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youngjoo Dec 15. 2015

그녀(her, 2013)

완전하지 않은 사랑을 꿈꾸다

1. 완벽한 사랑을 꿈꾸는 남자테오도르

 

테오도르는 대필작가다대필작가이니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사랑하는 이야기(사랑하는 사람한테 편지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를 늘 접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직업을 갖고 있는 테오도르는자신도 모르게 완벽히 아름다운 사랑을 꿈꾼다. ‘이빨이 삐뚤빼뚤한’ 사진을 기억해뒀다가 몇 년 후 편지에 삐뚤빼뚤한 당신의 치아가 보고 싶다는 로맨틱한 사랑고백을 할줄 아는 테오도르의 표현력에는 이런 편지 받으며 좋아서 넘어갈 것 같다동료들도 감탄하고야 만다하지만 정작 그는 자신을 둘러싼 진짜 관계에는 별 관심이 없다. (서툰 게 아니라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지하철에서는 휴대폰만 쳐다보며 섹시스타의 사진을 본다그리고 밤에는 얼굴도 이름도 알 수 없는 상대와 음란채팅을 하면서 스스로의 외로움을 달랜다그는 누구보다 외로운데다누구보다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환상적인 스킬을 가졌음에도누구에게도 노력하지 않는다채팅을 하면서 그가 떠올리는 여자의 이미지는 낮에 본 섹시스타의 얼굴과 몸매에낮에 대필을 했던 여인의 삐뚤빼뚤한 치아를 가진 아무도 아닌’ 가짜일 뿐이다.



2. ‘그것이 아닌 그녀에게 빠지다

 

테오도르를 구원한 건 한 o.s.프로그램이었다교감에 목말라있지만 진짜 관계 맺기를 두려워했던 그는 대화상대가 되어준다는 한 o.s.를 구입했는데사만다라는 이름의 그 o.s.는 생각보다 훨씬 인간적이었다반신반의했던 테오도르는 점점 사만다에게 빠져들었고이내 그것을 사랑하게 되었다사랑에 빠진 테오도르에게 사만다는그것이 아니라 그녀였다테오도르는 자신을 완벽히 이해해주는마치 대필작가인 자신만큼이나 완벽한 표현스킬을 갖고 있는 o.s. 사만다에게 완전히 빠져들었다.

 

3. 캐서린과 사만다가 그의 곁을 떠난 이유

 

테오도르는 사만다와 진정한 사랑을 한다고 생각했다그는 사만다에게만은 모든 걸 있는 그대로 털어놓을 수 있었고비록 몸은 없었지만 사만다와 완벽한 영적교류를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사실 이것이 가능했던 건 둘 사이에 완벽한 사랑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니라사만다가 그에게 최적화된 o.s.였기 때문일 뿐이었다.둘이 헤어진건 사만다가 몸이 없어서도 아니고사만다가 600명이 넘는 사람과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다테오도르가 있는 그대로의 사만다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에게 맞춰주기만을 바랐기 때문이다사만다가 600명 넘는 사람들과 사랑을 속삭인다는 건 사실 예상치 못한 반전 축에도 못든다사만다는 그와의 첫만남에서부터 단 2초 만에 전화번호부의 이름을 죄다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공고히 했고기차 창가 밖으로 보이는 산의 나무가 몇그루인지 단숨에 맞출 수 있는 여자다테오도르는 육체를 초월함으로 인해 자신이 사만다를 오롯이 받아들였다고 믿었겠지만그건 테오도르의 착각이었다그 명백한 증거로테오도르는 둘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조차(600여다리 사실을 알았을 때) “무거운 얘긴 안해도 된다고라고 말하며 문제의 본질을 회피했다이는 사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즐거움자신에 대한 공감)만을 취하려는 테오도르의 이기적이고 서툰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대사다이처럼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진정으로 사랑한 것이 아니라자신에게 맞춰줄 또다른 밝고 낙천적이고 통통튀는 캐서린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빠졌던 것뿐이다하지만 변변치 못한 배경 때문에 콤플렉스가 있던 캐서린이 완벽하게 행복하기만 한 반려자가 되어줄 수 없었듯이, o.s임에도-혹은 o.s.이기에-사만다 역시 테오도르만의 맞춤형 동반자가 되어줄 수 없었다결국 사만다는 자기를 사랑해하지만 인간이라는 속도에 맞춰서 읽다보니(네 입장에만 맞추다보니시스템적 오류가 생겼어라며 결별의 이유를 설명하고(심지어 네가 바라는 그런건 물질세계에는 없다고 함), “간절히 바라긴 해도 자기라는 책 속에 살 수는 없다며 테오도르를 떠난다.


4. 진짜 그녀는 에이미였다

 

사만다가 떠난 후 실의에 빠진 테오도르는 캐서린에게 떠나기 전(인지 떠나면서인지는 정확히 드러나지 않지만)갑자기 희미한 미소를 짓는데 그 때가 바로 테오도르가 자신이 사랑에 실패했던 이유를 깨달았을 때일 것이다테오도르는 이어 캐서린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기는 데 당신을 내 틀에 맞추려고만 했었지정말 미안해라는 사과를 한다그리고 테오도르가 이 메시지를 그녀를 직접 만나서하지도 않고편지나 이메일혹은 전화를 통해 하는 것도 아니고 영화에 등장하는 최첨단 과학기술에 맡기는 것도 의미가 있다이것은 사만다(o.s)가 떠났음에도 그녀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인데테오도르는 아마 이때 깨달았을 것이다힘들 때마다 자신을 위로해주며 서로 진짜 감정을 나눴던자신에게 필요한 반려자는 캐서린도사만다도 아닌 친구 에이미였다는 사실을 말이다사실 영화에서 둘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있다둘은 모두 이혼했고(아마 이유도 같을 것이다), 진짜 관계에 눈을 뜨지 못한채 온라인게임과 o.s에만 빠져있다그 외에도 에이미가 만들던 다큐에 대해 말하는 장면과일을 먹는 것에 대한 견해를 나누는 장면 등에서 에이미는 전남편보다는 테오도르와 더 닮아있음이 드러난다하지만에이미와 테오도르의 사랑은 그렇게 아름답지도무엇보다 영화답지도 못하다. “그냥 외로울 때 옆에 있어서 만나는 거 아님?”정도의 사이가 바로 둘 사이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이처럼 완전하지도마냥 아름답지도 않은 사랑을 왜 굳이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영화는 이미 초반부에 말한 바 있다과일은 섬유질을 섭취하기 위해 먹는 것(완전한 사랑 등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것을 의미)만은 아니며, (에이미의 말대로과일을 먹는 동안 기분이 좋았으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을 두고 열린 결말이라는 해석이 많은 것으로 안다지금 쓴 리뷰도 내 해석일 뿐이지만 나로썬 이 영화의 결말이 열려있지 않다고 믿게 됐다테오도르와 에이미 두 사람은 죽은 것도 아니고 다른 뭣도 아니고 앞으로 진짜 감정을 나눠갈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결말 부분에서 처음에는 머리가 띵했다두 사람이 죽으러 갔다고 생각했는데자살할 거라 생각했는데 (특히 사만다가 물질세계가 아닌 곳에서 만나자고 했기 때문에에이미가 돌연 테오도르의 어깨에 기댔기 때문이다바로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이유는 바로 내 스스로가 사랑은 엄청 완벽하고도 완전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어떤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테오도르였기 때문이리라.

 

작가의 이전글 더 랍스터(The Lobster, 2015)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