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팀에 리크루팅과 PR을 함께 맡아주실 분이 필요해요. 지금 당장 생각나는 사람이 유진님이고요.'
친한 스타트업 대표님과 편하게 저녁 먹으러 온 자리라고 생각했는데...? 짜장면 한 그릇에 칭따오를 한 잔 들이키다가 듣게 된 이야기는 예상 밖이었다. 나 지금 오퍼라는 걸 받은건가. 아니 그것보다 리크루팅과 PR이라니?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이런 이런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혼자 열심히 상상은 해왔지만 이 직무에 대해서는 차마 생각해보지 못했기에 살짝 동공이 흔들렸다. 우선 리크루팅과 PR이 왜 같이 진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아직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더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저희 사무실 제대로 보신 적 없으시죠?'
이전에도 지나가며 구경했던 사무실을 다시 한 번 더 방문했다. 저녁시간, 한바탕 열기가 빠져나가고 난 사무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아직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표님과 5층 공용 라운지에 앉았다. 대표님이 맥북을 켜고 IR이나 다름없는 상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분명 처음 대표님을 만났을 때, 그리고 각종 스타트업 소개 자리에서 몇 번이고 들었던 서비스 이야기였는데(게다가 나는 지그재그 서비스 론칭 시기부터 사용하던 유저였다!) 왠지 내가 고려해야 하는 선택지로서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니 그 기분이 달랐다.
운 좋게도, 전 직장이었던 스타트업얼라이언스에서 정말 많은 스타트업을 만났다.
‘아 이런 스타트업에 가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몇 가지의 조건들을 나름대로 세우고 있었는데, 지그재그라는 서비스에 대한 본격적인 설명을 들으면서, 그리고 지그재그라는 서비스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에 대해 설명을 들으며 그 조건들이 톱니바퀴 맞아떨어지듯 조금씩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는 내게 대표님이 말했다.
‘원하신다면 유진님이 저희 팀에 조인하셨을 때 같이 일하게 될 팀원들도 같이 만나보세요. 천천히 고민하셔도 괜찮아요. 그런데 저희 팀은 유진님이 이 역할을 정말 재미있게 잘 해주실 것이라고 확신해요.'
빠르게 팀원들과의 미팅 일정이 잡혔다.
대표님을 만난 후, 그리고 대표님 아닌 다른 팀원을 만나기 전, 여러가지 것들을 고민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테헤란로 런치클럽에서 진행되었던 ‘실리콘밸리 조직문화 파헤치기’에서 이베이 정보라 부사장님께서 이직할 때 고려해야 하는 두 가지 사항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내가 회사에 줄 수 있는 것
2. 회사를 통해 내가 얻어갈 수 있는 것
이 맥락을 기반으로 한 자아성찰이 계속됐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 가지 사항에 ‘지금 내가 하고 싶어하는 이 일이 당장 지금밖에 할 수 없는 일인가?’ 라는 고민을 더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후 지그재그의 COO님을 만났다. 지그재그는 CMO인 정훈님이 COO를 함께 담당하고 계시는데, 정훈님과 조직, 리크루팅, 홍보, 그리고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를 오래 나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대체 열아홉명밖에 되지 않는 조직에서 왜 벌써부터 이런 고민을?
왜 이런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자리에 나를?’
걱정되는 마음, 두려운 마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걱정되는 마음이 뒤섞였다. '하루하루 성실하게, 인생은 되는대로'를 목표로 눈 앞에 좋은 기회가 왔을 때마다 일단 결정하는데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럼에도 쉽사리 입을 뗄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대표님과 대화할 때 70% 정도 기울었던 마음이 정훈님과의 대화 후 100%로 확정되었다. 너무 본질적인 대화여서, 어떤 부분은 내가 이해하기 너무 어려운 대화여서 무슨 말을 하는지도 자각하지 못한 채 엄청나게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고민이 많아지는 만큼 확신도 커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창업을 결심하는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스타트업에 조인하겠다고 결심하는 것처럼, ‘어려울 게 뻔한데 그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우선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선택했다.
지그재그의 Relations팀은 사실 처음 생긴 부서다. 나조차도 이 업무가 처음이며, 팀원들도 이런 업무가 지그재그에 생긴건 처음이라고 말한다. 나는 채용과 홍보라는 두가지의 목적을 위해 또 다른 업무들을 진행하고 고민한다. 열아홉명이었던 팀원은 어느새 서른명이 되었고 진행중이었던 프로젝트들은 런칭되었으며, 계획으로만 남아있던 새로운 프로젝트들이 진행단계에 진입했다. 팀원들의 생일을 함께 보내고, 여전히 지그재그의 애착 유저로 장바구니를 꼭꼭 눌러담고 있다.
나는 지그재그를 운영하는 크로키닷컴에 입사했다. 9월 14일, 첫 출근이었다. 4개월이 꼬박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