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버트 May 20. 2015

우리가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너는 내가 왜 좋아? 라는 질문은 늘 듣기 좋으면서도 무서운, 단거(danger)의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주 자주, 아주 많은 연애관계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린다. 

절대로 티를 내지도 않고, 절대로 티를 낼수도 없지만 '너는 항상 나를 배려해주니까, 넌 착해서, 넌 센스있어서' 다음과 같은 기분좋은 대답들 사이에 '니가 예뻐서, 니가 잘생겨서' 따위의 대답이 없는 것이 못내 서운해지곤 한다. 금새 시무룩해지는 서운한 마음과 '내가 이렇게나 치졸하고 빙신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니'라는 자괴감은 덤이다. 

너는 내가 왜 좋아?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첫 의도는 절대 그러하지 않았지만, 꽤나 여러번 혹은 꽤나 자주 우리를 좌절시켰다. 그 당시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계속.



우리는 상대방이 좋아하는 우리의 면면을 극대화시키고 싶어한다. 그래서 자꾸만 묻곤 한다. 

'나의 어떤 면이 좋아? 나의 어떤 면 때문에 나를 만나는거야? 나의 어떤 면이 매력적이야?'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들은, 듣는 순간만은 언제나 근사했으나 점점 곱씹을수록 쓴 물이 뚝뚝 흐른다. 내 장점이 구구절절 흘러나오는 답변들을 들을때마다 나는 그런 사람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만 커진다. 더욱 모순적인 것은, 나는 그런 사람과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커질수록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쉬워진다는 것인데, 이 매커니즘은 의외로 단순하다. 

우리의 본모습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모습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오히려 상대방이 좋아하는 모습으로 우리를 잘 포장할 수 있다. 딱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우리가 별로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과 반대로 행동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속으로는 불길이 솟아도 겉으로는 차갑게 웃어넘기면 그만이다. 오히려 우리가 느끼는 모습을 그대로 사랑한다고 상대방이 이야기했더라면, 우리는 대체 이 모습들을 어디까지 보여주어야 하는지에 대해 미친듯이 고민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는 오히려, 그냥 우리가 가진 모습의 반대편 모습만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그건 의외로 어렵지 않다. 

나중에 모든 일들을 그르치는 촉진제가 되겠지만.


실망. 우리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실망하는 것이 무서웠다. 그게 우리가 사랑하는 상대방이라면 더욱 무서웠다. 그래 우리는 세상에서 그게 가장 무서웠다.


너는 내가 왜 좋아? 다음에 옆에 있을 누군가에게는 이런 말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너는 내 있는 그대로를 좋아할 수 있니? 아니 그걸 볼 자신이나 있어? 니가 과연 그걸 볼수나 있을까? 그런 악에 찬 말들, 우리는 이제 그만할수 있을까.


아니 그보다 내 모든 면을 아끼겠다는 사람을, 우리가 정말 사랑할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