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반고기반? 학군지카페는 엄마반아이반
약 2년 가까이 되는 시간동안 나는 월화수목, 그러니까 일주일에 4일을 용산에서 강남으로 ‘출퇴근’ 했다. 셔틀버스가 오지 않았기 때문에 딸을 데려다주고 나면 두시간 남짓한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영화보기, 발마사지 받으러가기, 친구만나기 같은 시도들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몇 번 동네를 맴돌며 방황한 끝에 나는 그 시간을 ‘카페에서 글쓰기’로 채우기로 결정했다.
대치동에는 카페가 참 많았다. 카페도 많고 한의원도 많고 분식집도 많았다. 아마도 카페와 분식집은 학생들을 겨냥한 곳이고, 한의원은 학부모를 겨냥한 곳이겠지 싶었다. 실제로 한의원 앞에는 <대치동 엄마들의 선택> 운운하는 문구들이 붙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세히보니 한약도 대치동엄마들의 선택, 음식도 대치동엄마들의 선택, 학원도 대치동엄마들의 선택이란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있는 것을 본적이 한번도 없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이건 대치동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대치동을 많이 찾아온다는 증거였겠다.
실제로 딸 아이의 학원 특강수업에도 주말마다 기차를 타고 올라와 수업을 듣고 내려간다는 친구가 있다고 했다. 나부터가 대치동엄마가 아닌 이방인이 아닌가. 그러고보면 대치동에 사는 엄마가 혼자서 대치동 카페에 오랫동안 앉아있을 일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노트북을 펼치고 앉아있는 나를 비롯해 책 한권과 학원 상담 책자를 들고 앉아서 지루한 듯 핸드폰을 보고 있는 저쪽 엄마도, 벌써 두 개째 조각케이크를 먹으며 누군가와 아이의 성적에 대한 내용으로 통화를 하고 있는 대각선에 앉아있는 엄마도 대치동주민이 아닐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다행히 스타벅스는 '이방인'에게 가장 관대한 카페 가운데 하나였다. 스타벅스에 들어가니 마음에 안정이 찾아왔다. 뉴욕에서 길을 잃었을 때도, 파리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었을 때도 내 마음에 안정을 주었던 스타벅스니까, 대치동에서도 괜찮겠지. 생각했던 내 선택이 옳았음을 느끼고 안도할 즈음에 내가 주문한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크고 하얀 머그컵에 찰랑찰랑 담겨있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모금 마셨다. 어디선가 ‘이제는 글을 쓸 준비가 되었습니다’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글이 너~~~무 잘써져. 이러다 맨부커상 받으면 어떡하지?”
내 시덥잖은 농담을 받아주던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던 도중이었다. 매일 카페에 갈 경우 내가 쓰게 될 금액을 계산한 것은.
“그러니까 그렇게 매일 가면, 너 빵도 먹잖아?”
“당연하지. 빵 없이 글을 어떻게 써?”
“그러면 대충봐도 한달에 스타벅스에만 16만원이네.”
16만원, 나를 위해 못쓸 금액은 아니었지만 그 돈이면 논술학원 하나를 더 보낼 수 있는 금액이다. 학원을 보내면서 쓰는 부대비용으로 치기에는 분명히 아까운 돈이기도 했다.
다음날, 이날은 반포 삼호가든사거리였다. 반포 학원가도 카페와 분식집이 많은 풍경은 똑같았다. 스타벅스보다 가성비 있는 대안을 찾고 싶었다. 찾을 것도 없었다. 컴포즈커피, 메가커피, 쥬씨, 1000원버블티 가게 등 수없는 가게들이 있었으니까.
문제는 그곳에 들어가도 될 것인가. 그러니까 테이크아웃을 하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자리잡고 앉아있기에는내가 너무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닐까. 너무 ‘민폐’가 아닐까 생각했다. 주로 학생들이 이용하는, 그것도 테이크아웃용일 것 같은 저가카페에 학부모인 내가 떡하니 앉아있는 것은. 학생들이 많은 학군지 도시에는 과일주스와 버블티 가게가 문전성시다 라는 이야기도 자주 전해듣기도 했어서, 학생들로 바글바글할 것이라는 건 합리적 의심이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간 컴포즈 매장은,
오. 물반 고기반이 아니라 엄마반 아이반이었다. (나중에 학원가에서 밥까지 자주 사먹으면서 알게 되었지만 김가네 같은 분식집에도 엄마와 아이가 함께 앉아있는 테이블이 절반 이상이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스타벅스, 메가커피, 학원 근처 카페에 죽치고 앉아있는 엄마는 나 하나뿐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디든 나의 일터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미뤄왔던 글을 잘 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는 글을 쓸테니, 너는 학원에 가거라."
그날 이후로 아이가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학원에 들어갈때마다, 역시나 무거운 옆가방을 짊어지고 나는 그렇게 말하기 시작했다. 어쩐지 동료가 됨으로써 아이의 무거운 짐을 덜어줬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