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현실과 상관없을 때 가장 찬란하다
1. 그녀는 그의 '소설'이다.
영화는 유명작가가 된 제시의 출판기념회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제시가 출간한 책 <the day>는 9년전 셀린느와 보낸 하루를 소재로 쓴 로맨스소설이다. 소설 속 프랑스여자와 미국남자의 하룻밤사랑이야기에 수많은 이들이 열광한 것은 그 사랑이야기가 그야말로 소설처럼 아름답기 때문일 것이다. 단 하루를 만났어도 평생을 간직할 수 있는 기억을 남기는 게 바로.사랑이다.
2. 로맨스는 '각자의 취향대로'다.
제시는 '소설 속 이야기가 사실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각자의 취향대로 판단할 일'이라고 대답하는데 이처럼 각자의 경험들은, 그가 얼마만큼 로맨틱한 사람이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수 있다. 로맨틱한 제시는 6개월 후 비엔나에 갔었지만, 할머니의 죽음이라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셀린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실제로 후에 이어지는 대화에서 셀린느는 '자신은 현실과 사랑을 병행하기 어렵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포시리즈의 2편인 '비포선셋'은 현실과 사랑간의 거리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세 시리즈 가운데 사랑을 가장 '영화같이' 그리고 있다.
3. 사랑은 현실과는 상관없다.(?)
제시의 책을 읽고 자신의 이야기임을 눈치챘던 셀린느는, '셰익스피어서점'에서 열린 제시의 출판기념회에 찾아와 제시와 재회한다. 10년만의 만남이다. 둘 사이의 설렘과 둘만의 추억은 그대로지만, 그 외에는 모든 것이 변했다. 대학생이었던 그들은 각각 소설가와 환경운동가가 되어있었는데, 서로 전혀 그 사실을 알지못했다. 제시가 드럼을 친다는 것도, 셀린느가 정부기관에서 다소간 일했다는 것도 알지못했고 심지어 그들이 한동안 같은 도시(뉴욕)에 거주했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었다. 더구나 서로에게는 현실의 짝이 있지만, 비포선셋의.하루에서만큼은 서로의 반려자들은 존재감이 없다. 둘은 이처럼 서로의 현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짐작할뿐("예상대로 멋진 일을 하고 있구나!")이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현실적 상황에 대한 무지'가 둘 사이의 사랑을 방해하지는 못한다. 사랑에는 '그 사람의 직업'보다는 '콧수염의 색깔'이 더 중요한 법이다. 적어도 단하루의 추억을 10년이나 기억하는 셀린느나 제시같은 낭만주의자들에게는 말이다.
4. 그는 그녀의 '노래'다.
제시는 일상적인 방법으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면 그녀를 놓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후회하며 그녀를 떠날줄을 모른다.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의 시간이 다가오지만, 이번만큼은 운명적인 사랑 셀린느를 놓치고 싶지 않다. 결국 셀린느의 집에 데려다준다고 우겨 집까지 따라들어간 제시는, 노래를 만들고 연주하는 것이 취미인 셀린느의 자작곡연주를 듣게된다. '그저 왈츠풍의 노래'라는 그 노래는, 제시와 셀린느가 보냈던 그 하루(the day)에 관한 것이었다. 단 하루만에 이별했기에 특별했던 그 하루의 기억은 한 여자를 소설속 주인공으로, 한 남자를 노랫말 속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 특별한 소설과 노래가 만나,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가장 영화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현실에 기인하지 않았기에 현실의 모든 것(배우자와 자녀와 애인, 비행기시간 등)을 무의미하게할만큼 빛나는, 해지기전까지의 사랑은 이토록 찬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