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요즘 하루를 돌아보면
달렸다는 말보다 버텼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해야 할 일은 많고, 선택은 계속 밀려온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달리자니 방향이 맞는지 확신이 없다.
그래서일까?
새해가 와도 마음이 들뜨기보다는
“나는 지금 무엇부터 해야 할까?”
라는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왠지 모르게 열정적이고
가만히 서 있기보다는 달려야 할 것 같은 병오년을
사람들은 ‘붉은말의 해’라고 부른다.
삼국지연의 속 붉은말이자 여포와 관우가 탔던 명마는 적토마(赤兎馬)입니다. 적토마는 ‘붉은 토끼처럼 빠른 말’이라는 뜻으로, 하루에 천 리를 달릴 만큼 뛰어난 체력과 속도를 가진 전설적인 명마입니다.
여포가 적토마를 타고 전장을 누비다가 결국 조조에게 패해 죽고, 그 적토마는 이후 관우에게로 넘어갑니다.
관우 역시도 적토마를 타고 전장을 누볐으며 적토마를 탄 채 전력을 발휘하는 관우는, 현재도 '관제묘'라는 관우의 용맹을 기리는 사당이 있을 만큼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이러함 때문인지 적토마는 오늘날까지도 속도와 용맹함을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도 빠르고 강력한 대상을 두고 “적토마 같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입니다.
붉은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단순한 속도나 힘을 넘어, 감정과 삶의 에너지를 상징해 왔습니다.
그 의미는 예술 작품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독일 표현주의 화가 프란츠 마르크(Franz Marc)는 말이라는 존재를 통해 자연과 생명, 그리고 감정의 본질을 그리고자 했습니다.
그의 작품 [Red Horses] 속 붉은색은 에너지와 정열, 그리고 피할 수 없는 운명적 힘을 품은 존재로 읽힙니다.
반면 마르크샤갈(Marc Chagall)의 그림에서 붉은말은 전혀 다른 결을 가집니다.
[A Red Horse]에서 말은 현실의 동물이 아니라, 꿈과 기억, 정체성을 오가는 상징적 존재입니다.
샤갈은 “나는 내가 본 것을 그리지 않는다. 내가 느낀 것을 그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붉은말은 고향의 기억과 개인적 감정이 겹쳐진 내면의 풍경에 더 가깝습니다.
그에게 있어 붉은색은 사랑과 상처, 삶의 흔적이 남은 감정의 색입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헬리오스는 매일 새벽, 황금 전차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렀습니다.
그 전차를 끄는 것은 네 마리의 불타는 말들이었습니다. 이 말들의 이름에는 태양이 지나가는 하루의 흐름이 담겨 있습니다. 파이로이스는 불의, 에오우스는 새벽의, 아이톤은 타오르는, 플레곤은 격정의 에너지를 뜻합니다. 이처럼 붉은말은 하루를 움직이게 하는 강한 에너지와 생명력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이 전차를 헬리오스의 아들 파에톤이 몰았을 때, 네 마리 붉은말의 힘을 감당하지 못해 하마터면 대지를 태워버릴 뻔했습니다. 태양신 헬리오스는 말의 힘의 속도와 기준을 알고 있었지만, 그의 아들인 파에톤은 그 힘을 통제할 경험과 기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 신화 속 붉은말은 에너지와 열정 그 자체입니다.
중요한 것은 열정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열정을 어떻게 다루는가 입니다.
기준 없는 열정은 파에톤이 불태울 대지와 같이 파괴하고 지치게 만들지만, 기준을 가진 열정은 헬리오스의 운행과 같이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절제된 삶을 지원하는 든든한 힘이 됩니다.
우리는 종종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말 필요한 건 속도가 아니라,
내가 쥔 고삐를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아는 일입니다.
붉은말의 해는
무작정 달리라고 등을 떠미는 해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에너지를
어떻게 조절하며 나아갈지를
조용히 묻는 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삶을 마냥 불사르는 것이 아니라
원하는 방식과 방향으로 달구고 다듬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