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까운 착각에 대하여
‘MZ세대’ ‘요즘 애들’ ‘요즘 것들’
젊은 세대를 표현하는 이 단어는 과연 오늘날 불쑥 생겨난 것일까?
곰곰이 잘 생각해 보시라.
“폭력적인 방식으로 훈육을 했을 때 아이들의 교정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그것은 진정한 교정이 아니다. 폭력 상황을 피하기 위한 순간적인 행동일 뿐이다. 그 어떤 폭력도 잘못된 행동이나 사고를 교정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부모들은 그것을 빠른 시간 안에 자기의 말을 잘 듣는 아이로 바꿔놓을 수 있는 꼭 필요한 양육 방법이라고 착각한다.”
권일용, 『 내가 살인자의 마음을 읽는 이유』 중에서
이 대목은 개인의 양육 문제를 넘어, 사회가 폭력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정확히 짚어낸다.
이 부분의 논지와 연결해 보면, 폭력 훈육을 옹호하는 사회적 태도도 이런 맥락과 닿아 있다.
요즘 사람들은 ‘요즘 애들’이라는 집단을 임의로 만들고, 그들에 대해 ‘맞아야 된다, 안 맞고 커서 그렇다, 오냐오냐 자라서 그렇다’ 하며 비아냥대기 일쑤다.
마치 본인들이 ‘맞고 자라서’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안타깝지만 그건 어른이 된 것도, 성숙을 배운 것도 아닌 그저 복종을 통해 훈련된 인간일 뿐이다. 그러나 마치 본인들이 복종이 아닌 성숙을 터득한 것처럼 착각하며 폭력을 정당화한다. 단순하고 쉬운 방법을 택하고,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 태도를 과연 성숙이라 부를 수 있을까?
폭력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은 잠시 말 안 듣는 기계뿐이다. (이마저도 고쳐질 일은 드물다.) 숨을 쉬고, 공기를 나누는 생명체 중 ‘맞아서’ 나아지는 것은 절대 없다.
위 권 교수님의 말뿐 아니라, 여러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데도 눈막귀막 시전하며 폭력 훈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들 말대로 그들의 잘못된 사고를 폭력으로 고쳐줘야 하는 걸까.
그들도 올챙이 적 시절이 있고,
그들도 언젠가 개구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