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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공일하우스 Mar 22. 2023

아침 산책의 발견

가을부터 겨울, 걷기 기록

강화도에서 이른 아침이 되면 알람 없이도 눈이 떠진다. 암막 블라인드로 어두운 방에서 남편이 깨지 않게 조심조심 산책 나갈 준비를 한다. 이사 온 지 1년 이제야 제대로 혼자 산책을 시작했다.
오롯이 나 혼자 있는 시간.

가끔 오후 산책을 하거나 주말엔 각 잡고 나들길을 걷는다. 혼자 걷는 일은 잘 없다. 거의 주말에 머물고 마당 내 할일도 많고 나가봐야 동네 바로 앞이었다. 강화도에 남편 없이  혼자 있던 어느 날, 일찍 서울로 출근해야 할 일이 있었다. 중요한 일이라 서둘러야 했고  김포까지 가는 택시를 전날 예약했다. 우리 집 앞은 익숙하지 않으면 차 돌리기가 애매해서  조금 걸어 내려간 곳에서 택시를 탄다. 그날 아침 택시를 타러 가는 그 짧은 거리를 걸어가는데 너무 상쾌했다. 피부에 닿은 상쾌한 공기지만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느낌. 내일부터 아침 일찍 집 밖을 나와봐야겠단 생각이 출근 내내 맴돌았다.



집과 정원에 푹 빠져나올 생각을 못 했다. 1년이 지나자 이제 주변이 보이는 걸까. 늘 차를 타고 들어오던 마을 입구를 거슬러 내려가본다.


이른 시간이지만 옆집, 아랫집 사장님들은 일찍 출근하셨다. 마을 출근체크를 하며 내려간다. 집들을 지나쳐 조금만 내려가면 양옆이 논으로 펼쳐진 길을 만난다. 갑자기 풍경이 확 트이는 길. 길가에 갈대가 있는 곳. 산책을 할 때면 이곳에 멈춰 사진을 찍고 인스타 스토리에 기록한다. 일주일에 3일, 반쪽짜리 미라클 모닝이라고 해야 하나 :)



매일매일 같은 장소, 다른 날씨를 경험하고 있다.

깨끗한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붉은 해를 만나고, 일출인지 일몰인지 구분 안될 정도로 멋진 하늘색, 잔뜩 낀 안개 뒤로 흐릿한 해도 만난다.
하늘에 구름이 높게 낀 날,
햇빛에 갈대가 반짝이던 모습까지
하루하루 매일 다른 모습을 담으며 걷는다.


걷는 동안 되도록이면 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생각을 쏟아내고 버리는 걷기가 필요하지만, 아침 산책엔 별로다. 그냥 아침엔 자연을 충분히 받는 것에 집중한다. 있는 그대로 지금 여기를 느끼며  마음 챙김을 하며 걷는다. 나도 모르게 다른 생각에 빠져들지만, 아 내가 또 생각 중이네라고 생각하고 지금 눈에 보이는 풍경과 감각에 집중한다.


마주하는 산책길의 갈대 풍경과 논, 주변의 집, 햇빛, 아침 공기의 촉감과 냄새, 길을 걷는 느낌, 현재를 관찰하는 일. 가만히 들여다보는 사소한 시간이지만  그렇게 한 시간을 보내는 일로 하루를 꽤 괜찮게 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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