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youngjoo Nov 01. 2019

노들서가집필작가선정이 내게 준 것들

이제는 다양한 레고를 만들고 싶다

     

브런치에서 준 기회로, 노들섬 일상작가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호기심과 설렘을 안고 찾아간 작가 오리엔테이션에서 다른 작가분들도 만났다. 몇몇과 브런치 주소를 교환했고, 들어가본 브런치에는 멋진 글들이 수없이 업로드 되고 있었다.      


간단히 가졌던 자기소개의 시간에서,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이런 저런 멋진 작품과 활동들로 답변을 내놓는 다른 브런치작가들의 면면을 들으며, 나는 무엇이라 스스로를 소개해야 하는지 선뜻 떠올리기 어려웠다. 결국 몇년 째 '애를 보고 있다'고 답하는 것만이 유일하고도 솔직한 답이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놀랐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내 스스로는 바쁘게 하루를 꽉 채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바쁘게 사는데, 내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하나도 없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노들섬 노들서가에 전시된 <영주의서재>     

브런치와 노들섬에서 준 기회가 아니었으면 결코 불릴 일이 최소 몇년 간 없었던 나의 이름이 무려 ‘전시’된 것을 보고 벅찬 기분이 들었다. 식상한 설명이지만 나는 오랫동안 ‘무명’, ‘누구 엄마’였다.      

보통 나의 하루는 이렇다. 아이를 학교와 학원에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을 한다. 중간에 먹일 간식, 밥을 요리하고, 먹이고, 치운다. 학교와 학원 숙제를 챙기고, 아직 학원에 다니고 있지 않은 수학 연산 문제집을 풀리고, 키가 조금이라도 더 크라고 줄넘기를 700개씩 시키고, 레고만들기나 그림그리기 같은 아이의 취미를 함께 한다. 이런 일들은 나 역시도 엄마와 했던 것들이어서 한번씩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곤 한다.     

 

어릴 때 나는 레고만들기를 좋아했다. 설명서에 나온대로 멋진 레고작품을 만드는 것도 물론 즐겼지만, 그보다 더 즐겼던건 그 레고들을 다 부순 다음 내 마음대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거기에 이야기를 붙이며 노는 일이었다. 주로 만들곤 했던 레고집의 형태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만든 레고집들은 아주 좁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좁은 집에 물건들을 다 욱여넣는다는 설정을 주로 썼다. '너무 가난해서 집이 아주 좁고', '이 좁은 집에 책상이나 침대 등을 아주 과학적으로 옹기종기 밀어넣고', '많은 식구가 어렵지만 열심히 살아간다'는 식의 스토리텔링을 주로했었다. 그때 나는 이미 알았던 것 같다. 평범한 이야기보다는 약간은 불우한 이야기가 더욱 드라마틱하고, 그래서 감동을 줄 여지가 많다는 것을.    

 

그런데 실제로 우리 집은 그렇게 가난하지 않았다. 나는 서울의 적당한 동네에서, 적당한 아파트에서 살았다. 유학을 보내달라기에는 죄송스럽지만 과외 정도는 당당히 시켜달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어정쩡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스토리'가, '글'이 되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좁은 레고집을 만들던 그 때부터 쭉 생각해왔던 것 같다. 가난하거나 역경이 있는 스토리에 예술성과 감동이 깃든다는 생각은 나만의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함을, 박완서 작가의 <도둑맞은 가난>을 읽고 더 확신했다.      


그런 정도의 예술성을 획득할 수 없다면, 아주 크고 높은 레고집을 지어보면 어떨까. 그래서 오래도록 기다리기도 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살림살이만큼이나 극적인건 펜트하우스, 캐비어, 와인 한잔이 등장하는 글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런 것들이 일상이 되는 일은 내게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Bill, I believe this is killing me” As the smile ran away from his face.

“Well I’m sure that I could be a movie star, if I could get out of this place”

(“빌, 난 이 삶이 날 죽이고 있는 것 같아”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난 진짜 무비스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해. 내가 이곳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말이야”)     


내가 좋아하는 빌리조엘의 <피아노맨> 가사다. 가사 속 화자는 늘 노래의 주인공인 빌(피아노맨)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술담배에 찌들어 있지만 가슴 속에는 영화배우가 되고싶다는 꿈이 남아있었던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그 꿈에 ‘자신의 삶을 벗어났을 때에’ 라는 가정을 붙였고, 그 꿈은 평생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은 작은집도, 큰집도 기다리지 않겠다. 지금 내가 사는 곳에서 시도해보겠다. 그 다짐을 격려해주고, 이 글이 전시될 공간을 내어준 노들서가에 감사드린다.


(이 글은 10월의 ‘글세’로 노들서가에 제출한 글입니다.)

노들섬 놀러오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