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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트립 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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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트 Nov 06. 2015

트립 투 뉴욕 얼론 - 12

Day 6. 첫 번째

Day 6 워싱턴스퀘어 파크, 그리니치 빌리지, 세인트폴 채플, 트리니티 교회, 9.11 그라운드 제로



이날도 역시 온 하반신에 스프레이 파스를 뿌리고 일정을 시작했다. 


6일째의 일정은 나름 개인적으로 특별한 애정을 갖고 열심히 꾸린 일정이었다. 계획대로라면 워싱턴스퀘어 파크, 마 문스 팔 라페(식사), 소호, 에일 린스 스페셜 치즈케이크, 센츄리 21, 월스트리트, 뉴욕 증권거래소, 911 메모리얼, 맥도널드(식사), The Book of Mormon 관람, 르뱅 루프탑 바로 이어졌어야 했다. 그러나 그 전의 일주일 일정이 그랬듯이 이날 하루도 절대로.... 계획대로 움직이지는 못했다...

그래도 첫 여행지는 늘 씩씩하게 가려고 했던 대로다.

여행후기 첫 포스팅에 쓰기도 한 말이지만, 사실 나는 뮤지컬 몰몬의 책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뉴욕이라는 도시에 갖는 환상이 적은 편이었다. 아마 뉴욕이 아름답게 등장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많이 접하지 못한 탓이 컸을 것이다. CSI와 로 앤 오더 등 범죄자의 총격이 계속되는 도시만 상상하고 있는 나에게 친구가 <비긴 어게인>을 추천해주었다. 뉴욕이라는 공간뿐만 아니라 그게 무엇이든 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도 전환점이 되는 영화일 것이라고. 친구의 추천은 역시나 옳았다. <비긴 어게인>의 타이틀 곡인 Lost Stars도 말할 수 없이 좋지만 내가 좋았던 곡은 키이라 나이틀리가 거리와 옥상에서 녹음하는 곡들이었다. 그중에서도 Coming up Roses와 Tell me if you wanna go home 이 두 곡이 그렇게 좋더라. 그러다 보니 당연히 워싱턴스퀘어 파크, 여기는 꼭 가봐야겠다며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워싱턴스퀘어 파크에 방문하기 위해 지나쳐야 하는 그리니치 빌리지 특유의 분위기도 꽤 궁금했다.














키이라 나이틀리가 음악 들으면서 걸어가고 마크 러팔로가 흥얼거리고 갑자기 렌트 주인공들이 CD 들고 말 걸 것 같고 그랬다.









이날도 역시, 물방울 부서지는 분수가 너무나도 잘 어울렸던 세련된 날씨.










일단 공원의 모습만 놓고 보더라도, 뉴욕 안에서 만난 여러 개의 공원들 중 워싱턴스퀘어 파크와 브라이언트 파크가 가장 좋았다. 그러나 높게 뻗은 빌딩들 사이로 앙증맞게 놓여있는 브라이언트 파크와 달리 워싱턴스퀘어 파크는 한적하고 자근자근한 거리들 사이에 늘 자리하고 있는 쉼터 같았다. 알록달록 각양각색의 색깔로 빛나는 예쁘고 매끄러운 돌멩이들이 자글자글 모여있는 느낌이었는데 아마 여기저기서 운동을 하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다양한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물 밑에 누워서 머리맡으로 떠가는 색색깔의 프리즘을 보는 기분이었다. 한적하지만 적막하지 않았다. 그 분위기가 그렇게 좋았다.









공원 정문에 자리 잡고 있는 문이 멋들어진 것은 오히려 덤. 





청년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사진에는 찍히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비키니를 입고 있었으며 텀블링을 뛰고 소리를 지르고 피아노를 치고 머리를 흔들었다. 뭐랄까 마치 뮤지컬 <렌트>에 나오는 La Vie Boheme 같은 분위기였는데 놀라운 것은 이들의 실력이 아주 형편없이 별로였다는 것이다. 음도 하나도 안 맞고 피아노는 왜 치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다들 텀블링을 하려는 것 같은데 자꾸 넘어지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정말 정말 못하는 친구들 같았다.

그러나 보기 좋았다. 

신기하게도.

뭐랄까 열정과 정열 청춘 따위의 낯간지러운 단어를 쓸 필요도 없이, 그냥 그 날것의 에너지가 좋았다. 생고기, 프랙털, 힘, 엔트로피, 날것, 자외선, 열, 폭발, 상투적이고 예상 가능한 단어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부끄러워하지도 않았고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예뻐 보이거나 멋져 보이려는 생각도 없어 보였다. 어떤 이들은 나처럼 멈춰 서서 사진을 찍기도 했으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그냥 고개를 돌렸다. 그러려니. 그리고 자기가 할 일을 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그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거의 전라의 남학생과 여학생이 다가와 말을 걸자 어색하게 자리를 피했다. 돌아서니 아쉬워 다시 뒤를 돌아보니 한 할아버지가 그들과 정겹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쫄보...





풀턴 스트릿 스테이션. 지하철역을 사진 찍은 이유가....

뉴욕에서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진짜 공공시설도 이렇게 후진 공공시설이 없을 거다 욕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나마 풀턴 스트릿 스테이션은 우리나라 지하철역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동안 뉴욕에 있으면서 에스컬레이터 있고 천장 뻥 뚫려 있으며 그나마 우리나라 지하철역 같은 지하철역을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것 같다. 오죽 감동스러웠으면 사진도 찍어놨음.





굳이 사진을 찍진 않았지만 근처에 센츄리 21이 있어 들어가 보았다. 사실 뉴욕에서 쇼핑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1도 하지 않았던지라 대부분 쇼핑으로 유명한 곳들은 옆에 둘러볼 게 있으면 지나가는 길에 들러보자는 계획이었다. 외관으로 보았을 때 센츄리 21은 그다지 깔끔해 보이지도 않았고 커 보이지도 않아서 대체 이 아웃렛이 왜 이렇게 강조되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들어가 보니 그 이유가 온몸으로 다가왔다.

쇼핑에 약간의 공포심을 갖고 있는 나는 그 어마어마한 물건들의 양에 일차로 기가 질렸다. 저마다 트렁크 크기의 카트를 들고 다니는 것에 놀란 것이 두 번째였다. 큰 진열대 위에 널려있는 시계와 가방, 벨트, 스카프 그리고 가격에 무지한 내가 봐도 한국과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로 적혀있는 가격표까지. 특히 몇 개 브랜드는 한국에서 다시는 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아니 한국에서는 너무 비싸서 잘 사지도 못했다) 가격차이가 대단했다. 사실 센츄리 21은 시내 안에 자리 잡고 있는 데다가 대규모 아웃렛들에 비하면 시내 슈퍼에 다름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뭐랄까... 그곳에 들어섰을 때의 충격은 마치 베이징의 이케아를 방문했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다.

삼십 분 정도 돌아보다 보니 벌써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왔다. 사려고 오래오래 살펴보면 확실히 사고 싶은 것이나 살만한 것들이 있을게 분명했으나 이날의 일정도 만만치 않았기에 마음은 접어두었다.

언젠간 미국에 또 오겠지 뭐.... 기약 없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품으며.





점심을 먹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아침도 먹지 않고 바로 숙소에서 나왔으므로 허기가 졌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마땅한 식당이 보이지 않아 푸드트럭들이 모여있는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유독 줄이 긴 트럭 앞에 서서 기다렸다. 다들 다양한 것을 시키는데 나는 바로 앞에 있는 아저씨가 시키는 것을 따라 시켰다. 양고기와 닭고기... 라이스... 뭐 그런 이름이었다.

봉투를 떨렁 떨렁 들고 와 벤치가 마련된 곳에 털썩 앉았다. 내가 앉자마자 비둘기들이 나를 째려보는듯했다.






그리고 열었더니 뙇!!!!!!!!!!!!!!!!!!!!!!!! 할랄 가이즈 뺨치는 어마어마한 양

콩도 들었고 밑에는 양상추도 있고 미지근한 토마토도 있었다. 하얀 브로콜리를 식초에 절인 것인지 피클 느낌 나는 게 괜찮았다. 소스는 여전히 듬뿍듬뿍 뭐랄까 고기와 밥을 소스에 적셔먹는 기분이랄까. 저렇게 '나 콩이요'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콩은 기피하는 편이었는데 콩도 먹을만했다. 맛있었다. 이 전날 집에 가는 길에서 발암물질(a.k.a. 핫도그)도 푸드트럭에서 사 먹었는데 나는 왠지 길거리 음식들이 더 입에 맞았다. 입맛이 저렴이....

자리에 앉아 콜라와 함께 꾸역꾸역 씹어 삼켰는데 먹어도 먹어도 양이 줄지를 않았다. 게다가 식탁이 없어 손으로 들고 먹는데 밥알 한 개라도 떨어지면 비둘기들이 나의 발가락을 쪼을 것처럼 노려봐서 도저히 편하게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밥을 먹고 오후의 메인 일정 중 하나인 그라운드 제로로 향했다.

이런 어휘를 사용하기에는 조심스러운 공간이지만 사실 뉴욕 일정 중 가장 방문해보고 싶은 곳 중 하나였다. 국제정치와 역사 등에 대한 지식이 깊지 않아 9.11 테러가 전 세계에 어떤 실질적인 영향을 끼쳤는지 전문적으로 풀어낼 수는 없다. 그러나 뭐랄까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테러라는 단어가 전 세계인들에게 생생하게 전해졌던 그 날, 일상생활 동안 갑자기 공포와 소멸을 맞닥뜨릴 수 있다는 불안감이 모두에게 전해졌던 그 날. 그 날을 잊지는 못한다.





그라운드 제로로 가는 길에 문이 열려있어 들어가 본 세인트 폴 채플.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911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테러 당시 자신의 사명을 다하다가 목숨을 잃었던 경찰관, 소방관들을 추모하는 공간이 함께 마련되어 있었다. 사진으로 남겨두지는 않았지만 당시 소방관들과 경찰관들이 직접 착용했던 복장과 사용한 기구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작은 성당 구석에 마련된 탁자지만 희생자들을 사랑한 이들의 슬픔과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애도가 곳곳에 배어 있다. 





당일 오후에 공연이 있었는지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이 모여 함께 리허설 중이었다. 교회에서 열리곤 하는 별것 아닌 공연을 생각했지만 첫 곡이 시작하자마자 그 엄청난 분위기에 기가 눌려 20여분 정도 리허설 장면을 구경했다. 도시 곳곳에서 만나게 되는 우연한 음악들에 마음이 빠듯해졌다. 더불어 더 음악으로 찬 도시, 더 음악으로 찬 나라를 방문해보고 싶다는 작은 소망도 함께 다졌다.

그리고 세인트폴 채플을 나와 근처의 트리니티 교회로 향했다.







세인트폴 채플보다는 규모도 훨씬 크고 보다 '나 교회야! 나 성당이야!'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다들 트리니티 교회, 트리니티 교회 하지만 생김새는 우리나라 성당들과 더 비슷한 면이 있어 그 고즈넉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걷고 걸어 다시 그라운드 제로로.








아주 높은 월드트레이드센터. 진짜 어마어마하게 높다. 테러로 인해 붕괴된 세계무역센터와 같은 모습으로 건설이 계획되어 있었는데 언론과 유가족들의 비판으로 인해 다른 디자인을 채택했다고 한다. 프리덤 타워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바로 앞에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그라운드 제로와 911 메모리엄 뮤지엄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이상하게 생긴 건물이 지어지고 있는데 여러 교통수단과 쇼핑몰을 함께 유치해 그 내부 모습은 마치 쇼핑몰처럼 꾸며질 것처럼 광고가 되어 있었다. 다 완공되면 역시 무지막지한 스케일의 건축물이 탄생할 것 같다.

그리고 그라운드 제로에 도착.

박물관도 방문해보고 싶었지만 줄이 너무 길어 기다릴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원래 건물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크고 깊다. 쌍둥이 건물이었기 때문에 두 개의 구멍이 깊게 파져 있다. 사진을 잘 보면 사람들이 테두리에 속속들이 서있는 것이 보인다. 그렇게나 큰 건축물이었다. 테두리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검은 구멍 안으로 잔잔한 물줄기가 내려앉는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어루만져보기도 하고 흘러내리는 물줄기들을 바라보며 침묵을 지키기도 한다. 이 물은 911 테러로 슬퍼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형상화한 것이며 이 눈물이 땅으로 흘러들어가는 폭포를 이룰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아름답다는 단어를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라운드 제로는 낮에 보는 모습보다 밤에 보는 모습이 더 아름답다고 한다. 이날 오후 알게 된 터키 관광객은 자신도 그라운드 제로에 들렀다가 이곳까지 걸어왔는데, 저녁에 다시 한번 더 그곳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저녁에 본 그라운드 제로의 사진은 구글에서 가져왔다...)







두 구덩이를 천천히 돌아보는 동안 많은 관광객들이 자신의 언어로 서로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표정은 하나같이 다 숙연했다. 뉴욕은 어딜 가나 셀카 찍는 관광객들이 많기 마련이지만 이곳만은 그렇지 않았다.
















무고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다. 사랑하는 이들을 갑자기 순식간에 잃게 되었다. 그 슬픔을 응축한 물방울이 떨어져 내린다. 

뭐 얼마나 더 구구절절한 감상이 필요할까.





그라운드 제로를 나와 월스트리트로 걸어가는 길.

THIS IS WHO WE ARE.

오전 워싱턴스퀘어 파크에서 마주한 날것의 감정과는 또 다른 원초적인 감정이 사람들을 덮쳤다.

반짝거리는 도시 사이 검게 패인 두 바닥이 사람들의 슬픔을 집어삼키고 또다시 슬픔을 토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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