림치즈와 시나몬 베이글을 골랐다. 사실 처음 것만 고르고 두 번째 것은 무엇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어서 sweet 한 것으로 하나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내가 말을 잘못한 건지 아니면 그들이 잘못 알아들은 건지 반대의 조합이 나왔다. 가격은 잘 기억이 안 난다. 비싸지는 않은 가격이었다. 커피 한잔도 시켰다. 블랙커피였다.

빅맥보다 더 큰 베이글이 나왔다. 얼굴 길이만 한 종이컵에 커피도 가득 나왔다. 반씩 잘라달라고 하고 한쪽씩 먹으려고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작은 테이블 구석에 앉자 그때부터 출근하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가게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베이글을 한입 베어 문 순간... 아..... 존맛...(욕 죄송합니다)

충격적인 맛이었다. 밖에서 마시면 그저 그랬을 블랙커피일 텐데 베이글과 먹으니 환상의 꿀맛. 적당히 쌀쌀한 날씨도 한몫했다. 크림치즈도 크림치즈였지만 치즈가 어딜 가나 중박 맛은 친다 것을 감안했을 때 빵이 정말 맛있었다. 미국에서 빵을 더 많이 먹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쉽다. 좀 부지런 떨면서 아침마다 베이글도 사 먹고 할걸. 결국 이때는 두 맛의 베이글을 한쪽식 먹고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다음날 아침 그리고 다다음날 아침에 반쪽씩 꺼내먹었다. 














집에 돌아오면 잠이 올 줄 알았는데 집에 와서도 잠이 안 왔다. 바리바리 싸간 옷 중 그나마 따습고 예뻐 보이는(그러나 회사에서는 포졸 같다고 칭했던) 옷을 챙겨 입고 화장도 열심히 했다. 오전의 메인이벤트는 현대미술관 방문이었는데 10시 30분 오픈 한참 전 8시쯤 집을 나왔다. 근처에서 커피 한잔 하며 슬렁슬렁 돌아다니다 보면 금세 오픈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착각이었다)









드릅고 드리븐 뉴욕 지하철을 지나...

5번가에서 내렸다. 평일 낮의 지하철보다는 역시 평일 아침의 지하철이 더 재미있었다. 다양하다고 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 다른 사람들이 저마다 비슷한 표정을 짓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다. 아마 이 점 때문에 어떤 이들은 뉴욕을 좋아하고, 어떤 이들은 뉴욕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워낙 큰 건물과 회사들이 많아서 그런지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한쪽 손에 가방을 들고 다른 손에는 커피를 들고. 미디어를 통해 본 전형적인 미국의 출근길이었다.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며 살까. 서울에서 들던 생각과는 사뭇 다른 어마어마한 스케일이 나를 덮쳐왔다. 이날은 왜 그랬는지 배터리를 다 충전하지 않은 채로 샤오미 보조배터리 하나만 달랑 믿고 집 밖으로 나왔었는데 5번가 중간쯤 걷다가 케이블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발견했다(여행 중 케이블=생명줄)

우리나라 통신사 대리점 같은 곳이 있다길래 5번가 중간 즈음까지 가서 케이블을 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거의 반값에 다다르는 가격으로 일반 슈퍼에서도 아이폰 케이블을 팔고 있었다. 역시 한국이나 미국이나 잘 모르겠으면 편의점이나 대형슈퍼 가는 게 장땡이다. 덕분에 의도하지 않은 미국에서 산 기념품이 생겼다.







뉴욕에서 돌아다니는 동안 꽤 자주 보였던 그레고리 커피. 5번가에서 걷다가 걷다가 아침부터 힘 빼면 차후 일정이 지장이 있을까 싶어 들어갔던 카페였다. 나중에 나오면서 알았지만 꽤 큰 오피스 빌딩 밑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지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내려와 커피를 한잔씩 마시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주야장천 아이스 라테를 마셨다. 

여행자로서 가장 골치 아팠던 것 중 하나는 동전이었다. 미국 동전은 대체 왜 그런지 동전에 숫자도 쓰여있지를 않아서 이 동전들을 처리하는데 중간중간 힘들었다. 물론 4일 오후 정도부터는 아예 뻔뻔하게 여행자 정신을 발휘해서, '미안하지만 나 여행자라서 너네 동전에 익숙하지 않거든. 혹시 내가 지금 동전 어떤 거 쓸 수 있는지 네가 좀 골라줄래' 하고 손바닥을 턱 내밀었다. 처음엔 걱정하며 가게마다 손바닥을 내밀었는데 모든 직원들이 친절하게 동전을 꺼내갔다. 숫자까지 또박또박 세어주며. 괜히 동전 세다가 잘못 세고 또 세고 뒤에 길게 늘어선 다른 손님들의 원성을 듣는 것보다는 직원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지 않나 싶다.







그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미술관으로. 미술관 가는 길을 전부 다 막아놨다. 이날 콜럼버스 데이라 5번가에서 큰 퍼레이드가 있다고 했다. 11시부터 꽤 오래 진행된다고 하길래 일단 미술관에서 전시를 보고 나와서 구경해야겠다 했다. (다음 포스팅에서 나옴)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했던 모마. 그 모마에 내가 왔다! 

인터넷으로 표를 사 갔기 때문에 훨씬 빨리 입장할 수 있었다. 아무리 줄이 빠르게 줄어든다고 해도 줄은 줄이다. 인터넷으로 모마 티켓을 미리 구입해가면 입장할 때 바코드만 보여주면 되기 때문에 시간이 훨씬 절약된다. 나같이 줄 서는 거 싫어하고 시간이 촉박한 여행자들에겐 인터넷 사전 예매나 사전 구매가 그 역할을 톡톡이 했다.







사람들은 모마에서 피카소, 고흐, 앤디 워홀 정도를 가장 많이 언급하던데 솔직히 나 개인적으로 앤디 워홀은 별다른 감흥이 없었고 고흐도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놀란 것은 피카소와 고갱, 뚤루즈, 마티스, 그리고 미술관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플래시를 터뜨리지만 않으면 특별전시관을 제외한 모든 그림의 사진 촬영이 가능했다. 그래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는 원래 미술관이나 영화관에 가면 사진기는 접어두는 사람이라 그 광경이 신기하기도 했고 이상하기도 했다. 예전에 러키 루이에 나왔던 루이가 스탠딩 코미디에서, 부모들이 학예회에 가서 카메라 화면을 보느라 애들은 쳐다도 보지 못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영락없이 그 모습이 될 것 같아서 나 자신을 다잡곤 했다. 몇몇 신기하거나 인상적인 회화, 작품들은 그 모습을 담아두고 싶다기보다는 나중에 '아 여기에 이게 있었지'를 기억하자는 수단으로 대충만 적어두거나 찍어두었다.


그러나 여전히 미술관은 멋진 공간이다.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그림에 감동받고 자신의 언어로 그 그림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는 것. 그림 앞에 서있는 시간 그 자체에 심취해있는 이들이 가득한 장면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모두가 다 알만한 그림뿐만 아니라 작고 볼품없어 보이는 그림 앞에서 나와 같이 멈추어 서있는 사람들을 볼 때는 더 그랬다. 







마치 이렇게....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었다.

























피카소가 입체파인 것은 알고 있었으나 실제로 조소 형식의 작업을 이렇게나 많이 했다는 것은 이번 기회에야 알게 되었다. 작품명을 일일이 다 보지 않았고 남들이 유명하다는 것도 미술에 무지하여 다 알아채지 못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다들 우와 우와 하는 작품 앞에서도 잘 공감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아비뇽의 처녀들> 앞에서는 다른 이들이 종종 그랬듯이 그림에 시선을 빼앗겨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아 그 그림 앞에서만은 '사람들이 왜 다 피카소 피카소 하는지 알겠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건 뭐랄까 아주 강렬하고... 파괴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하고.... 그러니까 혼란스러우면서도 직관적이고... 어지러우면서도 올곧고...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강한 바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그래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이라기보다는 순간에 가까웠다.

















사실 살면서 현대미술에 크게 매력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게 사실이다. 현대미술은 뭐랄까, 아무리 작가들이 체험형이니 인터랙티브니 참여형이니 하는 정치적인 단어를 들이대도 '결국은 당신들 세계야' 라며 심드렁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무엇 같았다.

그러나 어쨌든. 

실제로 박물관을 돌아본 후에는 누구나 감동할 수 있는 그 예술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지 다시 한번 느낄 수가 있어서, 전시벽 중간에서 만난 <THIS IS FOR EVERYONE>라는 문장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칸딘스키!

어릴 적 어린이용 회화 안내서에서 스타카토, 아이스크림 슈팅스타 등이 연관된 이미지로 등장했었다.













샤갈의 이 그림도 정말 좋았지만 가장 오래 멈추어 서서 말을 잃고 바라보았던 작품은 마티스의 <춤>이었다. 생각보다 큰 크기에 놀라고 강렬한 색감에 놀라고 휘몰아치는 역동성에 놀라서 그림을 오래오래 뜯어보았다.


사람마다 다르겠으나 현대미술에 평소에 관심이 많아 이것저것 돌아보고 싶으신 분들은 최대한 오래 시간을 잡으시는 게 좋고, 나처럼 현대미술에 평소 관심은 없으나 미술작품을 보고 싶긴 하신 분들은 2~3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이라는 곳이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에는 다리도 아프고 보통 여행 중간에서 무작정 돌아다니기에는 체력적 소모가 크므로, 그래도 반나절에서 한나절 정도는 빼놓고 가시는 게 어떨까 싶다.

이건 뮤지컬을 보면서도 느꼈던 건데 어떤 박물관이든 더 잘 즐기고 싶다면 그 박물관의 대표작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미리 파악하고 적당히 공부를 해가는 것도 좋을듯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뮤지컬에 있어서는 넘버도 전부 다 공부해가고 배경도 공부해간 탓에 공연을 즐기는 동안은 다른 여타 관광객들보다 감동이 훨씬 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박물관을 돌아보는 동안 한 미술대학에서 조교가 학생들을 데리고 참석했길래 옆에서 몰래 설명을 훔쳐 들었다. 자세한 건 기억이 안 나고 조교가 이 박물관을 돌아보며 중점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세 가지 포인트에 대해서 짚고 넘어갔는데 마지막 포인트가 바로,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와 행동을 관찰해보라는 것이었다.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이 어떤 표정으로 작품을 관찰하는지 또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호기심과 작품에 대한 감상을 표출하는지 지켜보다 보면 오히려 그들을 관찰하는 행위를 통해 또 다른 작품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는 것.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그리고 박물관에서 나와 그 유명하다던 러브 조각상을 보러 갔는데...







사진 찍는다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줄 서있길래 그냥 셀카 한 장만 찍고 왔어...

꼭꼭 먹어보라던 대망의 할랄 가이즈에 줄을 섰다. 엄청나게 긴 줄이 늘어서있는데 줄어드는 속도가 LTE급. 양고기를 워낙 좋아하니 양고기+닭고기 캄보를 시켰고 콜라도 하나 샀다. 처음 받아 들고 펴보았을 때는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소스도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어서 조금씩만 뿌리며 먹어보려고 했다.









모두가 길에 앉아서 먹고 있는데 바로 앞에서 먹기에는 한국사람도 너무 많고 왠지 부끄러워서 좀 더 걸어 나왔다. 곳곳에 점심을 먹으라는 건지 바깥에 벤치가 마련되어 있어 혼자 자리를 펴고 앉았다. 그리고 한 입을 베어 먹었는데 아..............

아..........................

아........................................!!!!!!!!!!!?????????????????????

아 이건 정말 또 먹고 싶은 맛이었다. 솔직히 미국에서 먹었던 것 중에 제일 맛있었다.

꼬스름하니 고들고들한 주황색 밥도 맛있었고 양고기랑 닭고기도 지나칠 정도로 많이 들어가 있었고 오히려 쌀이 있으니 토르티야에는 별 감흥이 없었다. 아니 진짜 별거 안 들어간 것 같은데 왜 이렇게 맛있었는지.... 충격....







그런데 양이 너무 많아서... 여자분들이면 3명이 먹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난 혼자니까 야무지게 먹고 남기고 잠깐 들고 다니면서 나중에 센트럴 파크에서도 좀 먹었다가 결국은 버렸다. 하루 종일 밖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차마 집으로 들고 올 수가 없었다.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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