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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Oct 19. 2022

1. 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에

애 학원 보내고 뭐하세요?

      

당신이 잠든 사이에 라는 영화로 글을 시작한다면, 이 글을 읽을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엄마들은  ‘역시 우리는 같은 세대’라며 웃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 애인의 형제와 새로이 사랑에 빠졌던 산드라블록은 지금 몇 살이나 되었을까. 나 자신만 책임지면 되었던 아름다운 어린 시절에 그 영화를 보았던 나는 이제 초등학생 딸을 둔 엄마가 되었다.      


흔한 경력단절여성. 그게 나였다. 기질이 예민한 아이를 키우느라 직장을 병행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일도 금방 그만 둔 나는 전업주부의 전선에 뛰어들었다. 아이에게 집중하는 것은 보람된 일이었다. 그건 지금도 변함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 이름으로 된 일도 찾고 싶었다. 중간중간 다시 일을 하기 위한 시도도 해보았지만 육아와 병행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럼에도 하루에 단 몇시간이라도,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그때 내가 선택한 일은 아이를 재우고 나서 혼자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산드라블록에게 주어졌던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새로운 남자와 사랑에 빠져버릴만큼 긴 시간이었는데, ‘내 아이가 잠든 사이’의 시간은 굉장히 짧았다. 심지어 내 아이는 잠이 없었고, 낮잠도 거의 자지 않았다. ‘왜 하필 -혼자있는 시간이 절실한-나에게 이런 아이가 왔나요’라고 한탄하기에는 내 아이를 너무나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잠을 줄이는 것을 택했다. 새벽에 혼자 본 영화는 집중이 더 잘되었고, 감동 또한 배로 느낄 수 있었다. 그대로 흘려보내기 아까운 감상들을 블로그에 올리다가 한 책에 영화 에세이 한 편을 싣게 되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책’을 낸 ‘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일의. 책을 내고 문화전문지 객원기자로 일하게 되고, 영화전문 리뷰어가 될만한 기회를 많이 제공받게 되었지만, 영화 시사회를 보러 갈 시간을 내는 것마저 어렵다는 걸 깨닫고는 많은 기회를 저버리게 되었다. 아쉬움만 남긴 채 시간은 흘렀다.   

   

‘아이가 잠든 사이에’는 어려웠지만 ‘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에’는 어쩌면 해볼만하겠다는 걸,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영어나 수학 같은 주요 교과목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알게 됐다.      

두세시간의 완전한 자유. 그건 낯설고도 향기로운 일이었다. 잠을 줄여가면서까지 뭔가를 하려고 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 소중한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압박을 느꼈다.      


아르바이트를 해볼까? 두세시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알기론 없었다.      


살림을 좀 더 꼼꼼하게 할까? 살림을 하루종일 하고싶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강남에 살지도 않으면서 강남으로 학원을 보내는 엄마였다. 셔틀버스도 안왔다. 몇 번은 집에 들러서 집안일을 하고 다시 나오는 일을 시도해보긴 했지만 시간낭비였다. 학원 앞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게 제일 적당했다.    

  

영화관에 간다? 상영시간표와 씨름하며 몇 번 시도해보았지만, 시간이 딱 맞는 영화를 찾기도 어려웠고, 영화보는 내내 긴장이 돼서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한번은 완전히 내 취향을 저격하는 영화를 보고 감동받아 펑펑 울다가, 영화의 엔딩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고 로봇같은 얼굴로 변신해 미친 듯이 학원으로 아이를 데리러 뛰어가면서 ‘현타’가 제대로 왔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차라리 제대로 휴식을 하자. 이건 꽤나 좋았던 선택이었고 요즘도 종종 하는 선택이다. 물론 학원 근처에서 어디 누워서 쉴수는 없을텐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누워있을 수 있는 곳이 있었다. 학원 근처에 지점을 내고 있는 마사지전문체어 ‘세라잼’에서 운영하는 세라잼카페였다. 거기에는 안마의자가 여러대 누워있었고, 약 40분 가량 마사지를 받고 나면 뭉쳤던 근육이 다 풀리는 기분이었다. 직원들도 친절했고 강매하는 분위기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자주가기엔 눈치가 보였다. 세라잼을 하나 사면 좋았겠지만 곧 학군지로 집을 좁혀 이사할 예정이었기에 안마의자를 놓을 공간 따위는 사치였다.  자연히 발길을 줄이게 됐다.  


세라잼 대신 진짜 발마사지를 받으러가기도 했다. 분명 기계보다 사람이었고, 무료보다는 유료가 좋았지만, ‘비싼’ 학원에 보내놓고 ‘비싼’ 마사지를 받으며 대기한다는 것은 평범한 주부에게는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가끔은 실컷 마사지를 받고와서는 죄책감 때문에 오히려 어깨가 뭉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해서, 이 역시 적당한 대안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못만났던 친구들을 만나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때라는 3040시기를 함께 통과하고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나만큼 바빴고, 시간을 맞춰서 얼굴 보는 일도 어려웠다. 


결국 하던 일을 해야겠구나. 어쩌면 가장 하고 싶었지만 사치라고 생각했던 그 일을.      


그렇게 나는 대치동 스타벅스에서 연애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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