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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트 Jan 14. 2016

트립 투 뉴욕 얼론 - 14

Day7. 첫 번째


Day7. 첼시, 펜스테이션, 메이시스 백화점, 타임스퀘어





뉴욕에서의 거의 마지막 날 아침. 출국은 다음날이지만 그다음 날은 눈뜨자마자 공항에 가야 할 스케줄이었으므로 일정상으로는 거의 마지막 날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래도 좋은 기회로 얻게 된 포상휴가였어서 그런지 빈손으로 한국에 돌아가기에는 죄책감이 가득하여 뭐든 사러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었다. 뉴욕이 박힌 자석은 너무 뻔한 것 같아 사기 꺼려지고(그런데 왜 이렇게 다들 많이 사 오는지 알 것 같았다. 무지 많고 무지 쌌다. 무지 예쁘고) 먹을 것을 사 간다 한들 특별한 것을 사 가고 싶었다. 스냅사진 촬영할 당시에 작가님에게 물어봤더니 Trader Joe's나 Bed Bath&Beyond를 추천해주셔서 마지막 날 오전 일정은 그 두 곳으로 정했다. 다행히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두 지점이 함께 붙어있어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선크림도 바르지 않은 채로 주섬주섬 길을 나섰다. 한국인의 패션 치깅스에 유니클로 패딩을 입고..


Trader Joe's는 이마트 식료품 가게 같은 느낌이고 Bed Bath&Beyond는 소규모 이케아? 동네 이케아? 같은 느낌이었다. 동네와 이케아라는 단어는 둘이 붙어 있기에 얼마나 이질적이고 합해져서는 안 될 단어 같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네 이케아라는 단어가 얼마나 이 가게와 어울렸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관광객 티 팍팍 난다고는 하지만 굳이 식료품점이나 생활용품 파는 가게에서 카메라를 켜고 싶지는 않아 그 무지막지한 물건들 앞에서 꾹 입을 다물고 쇼핑카트만 밀었다.

저녁에 고디바에서 나머지 선물을 구입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주방용품 몇 개와 커피를 위주로 샀다. 엄마가 동생 보러 샌프란시스코 갔다 오면서 스타벅스 원두 갈린 것을 사 왔는데 묘하게 카페 모카와 캐러멜 마끼아또 향이 나는 것이 아주아주 신박했다. 몇 박스 집어다 놓고 내 것도 몇 개 주섬주섬 담았다. 신용카드를 해외에서 쓸 수 있는 자의 자유란 진심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도 뉴욕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나 다름없는데 브런치는 한번 먹어봐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유명한 브런치 가게들은 이 꼴 이 차림으로 짐 가득 들고 방문하긴 좀 웃길 것 같아서 다소 시무룩한 마음으로 투덜투덜 걷고 있는데 으잉, 혹시 몰라 검색한 breakfast라는 단어에 별점이 꽤 높은 식당이 하나 잡혔다.











허름하고 작은 공간 안에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각자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그 모습이 그렇게 드라마 속 모습 같아서 괜히 가슴 떨렸다. 뉴욕이 주인공인 드라마를 또는 영화를 많이 보지 못해 큰 환상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가슴이 떨렸다. 식료품점에서 잔뜩 짐보따리를 싸들고 와서 그런지 크게 관광객처럼 보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가장 기본으로 보이는 핫케이크와 햄을 시키고 커피 한 잔도 함께 달라고 했다. 미끈거리는 팔뚝을 드러낸 아저씨는 시원하게 대답하며 밑의 직원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영어가 서툰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자를 으깨기도 했고 베이컨을 굽기도 했다. 사람들이 쉴 새 없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나는 자리에 앉아 마지막 날을 어떻게 어떤 이야기로 채워나가야 할지 그리고 돌아가서 어떤 시간을 보내야 할지 잠시 고민하고 있었다. 

금세 얼굴만 한 핫케잌 세 장이 놓였다. 얇은 햄은 달랑 두어 장뿐이었다. 보자마자 크게 실망했다. 옆 사람이 먹고 있었던 것은 기본 핫케이크가 아니라 이것저것 위에 추가한 것인 모양이었다.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목이 메이지 않을까, 다른 걸 좀 더 시킬까 싶었지만 이 어마어마한 양도 해치우지 못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머리도 감지 않고 나왔기 때문에 빨리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접시 끄트머리에 대충 발라진 버터를 이 밀가루떡 위에 얹고 역시나 성의 없이 건네진 시럽을 뿌렸다.

나는 며칠 전 새벽 입 안에 넣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뉴욕 베이글의 뺨을 치고 저글링을 삼백 번 하며 약 올릴만한 엄청난 핫케잌의 맛을 보게 되었다.

집에서도 종종 핫케이크를 해 먹고 핫케이크를 만드는 나의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는데(무엇보다 내 입맛에 가장 맞는 핫케이크는 내가 만든다 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 모든 생각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맛이었다. 고개도 한번 들지 않고 허겁지겁 버터에 시럽을 번갈아 찍어 먹으며 커피를 들이켰다. 음식의 양이 많아 고민하는 것은 현대인의 정말 정말 쓸모없는 걱정이다. 접시를 말끔하게 비우고 커피를 들이켜는 내게, 주인아저씨는 맛이 어떠냐 물었다. 나는 환타스틱이라고 대답해주었다. 라따뚜이에 나오는 음식 평론가들처럼.














10월의 뉴욕은 핼러윈으로 물들고 있었다. 형형 색색의 장식품들이 저마다 거리를 채웠다. 나는 참으로 '미국스러운' 케이크들 앞에 서서 마치 누구를 기다리는 것처럼 몰래몰래 셔터를 눌렀다.














뉴욕의 마지막 날, 어디를 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다가 주말에 사람이 너무 많아 방문하지 못했던 하이라인파크를 걸어보기로 했다. 블루보틀 커피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맛보고 싶었다. 집에 와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아마 뉴욕 여행하는 동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입었던 치마 같다) 언제 다시 마실 수 있을지 모르니까. 차가운 라테를 마실까, 따뜻한 라테를 마실까 고민하다가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뜨거운 라테를 시켰다. 거품도 한가득. 괜히 땅콩 쿠키도 함께 시켰다. 테라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데 관광을 온 한국인 노부부가 카페로 들어왔다. 나를 보고 잠깐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켜 자리에 앉았다. 난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만날 이야기들을 생각하면서 한참이나 라테를 홀짝거렸다.

































그래도 뉴욕에 있는 내내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었다. 내내 우산을 쓰고 다녔다는 여행객도 있어서 비가 올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바람이 많이 매섭다길래 두꺼운 옷도 잔뜩 챙겨갔는데, 이역시 일교차가 심한 바람에 마냥 헛수고는 아니었어서 기분이 좋았다.


















위키백과의 설명을 빌리자면, 하이라인파크는 뉴욕 시에 있는 1.6km 정도의 공원이다. 고가 위에 자리 잡고 있던 폐허가 된 철도 근처에 꽃과 나무를 심고 벤치를 설치해서 공원으로 재이용한 장소다.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와 첼시 지구 근처에 있어 쭉 길게 산책하기 좋고, 근사한 카페와 음식점들도 많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하이라인파크는 근처의 뉴욕 시민들 뿐만 아니라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서의 의미가 커 관광객도 많이 방문한다. 처음 하이라인파크를 방문했을 때는 주말이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고가가 무너지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붐볐다. 사람들에게 떠밀리다시피 걷는 게 싫어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와보자 했는데 어쩌다 보니 마지막 날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첼시마켓에 가서 랍스터를 다시 맛보고 싶은 마음도 컸는데 돈도 돈이거니와 첼시마켓 들어가자마자 또 엄청난 인파가 나를 질색팔색 하게 하는 바람에;;; 



















날씨는 너무 좋고 자리에 앉아 햇볕 쬐며 잠든 사람도 있고 커피 마시는 사람도 있고, 놀랍도록 깨끗한 공원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 바라보고 있자니 돌아가고 난 후의 이야기들은 머릿속에서 차차 잊혔다.














































지하철을 탈까 하다가, 뉴욕에 있는 7일 중에서도 유독 날씨가 좋은 날이었기에 펜스테이션까지 걸어가기로 마음먹었다. 고작 일주일이지만 어쨌든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준 이 공간을 다시 한번 더 담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이제야 좀 눈에 익고 감이 잡히는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아쉬운 마음이 컸다. 

사실 어디든 돌아다니려면 돌아다닐 수 있었겠지만 저녁 스케줄 때문에 멀리 나가고 싶지 않았다. 저녁에는 사실 뉴욕에 간 가장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몰몬의 책> 뮤지컬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뮤지컬 관람에 대해서는 따로 포스팅을 열어 글 쓸 것이다. 끌어오고 싶은 다른 포스팅도 많고 동영상도 많다. 하루 종일 저녁 생각을 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숙소 루프탑에 앉아 뮤지컬을 마지막으로 예습하고(이 얼마나 충실한 오타쿠인가) 훤히 펼쳐진 수많은 건물들을 내려다보았다.











































방에 내려와 짐을 쌌다. 다른 이들처럼 쇼핑을 하러 돌아다닌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이것저것 잡동사니 짐이 많아 보였는지. 돌아가려고 하다 보니 마음은 또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그래도 선물을 사긴 사야 하니 뮤지컬 시간보다 두 시간 정도 빨리 타임스퀘어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날 세포라를 처음 갔는데... 왜 다들 세포라 세포라 하는지를 뉴욕 간지 7일 만에 겨우 깨닫고는 그래도 한번 정도는 더 들러볼걸 후회했다. 고디바도 마찬가지.







뮤지컬을 보러 가는 길에 날이 추워 H&M에서 할인하는 니트를 한 벌 샀다. 걷자. 걷자. 걷자. 며칠 돌아다니며 뭐 별거 없네 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도시였는데 떠나려니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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