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eyoungjoo Jan 07. 2020

너무 커서 슬픈 고구마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아이와 함께하는 겨울방학에는 두가지 빠져서는 안될 필수품이 있다. 그건 고구마와 귤이다. 두가지 다 반드시 박스째로 준비해야 함은 기본중의 기본이다.


나는 고구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고구마를 먹느니 차라리 감자를 먹는, 내 주위에서는 보기드문 감자파였다.

그런데 내 아이는 고구마를 정말이지 너무 사랑한다. 고구마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고, 나는 맛있는 고구마를 고르는 스킬이 한없이 부족한 엄마였다.


언제나 이론은 충분했다. 나는 스타벅스 알바를 하려고 바리스타자격증부터 검색해본, 나름 학구파엄마다. 고구마는 잔털없이 매끄러운 것이 맛있고, 껍질이 얇고 벗겨짐이 없는 것이 좋다고 한다. 무른 것은 좋지 않고 색상이 선명하고 진한 것이 맛이 좋다. 그리고 갓 수확한 것보다는 수확한지 한달 정도 되어 후숙된 고구마가 달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을 백번 봐도, 고구마를 사놓으면 잘 먹지도 않는 나는 좀처럼 맛고구마고르기스킬이 늘지가 않았다.


결국 리뷰가 많은 고구마를 그때그때 구입하는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는데도, 딸은 대부분 맛있게 먹어줬다. 너무 맛있다고, 엄마도 좀 먹어보라며 김치와 우유를 번갈아 추가요청하는 딸의 성화에 몇번 고구마를 베어물기는 했지만 언제나 내 성에는 차지 않았다.


그런데 올 겨울에 드디어 인생고구마를 만났다.

그 배달고구마를 배달시킨 것은 남편이었다. 리뷰가 엄청 많은 무슨 자연 유기농 어쩌고 하는 농장에서 주문한 것이라고 했다. 박스를 열어보니 고구마가 엄청나게 크고 흙도 많아 비주얼이 별로였다. 게다가 고구마가 너무 커서인지 반으로 뚝뚝 부러뜨려 박스에 겨우 넣어둔 것들도 몇개나 있었다. 고구마가 반으로 잘려 희노란 속살이 훤히 보이는 것이 어쩐지 첫인상이 별로였다.


(제일 큰거 몇개꺼내먹고나서 찍어둔 고구마사진. 평소에 먹던 고구마들보다 훨씬 컸다!)

(이렇게 잘려있었다. 이게 우리집에서 제일 큰 냄비인데 반으로 뚝 자르지 않으면 절대 냄비에 들어가지도 않는 큰 고구마)


”이번에 시킨 고구마 어때?”


”고구마가 너무 커. 삶기도 힘들듯. 그리고 막 잘려있는데.”


”고구마가 큰 게 많아서 몇개 그런게 있대. 대신 많이 넣어줬다던데. 먹어봐.”


고구마가 정말 테트리스 하듯이 꽉 맞춰져있어서 성의가 느껴졌다. 바로 꺼내서 몇개는 삶고, 몇개는 광파오븐에 구웠다.


향이 너무 좋아서 먹어본 고구마는, 내 인생고구마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구마 하나를 헤치웠다. 심지어 하나를 더 먹었다.


이렇게 맛있는 고구마를 첫인상에서 타박했다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문득 고구마의 성장과정에 감정이입이 됐다. 고구마는 무럭무럭 크는게 좋은 거라고 배웠기에 무럭무럭 자라려고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양분을 많이 빨아들이고 빗물을 흡수하는 성장에의 노력 와중에, 너무 커서 사랑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 같은 건 해본적 없을 것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서 크게 자랐는데, 요즘 인간들의 식습관 트렌드가 하필 너무 커다란 고구마는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어느 순간 형성된 것은 고구마의 탓이 아니다. 고구마의 계획에 없던 그런 트렌드에 맞추느라 기껏 열심히 키운 몸이 반으로 뚝부러지고, 상품성없는 고구마 취급을 받으며 오히려 여러개를 더 끼워줘야 하는 처지가 됐을 때 왕고구마의 심정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았다.


정도를 지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결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너무 맛있어서였을까 아니면 힘껏 자라고도 모난 취급당하는 고구마가 가엾어서였을까. 늘 몇개는 남겨 버리곤 했던 고구마박스를 이번에는 하나도 남김없이 싹 비웠다.





작가의 이전글 내게 가장 소중한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