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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Dec 14. 2015

더 랍스터(The Lobster, 2015)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사랑하는 이의 곁에 머무는 일


1. 황당하지만 무섭도록 현실과 닮아있는 설정


영화 <더 랍스터>는 특유의 독특한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되자마자 단숨에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한다. '커플 메이킹 호텔'이라는 가상의 공간이 바로 그것이다. 아내에게 이혼당하고 '솔로'가 된 남자 데이빗(콜린 파월 분)은 즉시 수상한 호텔로 이동하게 된다. 그곳은 45일 안에 커플이 되어야만 탈출할 수 있는, '강제 커플 양성소' 같은 곳이다. '커플'이 되어야 도시(사회)에서 제구실을 하며 살아갈 수 있으며, '솔로'는 사회악이므로 커플이 될 때까지 호텔에 감금되거나 숲에 숨어 쫓기며 살아야 한다는 이 같은 설정은 극단적이고 우스꽝스럽지만, 결코 마냥 비현실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러한 설정들은 '저출산타파'를 부르짖으며 결혼과 출산을 '조장'하고, 비혼이나 동성애같은 선택을 반사회적인 것으로 여기는 현실과 무섭도록 닮아있다. 호텔에서 커플장려교육을 받을 때, 혼자 사는 남자는 밥을 먹다 목에 사레가 들려서 죽을 위기에 처하고, 혼자 사는 여자는 길을 걷다 모르는 남자에게 강간 당한다. 이런 극단적인 교육장면은 영화속에서는 지극히 어색해서 되려웃음을 자아내지만, 사실은 현실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남자가 혼자  살면 안쓰럽다" ,"여자가 혼자 살면 위험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2. 영혼의 짝을 찾는 방법?


호텔의 '솔로' 남녀들은, 45일 후 동물이 되어버리지 않기 위해 서로의 짝을 구하는 일에 필사적이다. 그들이 짝을 찾는 방법이 '공통점 찾기(혹은 만들기)'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데이빗과 같은 날 호텔에 입소한 남자는 '코피흘리는 여인'에게 접근한다. 이때 그는 일부러 책상이나 벽에 코를 부딪쳐 자신도 코피를 자주 흘린다고 거짓말을 하며 연대감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해 커플이 되기도 한다. 한편 데이빗은 머리가 짧은 비정한 여인에게 접근하기 위해 애써 비정한 척을 하는데, 그 모습을 본 비정한 여인은 "우리 잘맞을 거 같죠?"라고 묻고 데이빗은 "그렇다"고 답한 다음 둘은 곧장 커플선언을 한다. 이 장면에서 '공통점'이란 직장, 학력, 자산규모 등 서로를 재단하고 조건을 맞추는 커플매칭을 비난하는 도구로 쓰인다. (그러나 영화는 '공통점'은 단지 이런 표면적인 의미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다. 감독은 '공통점찾기'라는 화두를  중요한 메타포로 삼고 다양한 메시지를 이 화두를 통해 도출해낸다) 데이빗과 비정한 여인은 뻔히 예상되다시피 비극적 결말로 치닫는다. 본성을 숨기지 못한 데이빗은 비정한 여인에게 파혼당할 위기에 처하고,(그럴 경우 아무도 원치않는 동물로 변하게 된다) 이에 비정한 여인을 죽이고 솔로들의 숲으로 탈출을 감행한다.



3. 일부러 코피를 흘린 것이 과연 무조건 잘못한 일인가?


데이빗은 일부러 비정한 척해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짝과 맺어졌고, 이는 완전한 실패로 이어졌다. 하지만 '코피를 흘리는 커플'은 계속해서 함께 살았다. (이들은 아이도 배정받았다.아이를 배정받는 설정도 의미가 있지만 매우 노골적이므로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훌륭한(?)커플이 되어 요트에서 살고 있는 이들 세가족의 모습은, 비록 화젯거리가 '각종 공의 크기' 같은 공허한 것들일지언정 한 테이블에서 대화하며 식사를 하고, 함께 삶을 꾸려나간다. 숲에서 도시사냥을 나갔던 데이빗이 코피를 흘리는 여인에게 남편의 비밀을 폭로했음에도 그 부부가 파경을 맞는 모습은 영화에서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마 계속해서 서로에게 맞춰가려는 '진짜로 피나는' 노력을 거듭하며 함께 살아갔을 것이다. 현실의 여느 부부들의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화 <더 랍스터>가 '커플천국'을 비꼬고 '솔로만세'를 외치는 줄로만 알고 공감을 표했던 비혼론자 관객이라면, 다소간의 배신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는 '커플천하'가 되어버린 세상의 분위기를 비판하면서도 결코 '솔로의 삶'을 옹호하지도 않는 중립적(?)인 시각을 이어간다. 실제로 솔로대장은 커플들을 증오하면서도 도시에 사는 부모님(커플)을 존경하고, 근시여인과 데이빗의 사랑에 질투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솔로대장(레아 세이두 분)이 도시사냥에서 평생을 함께해온 노년의 부부를 찾아가 그들의 사랑을 시험에 들게하는데 성공하는 만족스러워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은 마치 '목숨만큼 사랑하는 것도 아니면서 함께 사는 건 위선이다'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솔로(비관적 독신주의자)'완전무결한 사랑에 대한 환상'을 비꼬는 장면이다. 실제로 많은 결혼에 대한 비관적인 말들이 이같은 솔로대장의 태도와 궤를 같이 한다. 하지만 과연, 함께한 식사자리에서는 매번 공따위가 아닌 서로의 진실한 사랑에 대한 충만한 대화를 하고, 상대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준비가 되어있어야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더 랍스터>의 답은 '아니다'에 가깝다.



4. '사랑을 이루는 일'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


결국 영화 <더랍스터>는 비혼을 조장하는 영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커플천국'을 외치는 영화도 아니다. 결국 마치 전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른 저출산문제에 대한 호들갑스런 대책들을 꼬집는 것처럼 출발한 이 영화는 사실은 '결혼'이 아닌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영화의 결말은 표면적으로 열린 결말이지만(그리고 구체적인 사실은 분명히 관객의 선택으로 남아있지만) 사실 어떤 결말이 이어질지를 상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도시에 살며 백년해로하고 있는 솔로대장의 부모들처럼, 코피를 흘리는 커플처럼, 데이빗과 근시여인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사랑할 사람을 찾는 일' 만큼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머무는 일'에도 피나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원치않는 사람과 사회적 시선때문에 억지로 맺어지는 일' 만큼이나 잘못된 일이 '완전무결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면서 사랑을 외면하는 일이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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