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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트 Oct 30. 2015

트립 투 뉴욕 얼론 - 10

Day5 첫 번째



Day5 센트럴파크,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Demarchelier 레스토랑, 가고시안 갤러리



아침에 편의점에 나가서 뿌리는 맨소래담을 샀다. 허리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온 하반신에 맨소래담 한번 뿌려주고 나니 잠깐 마비되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새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박물관에 뮤지컬까지 봐야 하니 혹여라도 눈이 피로할까 싶어 뉴욕에 있는 일주일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야무지게 안경도 썼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으로 가는 길은 멀지 않았다. 뉴욕 지하철은 그 노선도를 이해하고 제대로 타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정작 제대로 알고 타면 그렇게 빠를 수가 없었다. 청룡열차보다 훨씬 덜컹덜컹 거리며 온몸으로 자신이 달리는 기운을 내뿜는 지하철은 뉴욕 전 지역 어디든 30분 안에 사람들을 실어다 놓았다. 내가 자꾸 잘못 타고 이상한 데로 가고 중간에 잘못 내려서 그렇지....

박물관에서 내려 센트럴파크 옆길로 10분 정도 걸어야 했다. 전날 5번가를 통해 찾았던 센트럴파크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조용하고 차분하며 평화로운 '공원'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동네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저마다 운동복을 입고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작은 연못과 스케일이 다른 넓고 깊은 호수가 건물들을 품고 있었다.

이래서 다들 가을 뉴욕 가을 뉴욕 하는구나. 가을 하늘 공활하여 높고 구름 없더라.













뉴욕 특유의 분위기는 이 옛것스러운 건물의 외관들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정말 단 30cm의 틈도 없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건물들과 저마다 숫자를 앞에 달고 일렬로 쭉 뻗은 도로들. 그리고 울창한 나무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다 보니 그들을 대상으로 한 갖가지 작전(?)들도 펼쳐지고 있었다. 뉴욕에 가면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거리공연(과 CD 판매)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앞에서도 흥겹게 펼쳐지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분이 어찌나 경쾌하게 노래를 부르던지 나도 가서 1달러를 슬쩍 놓고 왔다.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10분 정도 자리에 앉아 감상하고 있는데 어느새 찾아온 경찰관 아저씨가 철수를 요구했다...

떠나며 유유히 손 흔들던 그 뒷모습이 잊히지를 않는다.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도네이션 1달러를 내고 입장했다. 음성 안내기 없이 입장해서 한 바퀴 돌다가 남들 다 끼고 있는데 안 끼고 있는 것도 아쉬워서 다시 내려와 기계를 빌렸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 음성 안내기는 한국어의 경우 모든 작품을 설명해주지는 않고 전시실마다 몇 개의 작품들만 설명해준다. 나머지는 전부 영어 설명이다. 다른 것보다 이 안내기가 전부 다 아이팟이라는 게 인상적이었다.







전날과 다름없이 사진기는 최대한 접어두려고 했으나 그래도 기억에 담고 싶은 것들은 좀 찍어두었다.










이곳에서도 인기 최고였던 고흐. 얼마 전에 동생이(닥터 후였나...) 살아생전의 고흐를 현실로 데리고 와 자신이 후세에 얼마나 사랑받는지 그리고 얼마나 위대한 예술가로 자리 잡아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영상 클립을 보내주었다. 고흐의 그림 자체도 소중하지만 어쩌면 불운한 예술가의 아이콘이라는 타이틀이 이 그림을을 더 떠나지 못하게 잡아두는 것 같다.

고흐, 르누아르, 모네... 수많은 작품들과 조각상들을 사이를 돌아다니는 순간순간이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만약 일정이 여유롭고 더 많은 시간이 있었더라면 그리고 체력이 조금만 더 받쳐주었더라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사흘 내 내도 방문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뉴욕에 방문하기 전 미술관, 갤러리, 박물관에 대한 정보를 찾아볼 때 많은 이들이 모마를 크게 추천했다. '메트로폴리탄은 볼 건 많은데 다리가 너무 아프고요 좋긴 하지만 모마가 더 좋았어요'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더 좋았다. 모마는 디스플레이나 건물 외관, 거리의 분위기 자체가 현대미술과 더 가까워 속칭 '오 세련되었다'라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나는 오히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품고 있는 그 어마어마한 힘과 역사에 압도되었다. 나중에 배터리 파크에서 만난 다른 관광객과 이야기를 해 보았을 때도 비슷한 이유로 자신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더 좋다고 했다.














다른 전시관들도 좋았지만 특히 이집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전시관을 방문했을 때는 귓가에서 둥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이집트관에서 만난 회화와 조각들이 담고 있는 무표정과 담담함에 매료되어 사람들이 지나가는 동안 그것을 오래오래 마주 보고 있었다. 오래된 물건을 마주했을 때 모든 이들이 평범하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으나, 누군가의 형상을 담은 이 돌덩이가 처음 사람의 손을 통해 만들어졌던 그 까마득한 때를 상상해보기도 하고, 이 돌덩이가 쉽사리 셀 수 없는 시간을 흘러내려와 지금 이 낯선 곳에서 나라는 존재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순간을 가만가만 새겨보았다.

그나마 이집트와 관련된 작품들은 미디어를 통해 접하거나 한국에서의 전시를 통해서도 종종 접할 수 있었지만 아프리카와 그 외 지역들의 작품들은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생소한 것들이었다. 남들 들으면 무식하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아주 상식적이고 원초적인 질문과 고민이었지만... 아프리카관에서 이것저것 돌아보다가 웃고 있는 얼굴 형상을 하나 만났는데 옆의 설명을 읽어보니 부정적인 것들을 내쫓고 평화와 조화를 불러오고자 조각된 브로치였다고 한다. 전 세계 곳곳에서 서로의 존재도 모르고 생김새도 너무나 다른 이들이 기뻐하는 얼굴과 슬퍼하는 얼굴이 같다는 것은 새삼 엄청난 우주적 사실처럼 느껴졌다.

제3세계 전시관만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높게 뻗은 조형물 앞 벤치에 앉아 '이집트,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전시관 짱! 완전 이국적!'이라고 썼다가 잠시 고민하고 이국적이라는 단어를 지웠다.







커다란 방에 잭슨 폴록 그림이 있었는데 마침 그 방에 아무도 없었다.

앞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놀멍 쉬멍 하며 캔버스 위의 흐름을 찬찬히 다 뜯어볼 수 있었다.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의 또 다른 매력은 옥상이었다. 계단으로 올라갈 수는 없고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데, 건물 중간중간 마련되어 있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근처 도시의 전경과 센트럴파크가 한눈에 펼쳐졌다. 옥상은 올라갈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혜가 알려주어 갈 수 있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놀랐던 점은 의외로 뉴욕에 다녀온 친구들이 많으며 그들이 전부 다 씩씩하게 혼자 다녀왔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코멘트와 뽐뿌가 없었다면 나 같은 겁쟁이는 차마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물론 그런 차원에서 나도 다녀왔으니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 역시 다녀오고도 남을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여행지에 가서 놀랐던 점은 혼자 다니는 동양인 관광객이 정말 적으며 그나마 혼자 다니는 동양인 관광객은 대부분이 한국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중국인은 주로 가족 단위, 일본인은 노부부들이 많았으며 대만 젊은이들은 몇몇 만났다. 그렇지만 오로지 혼자 온 동양인 여자는 (적어도 내가 본 바로는) 100% 다 한국 여성이었다.

할 말은 많지만 접어두기로 하고 한국 여성들 파이팅... 우리 잘하고 있어요 여러모로.... 더 잘합시다...(??)







이런 조각상도 많았는데 제법 별 감흥이 없었어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나와 걷는 길. 원래 구겐하임 박물관을 가려고 했으나 일정에서 제외했다.

사실은 전날 재즈 공연이 좋긴 좋았는데 막판 10분 정도는 졸음과 치열한 사투를 벌이는 탓에 이 컨디션으로는 저녁 스케줄에 큰 무리가 가지 않을까 싶어서, 여유롭게 걸어 다니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이날 아마 최고 걸음수를 찍었던 것 같다. -_-;;;

뉴욕 내 유명한 브런치 체인에 가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사람이 많고 줄이 길어 포기했다. Yelp를 통해 다른 음식점을 찾아봤더니 별점이 높은 곳은 이상하게 이날 휴점... 이래저래 헤매다가 괜찮아 보이는 가격대의 식당이 있어 큰맘 먹고 들어갔다.














혼자 식당에 들어가기가 너무 싫었다.

전날 볼프강 스테이크하우스에서의 나쁜 기억이 있었으므로 대충 맥도널드에 들르거나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었는데 이 동네에 그런 게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이 동네는 가십걸에 나오는 동네라서 나름 상류층들이 거주하는 곳이고 원래도 깨끗하고 잡다한 것이 없기로 유명한 동네라 하였다)

메뉴판이 앞에 비치되어 있어 샌드위치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되어 음식점으로 입성. 어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유쾌하고 덩치 큰 웨이터 아저씨가 나를 반겨주었다. 식전 바게트도 맛있고 옆에 앉은 백발노인의 백인 할머니들이 이제 막 계산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터키 아보카도 샌드위치를 시키고 손이 너무 더러워 화장실에 갔다 왔는데... 돌아오자마자 옆자리에 앉으신 할머니가 나를 부드럽게 꾸짖기 시작했다.

가방을 반쯤 열어놓고 화장실에 갔다 왔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네 나라에서는 이렇게 음식점에서 가방을 두고 화장실에 갔다 와도 별 문제없을지 모르지만 여기는 미국이고 뉴욕이기 때문에 너의 방금 행동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었다며 한참을 고롱고롱 말씀하셨다. 당황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한 내가 쏘리, 땡큐라고 이야기하자 나에게 쏘리 할 것은 하나도 없다면서, 지금 당장도 나는 네 가방에 손을 넣어서 이렇게 아이폰이랑 카메라를 꺼내갈 수 있단 말이야 유 리를 걸!(몸집은 내가 두배는 되어 보였는데) 하고 손가락질을 콕... 맞은편에 앉은 두 명의 할머니들은 혼자 여행 온 모양인데 즐거운 만큼 조심해야 한다며 brave girl은 careful 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따뜻한 호통을 주셨다. 물론 다른 곳에서야 가방 지갑 카메라는 정신 차리고 늘 챙겨 다녔는데 이날은 음식점의 노근 노곤 한 분위기에 취해 잠시 긴장을 늦추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 더 바짝 정신 차릴 수 있는 계기를 가졌다.







사실은 구겐하임 박물관보다 노이에 갤러리에 더 들르고 싶었는데 이날과 다음날 문을 열지 않아서... 목요일에 가겠다 야심 차게 마음먹었으나 목요일이 되니 또 노이에 갤러리 하나 보자고 그 동네까지 가기는 좀 부담스러웠다. 뉴욕에 일주일 머무는 동안 정말 정말 가보고 싶었지나 내 일정 또는 해당 장소의 일정 때문에 방문하지 못한 곳이 세네 곳 정도 되는데, 이곳들은 나중에 뉴욕에 방문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방문하겠다고 다짐했다. 그곳을 다시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하겠지만...
















그래도 갤러리 거리까지 왔는데 노이에 갤러리 못 가봤다고 바로 오기는 아쉬워서 찾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가고시안 갤러리가 있어 열심히 걸음을 옮겼다. 관람객들이 많은 보편적인 박물관 느낌이라기보다는 삼청동 등에 신진작가들의 소규모 개인전이 열리는 공간에 가까웠다. 예쁘고 신기하고 신박하지만 역시 무슨 소리인지 전혀 1도 모르겠는 작품들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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