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설의 오늘의 잇컬러
붉은색 푸른색 그 사이 3초
그 짧은 시간
노란색 빛을 내는 저기 저 신호등이
내 머릿속을 텅 비워버려
내가 빠른지도 느린지도 모르겠어
그저 눈앞이 샛노랄 뿐이야.
가수 이무진의 노래 「신호등」에 등장하는 가사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는 한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약속 시간에 늦어 마음이 급한 날,
횡단보도를 막 건너려는 순간 초록불이 깜빡, 깜빡.
곧 노란불로 바뀔 것 같은 그 찰나의 순간.
“건널까, 말까. 그냥 뛸까.”
몸은 이미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 발 내딛었지만
마음은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잠시 멈춰 서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짧은 몇 초의 시간을 경험한다.
도시의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들,
복잡하게 얽힌 교차로의 흐름은 놀랍게도 단 세 가지 색으로 조율된다.
빨강, 노랑, 초록.
누군가의 명령을 직접 듣지 않아도
우리는 이 색의 의미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멈춤도 출발도 아닌,
노란색의 몇 초.
왜 우리는 이 색들을 이렇게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간의 눈이 색을 어떻게 인식하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눈에는 빛을 감지하는 두 종류의 시각 세포가 있습니다.
바로 원추세포(cone)와 간상세포(rod)입니다.
원추세포는 밝은 환경에서 작동하며 색을 구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때의 시각을 명소시(明所視)라고 합니다. 반대로 간상세포는 어두운 환경에서 작동하며 밝기와 움직임을 감지합니다. 이때의 시각을 암소시(暗所視)라고 합니다. 그래서 낮에는 색을 또렷하게 구분할 수 있지만 밤이 되면 색보다는 밝기와 대비가 더 중요해집니다.
밤길에서는 사물의 색이 잘 보이지 않지만 형태나 움직임은 인식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밝은 환경, 즉 명소시에서는 빨강이 파장이 길어 멀리서도 비교적 강하게 눈에 띄는 색입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신호나 경고를 알릴 때 사용되기 쉽습니다.
반대로 어두운 환경, 즉 암소시에서는 노랑이나 초록 계열의 빛이 더 잘 인식됩니다. 그래서 야간 표지나 비상구 안내 표시 등에 녹색이 널리 사용됩니다. 이러한 시각적 특성 때문에 빨강, 노랑, 초록은 사람이 비교적 빠르게 알아볼 수 있는 색입니다. 오늘날 신호등이 이 세 가지 색으로 이루어진 것도 이러한 시지각적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색들이 처음부터 과학적으로 설계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신호등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교차로 신호등의 시초는 19세기 철도 신호 체계에서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역무원이나 신호수가 깃발 또는 렌턴을 들거나 손짓으로 기차의 움직임을 알렸습니다. 팔을 들어 멈추게 하거나 깃발을 흔들어 출발을 알리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차는 점점 더 빨라졌고 철도 노선도 길어졌습니다.
사람의 신호만으로는 먼 거리에서 열차의 움직임을 통제하기 어려워졌고, 보다 분명하고 멀리까지 전달될 수 있는 빛의 신호가 필요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철도에서는 색을 이용한 신호 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초기의 철도 신호는 빨강과 초록, 흰색 세 가지 색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빨강은 정지를 의미했고 초록은 진행, 흰색은 안전하거나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곧 문제가 발생합니다. 밤이 되면 흰색 신호가 별빛이나 다른 불빛과 혼동되는 사고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철도에서는 신호 체계를 다시 정비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노란색이 경고 신호로 추가되었습니다. 노랑은 멈춤과 출발 사이에서 “곧 멈춰야 한다”는 주의의 의미를 전달하는 색이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빨강–노랑–초록의 신호 체계는 20세기 초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철도를 넘어 도시의 교차로로 옮겨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신호 체계는 오늘날 우리가 익숙하게 보는 세 가지 색의 신호등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20세기 초 도시는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차가 늘어나고 도로가 확장되면서 도시의 움직임은 점점 더 빠르고 복잡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예술가들에게도 새로운 영감을 주었습니다.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은 도시의 구조와 리듬을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그의 작품〈Broadway Boogie Woogie〉는 재즈 음악의 한 장르인 부기우기(Boogie-Woogie)에서 영감을 받아 그려졌습니다. 화면을 채운 작은 색 사각형과 선들은 재즈의 리듬처럼 이어지며 격자형 거리와 자동차의 흐름을 떠올리게 합니다.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Fernand Léger) 역시 현대 도시의 풍경을 독특한 방식으로 그려냈습니다. 그의 작품〈The City〉(1919)는 건물과 간판, 기계 구조물이 뒤섞인 복잡한 도시 공간을 강렬한 색과 형태로 표현합니다.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빨강과 노랑, 초록의 색들은 도시의 움직임과 속도를 시각적인 리듬으로 만들어 냅니다.
몬드리안이 색과 선으로 도시의 질서와 구조를 보여 주었다면, 레제는 강렬한 색의 대비로 도시의 에너지와 움직임을 표현했습니다. 서로 다른 방식이지만 두 작가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색이 도시의 흐름을 조직하는 요소로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신호등 역시 같은 역할을 합니다. 빨강, 노랑, 초록의 세 가지 색은 수많은 자동차와 사람의 움직임을 조율하며 도시의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색은 단순한 빛이 아니라 도시를 움직이게 하는 하나의 질서이자 리듬이 됩니다.
도시의 교차로에서 신호등은 단 세 가지 색으로 움직임을 조율합니다.
빨강은 멈추게 하고, 초록은 다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아주 짧은 시간이 있습니다.
노란색의 몇 초.
멈출 것인지, 지나갈 것인지
속도를 줄일 것인지, 그대로 나아갈 것인지
우리는 그 순간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분명한 멈춤의 순간도 있고
힘차게 나아가야 할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그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잠시 멈춰 생각해야 하는 시간,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
어쩌면 우리의 삶은
빨강과 초록 사이에서 깜빡이는
노란색의 수많은 몇 초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색의 신호 앞에 서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