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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트립 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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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버트 Sep 09. 2016

트립 투 교토 얼론-4




교토에서의 둘째 날.

푹신한 이불을 끌어안으며 꽤 빨리 눈을 떴다. 전날 게스트하우스의 외국인들이 함께 나가 맥주를 마시자고 했지만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고 다음날도 긴 여정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나중을 기약했다(그리고 99%의 여행이 그렇듯 다음은 없었다)

오후에는 시즈오카에서 공부 중인 아람이가 오로지 날 위해 교토까지 와서 하룻밤 자고 간다고 했기 때문에 빠듯하게 움직여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옷을 챙겨 입었다. 날씨가 좋은 날 꼭 입고 싶었던 빨간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전날 비가 많이 와서, 급하게 마트에 가서 탈취제(?) 겸 발에 뿌리는 데오도란트(?)를 샀는데 이게 꽤 효과가 좋았다. 푹 젖은 신발도 적당히 마르게 해주었다.

예전에 한 커뮤니티에서 여행 가서 편한 옷을 입는 것이 좋으냐, 예쁜 옷을 입는 것이 좋으냐 라는 논쟁이 있었다. 혼자 여행이라곤 두 번 밖에 안 해본 나지만 결론은, 예쁘고 편한 옷을 입는 것이 좋다. 너무 많이 걸으면 무릎이 아프기 때문에 원피스에도 흰 운동화를 신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결과가 나쁘지 않아 다행이다.





전날은 비가 부슬부슬 왔는데 이날은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원래는 아침에 니시키 시장에 가서 끼니를 해결할 요량이었으나 전날 의도치 않게 길을 헤매 니시키 시장은 다 구경했으므로(??) 그냥 은각사로 가기로 했다. 교토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혼자 타는 버스였다.





은각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숙소에서 나와 10분 정도 얕은 언덕배기 골목길을 올라가야 했다. 늘 그렇듯 골목골목에는 신사가 자리 잡았고 아침에는 브런치, 점심에는 가이세키를 파는 집도 있었다. 몹시 배가 고팠으나 참기로 했다.








근데 가게 전부 텅텅 비었음.






슈퍼도 몬가 니혼노...






너무 배고파서 버스 정류장에서 당고를 하나 사 먹었다. 한국에서도 안 먹는 찹쌀떡이지만 일본에 갔으니 먹었다. 입천장에 진득하니 달라붙는 단 맛과 내리쬐는 태양빛을 느끼며 버스를 탔다.

그리고... 네 정 거장이나 가서 반대방향 버스 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전에도 밝혔듯이 아람 없었던 나의 교토 여행기는 길 헤매기 잔치)

후다닥 모 여대 앞에 내려 반대로 가는 버스를 갈아탔다.







유명한 관광지였지만 굳이 들리지 않았다. 버스 타고 지나가다가 창밖으로 찍음.






과연 일본 수학여행 성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길목을 가득 메운 중, 고등학생들.

그리고 한국인들.

그리고 중국인들.

그리고 서양인들.


학생들을 따라 쫄쫄 걸음을 옮기니 어느새 은각사가 나타났다. (올라가는 길은 별로 안 멀다. 사람은 엄청 많은데 대부분이 단체 관람이라 그런지 개인 표도 금방 살 수 있다)










그리고 은각사 들어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와~ 하고 탄성을 질렀는데,










나무부터 시작해서 작은 길 옆 온 바닥을 덮고 있는 이끼까지 정말 정말 깨끗하고 보드랍고 따스한 <정원>에 와 있는 기분.




















미술 그런 거 잘 모르는 내가 봐도 정말 아름다운 연두색. 명도와 채도가 높고 몹시 깔끔한 연두색.

그러니까 음 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하겐다즈 녹차 아이스크림보다 조금 더 옅은 연두색. 그런 연두색.












외국인들의 가이드 안내 내용을 약간 훔쳐 듣다가, 혼자 정원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곧 배가 고파져 벗어났다. 나중에 교토에 가게 된다면 꼭 한번 다시 들르고 싶었다. 청수사도 좋았지만 은각사가 정말 정말 좋았다. 관광객 인파가 좀 적을 때 가는 것도 좋을듯하다.





솔직히 이런 건 왜 찍었는지 모르겠네. 여기가 은각사인지 서초역인지 알게 뭐람...

어쨌든... 은각사를 벗어나 좀 걷다 보니, 그 유명한 '철학의 길'이 나왔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교토에서 들렀던 가장 좋은 곳 중 한 곳이었다.

느지막하고 한적하고,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책 한 권 들고 방문해서 늘어져라 앉아있고 싶은 곳. 벚꽃이 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광객이 엄청나게 북적인다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정말 정말 아름다울 듯.







사실 내가 갔을 때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벚꽃'은 다 진 후였고, 겹벚꽃(??)이 끝물이었다.







귀... 귀여워 뭔가 귀신 관련된 찝찝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 것 같은데도 귀여워







아름다운 풍경







한국인 관광객







그리고 나.

와, 

셀카봉만큼 긴 내 팔.








그 유명한 요지야 카페. 잠깐 목이라도 축이고 갈까? 했지만

나의 교토 일정 중 처음이자 마지막이나 다름없는, 관광객에게 유명한 맛집 '오멘'으로 향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참았다. 정말 배고프고 정말 목마른데 참았다.













길을 못 찾아서 또 엄청 걸음. 진짜 이 포스팅 보시는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걸음.






왠지 다 온 것 같아!







옷?






찾았다!!!!!!!!!


근데

문 닫음.

얼마나 열 받았으면 문 닫았다는 것 확인하고 간판 찍었다. 너무 화나서....


아람상에게 카톡 했더니 지금 열심히 교토로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해서 그럼 이치 죠지 역에서 만나자고 했다.

일본 문화에 관심이 굉장히 매우 없는 나로서는 대체 <이치 죠지>라는 이름이 왜 머릿속에 남아있는지 아직까지도 그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아마 <키치죠지> 등의 느낌 비슷한 단어가 원가 유명하다 보니 머릿속에서 혼동되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이치 죠지라는 이름을 되뇌다가 구글에 검색해봤더니 발견한 사실. 이치 죠지에는 게이분 샤라는 굉장히 유명한 서점이 있다. 결국 이 서점이 이치 죠지 역에 간 단 하나의 이유였다.






근데 역이 진짜 귀여움.







마을은 시골 마을인데, 이렇게 작은 기차역이 있고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한 칸짜리 기차가 막 다닌다. 외국인은 동네에 나 한 명.







이런 일본 시골,











가로수에 열매도 매달려있고







개천도 쫄쫄 흐름

어쨌든 가락국수 집 오멘에게 큰 상처를 입은 나는 지나가다가 보이는 아주 후줄근한 음식점에 들어갔다.







욕심부려서 양 많은 것 시켰는데 그다지 별로 썩 맛이 없어서 밥은 거의 남겼다.

결론: 식도락의 나라 일본도 비싼 게 맛있음







게 이분 샤 이치죠 지점으로 가는 길.

사실 아까 그 기차역에서 그냥 쭈~욱 시골로 보이는 마을 안으로 직진하면 된다.







근데 난 그걸 모르고 암만 걸어도 서점이 안 나와서 다시 돌아옴. 그래서 기차역 사진이 또 나옴.







앗 기차다!

이런 귀여운 기차가 지나간다.

왠지 기차 지붕에 올라타서 쫓아오는 좀비한테 인사하고 막 그래도 안 위험할 것 같고 막 그런 기차.







다시 게이분 샤를 찾아가는 길.










그렇게 한참 걷다 보면 게 이분 샤 이치죠 지점을 만난다!

구글 검색을 통해 게 이분 샤 이치죠 지점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이 시골 마을의 작은 서점은 영국 가디언지에서 뽑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로 책, 잡화, CD/DVD 등을 판매하는 도서 기반의 편집숍 느낌이 물씬 나는 그런 서점이다.

다른 블로그 보면 내부 사진을 찍지 말라던데 나는 사진 찍어도 별말 없길래... 찍으면 안 되는 줄 몰랐다. 고멘...















이런 분위기의 서점인데 작은 츠타야 서점 같기도 하고.

일본어를 젠젠 모르는 나는 약간 지겨워져서 대충 책을 뒤적이다 나왔다. 그리고 근처 카페를 찾아서 다시 여정.

나중에 다시, 함께 들른 아람이 말로는, 정말 고서처럼 보이는 만화책 등 오타쿠를 자극하는 포인트가 아주 많은 씹덕 서점이라고 했다. 굿즈와 그림책은 탐나는 게 몇 개 있었으나 너무 비싸서 손도 대지 못했다.







아 걷다 보니 가정식+커피+디저트를 동시에 하는 가게를 만났는데.















마치 일본판 킨포크에 등장할 법한...







그런 곳!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켜놓고 옆에 앉으신 할머니들과 간간히 눈을 마주치며 한참이고 앉아있었다. 곧 아람이 왔다.









아람상 혼또니 보고 싶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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