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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Jan 03. 2016

러브레터(Love Letter, 1995)

절대 돌아갈수는 없지만 언제든 꺼내볼수는 있는 것



1. 첫사랑

모든 경험은 소중한 것이며, 사람은 누구나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하지만 축적된 경험의 가치를 무색하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그게 바로 모두의 가슴속에 소중하게 기억된 '첫사랑'이다. 그리고 영화 <러브레터>는 첫사랑의 풋풋했던 기억을 이끌어내면서, 첫사랑이 소중한 이유를 조명해낸 수작이다. 

2. 영화 속 사랑들 

영화는 죽은 애인(후지이 이츠키)을 그리워하는 여자(와타나베 히로코)가 그의 졸업앨범 속 주소로 수신인없는 편지를 보내면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분명 받는 사람이 없어야 할 편지에 "내가 후지이 이츠키"라면서 답장이 오고, 처음엔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이내 답장을 보내오는 사람이 죽은 애인과 같은 이름을 가진 그의 동창생이라는 사실을 알게된다. 이에 후지이 이츠키(남)를 잊지 못하던 히로코는, 여자 이츠키에게 죽은애인과 관련된 과거 기억들을 말해달라고 조르며 편지를 주고받다가 그녀가 애인의 첫사랑이었음을 알게된다. 그녀는 자신과 너무도 닮은 후지이 이츠키(여)의 사진에 절망하면서 "닮아서 내게 반한거라면 용서할수없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그를 잊지 못한다. 그녀가 그와 나눈 추억은 둘의 것이지 그의 과거의 사랑과는 상관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곁에서 묵묵히 바라보는 사랑도 있다. 후지이 이츠키(남)가 죽기전부터 히로코를 짝사랑했던 지금의 히로코의 애인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비록 죽은 사람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가슴에 품고 있는 사람의 곁을 지키는 일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히로코의 모든 상처를 감싸주는 애인의 모습은 영화 속 또 다른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이다. 그는 과거의 첫사랑을 품에 안고 사는 애인을 뒀던 히로코와 같은 아픔을 안고 있기도 한 셈이다. 죽은 애인만큼이나, 과거의 사랑도 현실에선 아무 힘이 없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3. 결코 돌아갈 수 없기에 소중하다


영화는 설원장면 때문에 '눈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에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한다. 거기에 전혀 다른 두 사람을 훌륭하게 연기해낸 배우의 연기력과 함께 과거와 현재, 게다가 현재의 두 사람의 이야기를 어색함없이 이끌어가는 뛰어난 교차편집이 빛을 발하기도 한다. 이 모든 장점이 응집되어 탄생한 영화 최고의 명장면은 바로 유명한 "잘 지내고 있나요? 전 잘지내요."라는 대사가 나오는 장면이다. 


이 장면이 관객의 심금을 울리는 이유는, 이미 영화를 보며 스스로의 첫사랑을 떠올리고 있는 관객들이 하고싶은 말을 영화가 정확하게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영화속 히로코의 절절한 외침은, 첫사랑을 그리워하는 모두의 마음속 외침이기도 하다. 너무나 일상적인 안부인사일뿐인 말을 건넬수밖에 없는 이유는, 첫사랑이란 결코 돌아오지 않는 존재기 때문이다. 다시시작할수 없기에 "널 사랑해"라는 고백도, "나를 사랑하냐"는 질문도 할수가 없다. 다시말해 아무런 미적수사가 없는 저 인삿말이 명대사가 되어 관객의 가슴을 치는 이유는, 그것이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음 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지이 이츠키(남)가 이미 죽었다는 설정은,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극대화시킨다. 이 무렵 병상에 있던 후지이 이츠키(여)는 누운채로 설원의 히로코와 같은 말을 읊조리는데, 그녀는 이때부터 돌아갈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스스로의 감정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한다. 병상에서 첫사랑을 그리는 후지이 이츠코에게도, 설원에서 그를 보내는 중인 와타나베 히로코에게도 죽은 후지이 이츠키(남)는 결코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다. '결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은 첫사랑이 소중한 이유에 대한 설명이기도 하다. 



4.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후지이 이츠키(남)는 전학을 가면서 책을 대신 반납해달라고 후지이 이츠키(여)의 집을 찾아왔는데, 이 때 맡긴 책의 제목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이후 히로코가 이츠키(여)에게 편지를 보낼 때까지, 둘의 인연은 끊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후 이츠키(여)는 과거의 기억들을 모두 끄집어내면서, 인식하지 못했던 그에 대한 자신의 사랑마저 깨닫는다. 사실 이츠키(여)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아직 인정하지 않고 있었을 뿐이다. 그녀가 이츠키(남)를 사랑한적이 없다면 애초에 그 많은 편지들에 답장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눈치챘기에 히로코는 그녀에게 편지들을 다시 돌려보낸다.


학교 사진을 부탁한 히로코를 위해 이츠키(남)와의 추억이 깃든 학교를 찾아가는 이츠키(여)는 그곳에서 그의 죽음에 대해 알고 충격을 받는다. 이츠키(여)가 학교에 찾아가고, 그간의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기록한 것은 히로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스스로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기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인연을 맺은 후배들에 의해, 그녀는 잃어버린 스스로의 첫사랑을 찾는다. 깨닫지 못했던 첫사랑을 되찾고 그의 마음까지 확인한 그녀는, '이 편지는 가슴이 아파서 보내지 못하겠습니다.'라며 그 사랑을 자신의 마음에 묻는다. 절대 돌아갈수는 없지만 언제든 꺼내볼수는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첫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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