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youngjoo Nov 28. 2019

내게 가장 소중한 것

너무 좋은 건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없습니다

  

유명한 박카스 광고의 카피가 있습니다.     


“왜 엄마라는 경력은 스펙한줄 되지 않을까?”     


이 문구에 누구보다 공감했습니다. 정말 바빠죽겠고, 인생의 어느때보다 내적성장을 하고 있으며, 쉴새도 휴일도 없이 열심히 사는데 왜 이 시간은 경력이 되지 못할까.     


저의 경우 아이가 어릴때 진짜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유난히 잠이 없는 아이였고 예민한 아이였습니다. 심지어 남들보다 빨리 애를 낳아서 ‘대충할건 대충하자’는 얘기도 듣지못하고, 그야말로 ‘정석’대로 애를 키웠습니다. 산후우울증도 분명 있었고 정신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시선이 두려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한번은 밤중에 생명의전화에 전화를 걸어서 “애 키우는게 너무 힘들어서 죽고싶어요” 라고 털어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는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했는데, 내가 한 선택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어 한다는 게 부끄러웠고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새벽에 카톡목록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지인들의 프로필사진과 프로필문구를 구경하고 있는데, 일할 때 직장에서 나를 예뻐해주셨던 여자상사의 프로필사진과 문구가 바뀐게 눈에 띄었습니다. 그 내용은 이랬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가 그립다....>     


그 문구와 함께 딸, 아들의 어릴 적 사진이 프로필로 지정되어 있었습니다. 무언가로 얻어맞은 기분이라는게 뭔지, 그때 제대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지금에 충실하지 않으면, 미래에는 지금 내가 느끼는 그 어떤 후회보다도 격한 후회로 힘들어질것이라는 강한 깨달음을 왔습니다. 또 다시 후회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육아합니다.     


어쩌면 이제 애가 커서 그때보다는 몸이 편해져서일수 있지만. 엄마들이 육아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시간을 이겨내야할 시간, 극복해야 할 시간, 지나가야할 시간으로 규정하는 것은 안타깝습니다. 저는 지금 글을 쓰고 읽는 중이지만, 아이를 만나는 순간 글쓰기도 생각도 모두 멈춥니다. 아이와 밥 먹을 때면 아이와만 눈맞추기 위해 노력합니다. 나중에 커서 아이가 핸드폰만 보면 지금을 후회할지도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렇게 지금에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으면서도, 빈둥지증후군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사실 이런 류의 감정에 대해 엄마들만 걱정하는 건 아닙니다. 오랜 연애 끝에 헤어진 사람들이 그 시간이 의미없게 느껴지는게 가장 힘들다고들 말하는데 그것도 같은 맥락이고요. 직장을 퇴직하고 스스로가 사라진 것 같다고 하는 것도 같은 얘기입니다. 하지만 의미없는 시간은 없습니다. 모든 중요한 것들은 그 과정속에서 경력이 안되는, 기록으로 남길 수 없는 것들에 있습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최근에 다시 봤습니다. 평생 일했던 라이프지가 폐간되면서, 마지막호 표지사진을 제대로 전달받기 위해 떠난 월터의 여정에 대한 얘기입니다. 어쩌면 월터는 퇴사를 앞두고, 그간 일했던 게 의미 없다고 느껴질 지도 모릅니다. 오래 일했던 회사에서 정리해고당하는건, 어쩌면 오래 올인했던 자녀가 내 품을 떠났을 때 느껴지는 감정과 비슷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면서 지냈던 시간 자체가 그에게는 인생이었습니다.     



월터는 사진작가 숀을 만나기 위해 그린란드, 아이슬란드를 거쳐 히말라야까지 갑니다. 거기서 사진을 찍고 있는 숀을 발견했을 때, 둘 앞에 보기드문 눈표범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순간이 왔는데도 숀은, 카메라 앵글로 그것을 들여다보기만 할 뿐, 아무리 완벽한 각도가 잡혀도 셔터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그때 숀이 한 말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때는 안찍어. 아름다운 순간이 오면 카메라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저 그 순간 속에 머물고 싶지. 그래 바로 저기 그리고 여기.>     


너무 좋은 건 찍어서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지금 9살짜리 딸과, 사진으로 남기지 않아도 될만큼 소중한 순간에 머무르는 중입니다.




지난 주 금요일 노들서가에서는 일상작가들의 네트워킹프로그램으로 낭독회가 열렸습니다.

그곳에서 낭독했던 글을 11월 노들서가 글세로 제출하면서 이곳에도 올립니다.


작가의 이전글 노들서가집필작가선정이 내게 준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