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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Oct 30. 2020

남의 엄마가 만든 음식을 버리지 맙시다

엄마의 샌드위치



고등학생 때 걸스카우트였다. 일년 남짓. 아니 일년도 못채우고 그만뒀는데 학년통합으로 운영되는 걸스카우트반에 나를 싫어하는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는 내 외모, 내 성격, 그 외 많은걸 트집잡았다. 아직도 날 싫어한 이유를 모른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이 형성될수있을만큼 같이 뭘 한것도 아니었으니까. 아무튼 그 언니가 나에게 신체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한 건 아니었고 우리의 인연은 굉장히 짧았지만, 만약 그 언니가 유명연예인이라도 됐다면 나의 폭로를 걱정할 정도는 됐을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의 괴롭힘은 분명히 있었다.


일년에 한번. 홈커밍데이였나. 기억도 안나는 어떤 행사를 준비할 때였다. 나는 1학년이었고, 1학년들은 음식준비를 맡게됐다. 우리는 각자 음식을 하나씩 맡아서 싸오기로 했는데 수박 과일 같은 것처럼 편한 것도 있고 김밥, 샌드위치처럼 손이 많아가는 것도 있어서 공평하게 종이에 적어 제비뽑기를 하기로 했다. 나는 샌드위치에 당첨됐다. 샌드위치는 종류가 엄청 많다. 그 언니에게 괜히 책잡히기 싫었던 나는 샌드위치의 종류를 정확히 정하자고 했고, 모두가 논의한 끝에 호불호가 없고 간단한 햄치즈샌드위치를 만들어오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식빵에 햄치즈를 넣고 만드는 샌드위치는 누가해도 별다른 맛의 기복이 없는 음식이다. 엄마와 함께 집 근처 파리바게트에서 식빵을 잔뜩 사왔다. 열봉지 정도 샀던 것 같다. 실패해서 재료가 모자라게 될 수도 있다는 게 대용량 음식을 준비할 때 가장 부담되는 점이니까. 모든 재료를 넘치게 준비했다.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는 엄마와 도란도란 시간을 보내는 시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준비가 재미있었다. 샌드위치용 햄도 사고 노란 치즈도 샀다. 안에 바를 허니머스터드나 마요네즈도 잔뜩 준비했다. 집에 돌아와서는 커다란 유산지를 거실 바닥에 깔아두고 본격적으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뽀얗고 보들보들한 식빵을 두 장 꺼내 한장에는 햄 한장, 치즈 한장을 겹쳐 깔고 반대쪽 식빵에는 준비해둔 소스를 바른다. 이후에 두 장을 겹쳐 붙이고, 칼로 식빵의 갈색꼬투리 네 군데를 깨끗하게 잘라내기만 하면, 누구나 좋아하는 햄치즈 샌드위치가 완성이다. 그렇게 만든 샌드위치와 꼬투리 몇개를 집어먹고, 나는 학원에 갔고 엄마 혼자서 나머지 샌드위치를 모두 만들었다. 엄마는 혼자 100개 정도의 샌드위치를 만들어야 했다.


집에 돌아왔을 때도 엄마는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었고, 그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나는 100여개의 샌드위치가 커다란 통에 가지런하게 담겨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우리 엄마는 요리를 즐겨했지만 손이 큰 편이 아니었다. 그래서 힘들었던 것 같다. 엄마는 잠도 거의 못잔 것 같았다. 지금 내가 내 딸을 위해 샌드위치 100개를 준비하는 임무를 맡는다고 상상해봐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모두의 입맛에 안맞지는 않을지, 음식이 운반 중에 상하지는 않을지, 어디에 담아갈지 등등 만든 음식을 어딘가에 가져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게 엄마가 정성껏 준비해준 샌드위치를 실어서 학교로 갔다. 특별활동 시간이 됐고, 1학년들이 준비한 음식을 2학년 언니들과 함께 진열하기 시작했다. 강당에 놓인 큰 테이블에 샌드위치를 비롯해 김밥, 닭강정, 수박, 과자 등등을 잔뜩 늘어놓으면서 기분이 들떴다. 나를 미워하는 언니가 내가 가져온 엄마의 샌드위치를 제일 구석진 자리에 두었다. 그 모습을 못본 척 하기 위해 음식진열을 멈추고 일부러 진열대에서 먼 곳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친구들이 내 옆으로 다가와 허리를 쿡쿡 찔렀다. 그들이 손으로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자, 그 언니가 엄마의 샌드위치를 쓰레기봉투에 붓고 있었다. 뽀얀 샌드위치가 절반 이상, 아무의 손길도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쓰레기봉투에 버려졌다.


시선을 눈치 챈 그녀는 잠깐 당황하는가 싶더니 “너무 양이 많아서 테이블에 둘 곳이 없어서 버렸다”고 얼버무렸다. 눈물이 얼마나 났는지, 화장실에 가서 울어버렸다. 그 순간 이후부터는 그날의 행사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집에 돌아온 후 “샌드위치 맛은 괜찮았니?”, “남거나 모자라지 않았니?”라고 묻는 엄마에게 대충 대답하고 방에 들어와 울었던 기억만 생생하다. “음식을 버렸다”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다음주였던가, 나는 걸스카우트를 바로 그만두었다.


나는 나빴던 기억은 애써 생각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샌드위치 사건은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졌다. 엄마가 샌드위치를 자주 만들지 않는다는 점도 내가 그 기억을 잊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그 눈물의 샌드위치 기억이 소환된 것은 뜻밖에 수 년이 흐르고 난 뒤 벌어진 ‘안흥찐빵 사건’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한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었는데, 회사에서 꽤 여러명의 인원이 함께 안흥 지역에 출장을 간 일이 있었다. 안흥에 있는 어떤 공장견학을 마치고 나오는데, 그 곳 사장님이 직원 모두에게 안흥찐빵을 한 박스씩 보내주시겠다고 집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만류했지만 회사로 내 몫의 찐빵 한박스가 배달되었다. 당시 나는 서울 집에서 나와 회사 근처 광화문에 있는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었는데 그래서 일단 그 찐빵을 집으로 가져다 두었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로 눈코뜰새없이 바빴기 때문에 그 찐빵을 개봉도 못하고 하루가 흘렀고, 때마침 반찬을 갖다주러 들렀던 엄마에게 -전화로-찐빵을 가져가 드시라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추운 날이었는데도 그 찐빵들이 몽땅 상했었던 모양이었다. 주말이었나, 엄마아빠를 만나러 갔을 때 그 사실을 엄마가 장난처럼 말하려는데 아빠가 눈치를 주며 막았다. ‘상해서 몽땅 버려버린 네가 준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피하고 싶은 주제다. 하물며 ‘몽땅 버려버린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어땠을까. 나는 이 얘기를 아직도 엄마에게 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면 우리엄마가 내 친구들에게 해줬던 음식들은 언제나 인기가 있었다. 하교길에 우리집에 들렀다가 엄마표 부침개를 맛보고는 우리집에 살고싶다고 말했떤 친구들도 여럿이었다. 그런 우리 엄마의 샌드위치를 맛도 보지 않고 통째로 버렸던 그녀에 대한 기억을 나는 억지로 버렸지만 이렇게 생각이 날 때면 분노의 크기는 결코 줄어들지 않았음을 느낀다. 내가 엄마가 되어, 사먹어도 되는 음식들을 굳이 손수 만들어주는 그 이유와 기분을 너무 잘 알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어쩌면 고등학생 시절보다 더 화가나는 것 같다. 어떤 이유가 됐든,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버리는 건 정말 나쁘다. 지금 간혹 친정에서 얻어온 음식이 버거울 때가 있는데-대부분 각종 김치류-어떻게든 볶아서라도 대부분 소진해서 먹는 건 그때의 기억 때문인 것 같다. 요즘은 시댁반찬이라든지, 친정반찬이라든지 ‘사먹으면 된다’고 하면서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 같다. 소풍 때 김밥도시락을 싸는 것도 사서 먹으면 훨씬 맛있고 편하다든가, 심지어 매일 먹는 집밥조차도 사먹고 시켜먹으면 더 경제적이고 맛도 있다고 하는 말들도 많이 듣는다. 일견 수긍이 가기도 한다. 무엇보다 바쁜 엄마들의 노동력을 대신해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그걸 굳이 반대하고 드는 것은 의도가 불순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밥’이 갖는 가치가 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합리적인 이유를 댈 수는 없다. 그냥 그건 어쩐지 너무 슬프다는 이유에서다. 엄마밥은 소중하다.


사진은 얼마전 내가 만들어먹은 샌드위치 과정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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