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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트 Nov 03. 2015

트립 투 뉴욕 얼론 - 11

Day5. 렉싱턴 거리, 반스 앤 노블, 뮤지컬 라이온 킹


Day5. 렉싱턴 거리, 반스 앤 노블, 뮤지컬 라이온 킹


식사를 마친 후 가고시안 갤러리까지 방문. 이제 일곱 시 공연 전까지 어디서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돌아다니려면 맘껏 다른 갤러리도 구경하러 갈 수 있었으나 전 포스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피로가 누적되어.. 맨 정신으로 두 시간 내내 뮤지컬을 볼 자신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반스 앤 노블이라는 대형서점 지하에 스타벅스가 마련되어 있어 누구나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에 행선지를 결정. 아픈 다리를 이끌고 서점으로 향했다.


도시를 가득 메운 핼러윈 장식들. 아 미국에서 또 충격적이었던 것 하나가 생각났다.

사과니 배니 호박이니 하는 것들이 어쩜 그렇게 그림과 똑같이 생겼는지;;; 사과는 정말 백설공주가 집어 든 독사과처럼 생겼고 호박은 정말 그림책에 나오는 호박처럼 생겼다. 크기는 또 얼마나 크고 표면은 또 어찌나 반질반질하던지... 대한 사람은 신기방 기하기만 해











20분 정도를 걸었을까... 드디어 반스 앤 노블 서점이 나왔다. 걸어왔던 거리가 꽤 한적했던 것에 비해 서점 앞은 번화가라는 느낌이 강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서점들이 그러듯 렉싱턴 근처 반스 앤 노블도 지하 서점이었다. free wifi라는 글씨가 대문짝만 하게 쓰여있었지만 전 데이터 무제한... 심카드를 사 왔답니다... 건물 앞마다 무섭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가드 요원과 눈인사를 가볍게 나누고 서점으로 내려갔다.

서점은 정말 우리나라 서점과 또옥~같았고 크기는 오히려 작았다.

동경이나 북경을 방문했을 때도 대형서점은 늘 내 방문지 중 하나였는데 그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 정도로 작은 규모였다(물론 이 지점이 작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미국은 다 크니까) 서점의 구성도 분위기도 팔고 있는 잡화들도 너무나 우리나라 서점과 똑같아서... 실망이라기보다는 익숙하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바닥에 앉아서 책 보는 젊은 이들과 사회과학 서적 앞에서 서성거리는 할아버지들의 분위기조차 비슷해! 여성학 앞에서 책 고르는 여자들 분위기도 비슷했다! 신기해!







이런 분위기였는데

우리나라 서점이 그렇듯 여기 서점도 카메라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면 혹시 책 찍어갈까 불쾌해할까 봐 사진은 여기서 그만 멈추었다. 지하 1층과 2층에 책이 진열되어 있었고 지하 2층에는 스타벅스가 있었다. 북카페 같은 분위기는 아니고 우리나라 서점 안에 자리 잡은 카페처럼 구입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정도. 그리고 밑에는 수첩이나 일기장 문구류를 파는 잡화점도 있었다. 역시 미국의 카드는 대단해 예뻐 멋져. 돈만 있었다면 카드 전문점에 들러서 온갖 카드를 다 사 올 수도 있었을 텐데...







어쨌든... 그래서 구경하다 집어 든 것은 이 땡큐 쏘 머취 카드.

한국에 돌아가서 편지를 전달할 수신자는 비행기표 시원하게 긁어주신 엄마와 아빠... 펜이 없어 기념품 급으로 할인 중인 스타워즈 한정판 볼펜도 사고(정작 스타워즈 한편도 안 봤음) 한쪽에는 카드를 쓰고 한쪽에는 나름 카드 쓰고 있는 나를 그렸다.







발퀄... 이럴 거면 그리지 말지.....







카페 옆에 마련된 잡지 코너에서 재미있는 책들을 발견했다. iPad for beginners, Beginners' Mac 등등 수많은 전자기기 입문서였다. 우리나라도 처음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나 새로운 전자기기가 출시될 때마다 우후죽순처럼 안드로이드 초보, 안드로이드 이렇게 정복할 수 있다 등의 제목을 한 책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지 않나. 실제로 책 앞에서 서성거리거나 책을 집어 드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얼추 한국의 소비자들과 비슷한 듯해서 의미 있게 여겨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social issue 또는 political issue 면을 채우고 있던 책. 지나가다 언뜻 보고 '오 한국사람처럼 생겼다'라고 생각했는데 한국 사람이었다. 탈북자 여성들의 수기였다. 학부생 때 북한학 수업을 들으며 나도 꽤 자주 들춰보곤 했었는데 탈출 과정을 상세히 적어 내려 가는 이런 식의 책은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보다 더 뜨거운 반응을 얻는 듯하다. 학부 막 학기 쯔음 내가 읽은 책 역시 한 탈북자 여성이 북한에서 지내온 이야기, 힘겹게 탈출한 후 우리나라에서 적응하는 이야기 등이 적힌 영어서적이었다. 외국인 교환학생들이 많은 수업이었는데 꽤 심도 깊은 이야기가 오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북한을 탈출하고 새 삶의 터전을 꾸리는 과정을 풀어내는 방법이야 책, 영화, TV 프로그램 등등 많을 테지만 최근에는 그 화자가 가지는 특수성에 대해서도 새삼 같이 생각해보게 된다. 종편 방송에서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다룰 때도 주로 20대의 아름다운 여성들이 주목받고 서적이 홍보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해외에서는 아예 확연하게 클로즈업된 여성들의 얼굴이 표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해외에서 주목받는 탈북자들의 수기는 in order to live, a thousand miles to freedom처럼 북한 내에서 겪어왔던 괴로움과 탈출 과정의 위험천만한 삶 그 자체에 집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 미디어 내에서 등장하는 탈북자들에 대한 담론은 이제 뛰쳐나오는 그 과정의 고난을 넘어서서, 우리나라와 비교 아닌 비교의 잣대를 들이댔을 때 북한의 사회가 내포한 말도 안 되는 모순을 비판하는데 집중한다. 우리나라에서 적응하는 것의 어려움 또는 우리나라에 처음 와서 느끼는 낯섦은 덤이다. 종편 방송 등에서 방영하는 탈북자 중심의 프로그램을 일일이 챙겨보는 것은 아니지만 의외로 우리나라와 북한이 갖는 차이점을 희화화시키는 측면이 많아 당황스러웠던 경험이 있다.

뭐 어찌 되었건 우리나라에만 있을 때는 전혀 체감하지 못하다가 외국에 나갈 때마다 문득문득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3년 전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신기한 일이다.


발 닿는 대로 싸돌아다니다 보니 일정이 벌써 헷갈리기 시작해 몰스킨 수첩을 하나 샀다. 지금까지 받아온 티켓들을 중간에 껴놓고 스타워즈 한정판 펜으로 내용을 적어 넣었다. 나 자신에게 주는 기념품으로 책을 한 권 사고 싶었다. 사실 영문판으로 꼭 읽어보고 싶었던 책들은 이미 원서가 집에 있었기 때문에 고민 고민하다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겨 브로드웨이로.

뉴욕에서의 첫 뮤지컬은 라이온 킹이었다.








그 많은 도시중 뉴욕을 선택한 것의 가장 큰 이유는, 다시 말하지만 공연과 뮤지컬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떤 공연을 선택해야 할지 어떤 공연을 봐야 나의 만족도가 가장 클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결론적으로 선정된 세 편의 뮤지컬은 라이온 킹, 위키드, 북 오브 몰몬이었다.

다채로운 뮤지컬이 상영되는 만큼 많은 작품들 중 어떤 것을 봐야 할지 고르는 것도 어려웠다.

우선 후보군에 두었던 뮤지컬은 라이온 킹, 위키드, 알라딘, 킨키 부츠, 몰몬의 책, 위키드, 해밀턴, 스프링 어웨이크닝, 피핀 등이었다.


몰몬의 책은 가장 우선순위로 두었다. 사우스 파크 제작진이 프로듀싱한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부터 꼭 보고 싶은 뮤지컬 중 하나였고 우리나라에 언제 수입될지 모르는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토니 어워즈에서 공연된 Hello! 와 I believe를 말 그대로 50번은 돌려봤을 나의 덕력이 이 공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꼭 봐야 한다고 울부짖고 있었다.

해밀턴, 피핀은 우선 가장 먼저 제쳤다. 아직 한국에서도 리뷰가 많지 않아 내용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갈 자신이 없었다. 뮤지컬 넘버 그 자체에 큰 흥미가 생기지 않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알라딘은 토니 어워즈 무대에서 Friends Like Me나 A Whole New World 무대 구성을 미리 접했다. 화려한 볼거리와 익숙한 뮤지컬 넘버가 기대되긴 했지만 디즈니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라이온 킹, 알라딘 중 하나만 선택하고 싶었다. 라이온 킹은 이제 곧 브로드웨이에서 볼 수 없는 데다가 Circle of Life 무대도 이미 수십 번 유튜브에서 돌려본 바가 있기에.. 알라딘과 고민하다가 라이온 킹을 선택.

킨키 부츠 역시 장바구니까지 티켓을 담아두었는데 다른 공연들과 시간이 겹쳐 보지 못했다. CJ E&M 탓도 있고 이래저래 토니 어워즈 무대도 흥겨워서 관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공연을 미루면서까지 보고 싶지는 않았다.

한 작품 정도는 한국에서 본 것을 브로드웨이 버전으로 다시 보고 싶어 위키드를 선택했다. 위키드는 전반적인 스토리와 별개로 아주아주 좋아하지 않는 캐릭터가 주인공 중 하나여서... 보면서 열불 터지는 장면이 한두 개가 아니지만... 그래도 극 자체는 훌륭하니까.


 직접 본 뮤지컬들에 대한 감상은 포스팅마다 천천히 하도록 하겠다.


뉴욕에서도 그렇고 갔다 와서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뉴욕에 가서 뮤지컬을 꼭 봐야 한다 생각하냐고 묻던데 나는 누구나 꼭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실 비용과 시간문제로 뮤지컬을 못 보는 사람들은 많겠지만 뮤지컬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음악과 춤, 현란한 볼거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러나 혹 뉴욕에 온 본질적인 이유가 따로 있는데 뮤지컬 때문에 그것을 포기해야 한다면 그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남들 다 좋아한다고 해서 나도 꼭 좋아하란 법 없고 남들 느끼는 감동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장담도 할 수 없다. 나는 그런 이유로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가지 않았다.

아 그러나 이것은 확실히 이야기하고 싶다. 영어실력은 자신이 없고 그래도 뉴욕에 왔고 평소에 뮤지컬에 관심이 그다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편이고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하나 보고 싶다 하시는 분들께는, 라이온 킹을 강력추천드린다. 정말로....(물론 뮤지컬 좋아하시고 자주 보시는 분들도 마찬가지)







라이온 킹이 상영되고 있는 민스코프 극장.

나는 좋은 자리를 예매하고 싶어서 미리 티켓마스터를 통해 구매해갔다. 로터리 등 현장에서 싸게 티켓을 구입하는 방법도 있으나 뉴욕에 짧게 머무르는 여행객은 줄 서는 시간도 아까워 한국에서 모든 표를 예매해두었다. 표를 꼭 프린트 해갈 필요는 없으나 휴대폰 화면이나 예약번호만 들고 가면 어차피 거기서 현장 티켓을 발권해야 하기 때문에 웬만하면 표는 뽑아가시는 것을 추천한다(참고로 예약번호로 티켓 찾을 때는 신분증, 여권 필수다)

극장은 딱 다른 뮤지컬 극장만 했다. 나는 스무 번째 줄 정도에 앉았는데 보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한쪽에는 딸과 함께 보러 왔으나 혼자 자리에 앉게 되신 백발의 할머니가 앉으셨고 다른 한쪽에는 이탈리아 가족이 앉았다. 극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데 어떤 할머니가 내 팔을 너무나 다정하게 잡으며 '투 매니 피플! 투 매니 피플!' 하셨는데... 알고 보니 이 할머니는 내가 같이 온 딸인 줄 알고(나중에 보니 뒷모습이 정말 똑같았음) 내 팔을 부여잡으신 것. 너무나 미안해하시길래 괜찮다며 웃고 넘겼는데 알고 보니 내 왼쪽에 앉는 관객이었다. 오른쪽에 앉은 이탈리아 엄마는 극 중 내내 말 오지게 안 듣는 막내아들에게 영어 대사를 실시간으로 통역해주다가(진짜 경악했음) 할머니에게 호되게 옮기고 나서 복도 끝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날을 포함해서 3번의 뮤지컬 공연 동안 다양한 옆자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청승맞게 들릴 수도 있겠다만 라이온 킹의 오프닝 곡인 Circle of Life를 들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쭐쭐 흘러나와서 몇 번이나 휴지로 얼굴을 닦아냈다. 라이온 킹 만화영화에서뿐만 아니라 뮤지컬 오프닝으로도 워낙 명성이 자자한 곡인데 현장에서 실제로 들으니 정말 가슴 한복판이 뻥 하고 달아오르는 느낌이었다.



https://youtu.be/2W_Zblr09 Y0




라이온 킹은 익숙한 노래에 맞춰 움직이는 신기한 무대와 의상으로도 유명하다. 실제 뮤지컬 공연에서도 첨부한 영상과 같이 코끼리, 새, 사슴 등이 관객들이 있는 복도를 통해 어슬렁거리며 등장한다. 영상으로 볼 때도 신기했지만 실제로 보니 정말 동물의 움직임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어서 그 자연스러움이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코끼리 등장은 말할 것도 없고 물새가 머리 위로 떠다니는데 내가 정말 혼자 뉴욕에 와서 사흘을 무사히 지내고 여기 앉아서 뮤지컬을 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주룩....

(공연 중에는 촬영이 절대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구글에서 구한 이미지를 첨부한다)










인터미션 때는 밖에서 칵테일이나 음료수를 파는데 3달러였나 어쨌든 돈을 조금 더 내면 라이온 킹 포스터가 박힌 플라스틱 컵에 음료를 담아준다. 이 컵 자체가 기념품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혹시나 짐이 될 수 있는 브로셔나 번잡스러운 기념품을 받느니 차라리 음료수를 조금 비싸게 주고 사 마시는 것이 낫다.

라이온 킹의 줄거리나 그 감동에 대해서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테니 이에 대한 언급은 줄이겠다.

다만 아주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졸았다...

너무 많이 걷기도 했고 스테이크와 같이 와인은 있는 대로 마셨고 칵테일도 낭랑하게 마셨고... Circle of Life, Be prepared, Can't wait to be king 같은 쿵짝쿵짝 시끄러운 노래 가득한 1부를 지나 잔잔한 노래가 가득한 2부에서는 중간중간 정신을 놓았다. ㅠㅠ 지금 생각하니 너무 아쉽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저녁에 공연을 보다가 푹 잠이 든다고 하는데... 그 심정이 정말 백 퍼센트 이해 가면서... 그래도 다시는 단 1분도 놓치고 싶지 않아 이다음날 공연부터는 레드불을 들이켜고 입장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고 그 어디에선가 만난 아름다운 야경과.





















생애 처음 쥐 소리를 듣게 해 준 뉴욕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인생 컷까지 건졌다. 그렇게 뉴욕 여행의 반절이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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