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색이 자꾸 눈에 들어올까?

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by 이윤설


[ 구글 : 재미나이 ]



평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색인데,
어느 순간부터 유독 눈에 들어올 때가 있다.


“원래 이런 색을 좋아했나?”


취향이 바뀐 게 아니라, 뭔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


강연을 할 때 나는 청중에게 종종 이렇게 묻는다.


“요즘 유독 녹색이 좋아지신 분 계세요?”
“초록이 자꾸 눈에 들어오시는 분 손들어보세요”


그러면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손을 든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쉬셔야 해요. 지치셨다는 거예요."


이야기를 들은 분들은 잠시 멈칫한다.


색이 끌리는 게, 그런 의미라고요?”



미신 이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비과학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이야기가 전혀 근거 없는 해석은 아니라는 점이다.



[ 출처 : Unflash ]



왜 우리는 특정 색에 강하게 끌리는 걸까요?

우리가 색을 인식하는 순간, 그 정보는 논리적 판단을 담당하는 대뇌피질에 도달하기 전,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변연계(Limbic system)로 먼저 전달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초록색을 예를 들어보면

'이 초록색은 예쁘다'라고 머리로 판단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아, 편안하다'라고 반응해 버리는 거죠.


신경미학(Neuroaesthetics)적 관점에서 보면, 색은 감상하는 대상이라기보다, 우리의 현재 컨디션과 감정 상태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에너지가 고갈되었을 때는 회복을 상징하는 초록을, 용기가 필요할 땐 열정의 빨강을, 보호받고 싶은 상태에서는 무채색이나 어두운 색을 본능적으로 찾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이 논리적으로 색을 선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지금의 컨디션과 감정, 에너지의 흐름에 따라 특정 색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이끌어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때의 감정, 상태에 따라 눈에 들어오는 색이 달라집니다.


바뀐 것은 색이 아니라, 그 색에 반응하는 나의 상태입니다.



[ (좌) Kandinsky wrote his book, "On the Spiritual in Art" (우) 마크 로스코 ]




추상미술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는 저서『예술에 있어서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색채는 건반이고, 눈은 망치며, 영혼은 여러 개의 줄을 가진 피아노다.
Color is the keyboard, the eyes are the hammers, the soul is the piano with many strings"

칸딘스키에게 색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색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영혼이 직접 반응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형태보다 색을 먼저 해방시켰고, 색 그 자체만으로도 감정이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마크 로스코 역시 형태를 지우고 거대한 색면(Color Field)만을 남기며 자신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직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감정, 비극과 황홀, 파멸 같은 감정을 표현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
I’m interested only in expressing basic human emotions
— tragedy, ecstasy, doom, and so on.”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사람들이 이유 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은
그림을 ‘이해했기’ 때문이 아니라, 설명 이전에 색이 먼저 감정에 닿았기 때문입니다.





[ 출처 : Unflash ]


색은 늘 기억과 함께 저장됩니다.

늘 특정한 사건, 장소, 그리고 그때의 감정과 결합하여 기억의 심층부에 저장됩니다. 제가 앞선 글(프롤로그)에서 언급했던 '색채기억'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입혀주셨던 노란색 원피스의 포근함, 작은 다리를 건널 때 목마 위에서 바라본 포근한 맑은 파란 하늘, 개울 위를 평화롭게 헤엄치던 하얀 오리 떼의 잔상들... 이러한 기억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우리 뇌에 일종의 '정서적 색채 기억으로 각인됩니다.


우리가 특정 색에서 이유 없는 편안함을 느끼거나, 반대로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을 경험하는 것은 색채기억 때문입니다. 논리적인 뇌는 그 이유를 잊었을지 몰라도, 감각의 뇌와 몸은 그 색이 품고 있는 과거의 데이터를 즉각적으로 읽어냅니다.








자꾸 눈길이 머무는 색이 있다면,
그것은 나를 한 번 점검해 보라는 분명한 신호입니다.

이유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기보다
그 색에 반응하는 나의 상태에
먼저 주의를 기울여 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색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 색의 의미를 정의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어떤 감정과 컨디션에 놓여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오늘 당신은
어떤 색 앞에서
잠시 시선이 멈췄나요.?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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