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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youngjoo Jun 11. 2018

허트로커-왜 하필이면 '폭발물 제거반'의 이야기인가

(스포일러 포함되어있습니당) 



1. 전장의 '일상'(비일상) vs. 평범한 일상


일상과 비일상의 대비는, 영화 <허트로커>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서사방식이다. 폭발물해체와 휴식, 다시 해체와 휴식을 반복하는 이러한 서사구조는 일상과 비일상을 대비해보여주려는 장치이다.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는 이는 전쟁에 적합하지 않다는 사실은, 극 초반 작전수행중 죽음을 맞이하는 톰슨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장난끼많고, 현실의 많은 것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전장에서도 햄버거나 잔디 같은 것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톰슨은, 휴대폰을 들고 있는 행인을 저항세력으로 바로 의심할 수 없었기에 죽었다. 반면 제임스는 일상을 믿지 않기에-그에게는 전쟁이 일상이기에-조금이라도 의심가는 행인이 있으면 바로 저항세력으로 간주하고, 그렇기에 그는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후반부에 일상으로 돌아갔던 제임스는 마트에서 시리얼을 고르는 것에 어려움을 느낄만큼 '평범한 일상'에 결코 적응할 수 없는 사람인데, 그를 이렇게 만든 것이 '전쟁에의 중독'이라는 것은 자명하며, 그가 어린 아들을 앞에 두고 읊조렸던 "어른이 되면 좋아하는 것들이 점점 줄어든단다. 내 경우에는 하나(전쟁) 뿐"이라는 대사는 그래서 처연함을 자아낸다. 


(조금만 눈 돌려도 곁에 이런 사람들이 있는데, 일상적인 사고방식을 영위한다는 건 힘든 일일 것이다.) 


2. '21세기의 전쟁'을 현실감있게 그려냈다


<허트로커>에는 웅장한 전투씬이 등장하지 않는다. 죽는 사람들이 나오긴 하지만 피튀기는 혈투같은 것도 보기 힘들다. 하지만 이런 점들을 두고 '전쟁영화답지않다'고 평을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영화 <허트로커>는 철저히 현대적인 전쟁의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21세기, 더 이상 전쟁은 강대국간의 혈투가 아니다. 핵보유국들이 현존하는 오늘날, 총력을 쏟아부은 육탄전은 더 이상 존재하기 힘들고, 전쟁은 강대국과 힘없는?세력간의 국지전의 형태로 존재할 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들은 중동 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고, <허트로커>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라크전도 그렇다. 



3. 리버티(자유) 대신 빅토리(승리) 


작전수행 중 사망한 톰슨을 대신해 새로 부임한 제임스는 수백여 폭발물을 제거한 폭발물제거전문가이다. 그런 그를 맞이하며 샌본은 "빅토리(victory)기지에 온 걸 환영합니다"라고 말을 하고, 제임스는 "리버티(liberty)부대 아닌가?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라고 답한다. 이에 샌본은 다시 "얼마전에 바뀌었습니다. 빅토리가 더 듣기 좋다고 해서"라고 말하는데, 이는 자유라는 가치를 지킨다는 명목보다는, 승리 자체에 대한 집착으로 변모한 전쟁의 이유를 비꼬아 표현한 것이다. 이는 '변모'를 꼬집어 비판하는 것일수도 있고, 애초부터 명분보다는 '승리 자체'가 목적이었던 냉전기 이후 미국의 개입주의적 면모에 대한 풍자일수도 있다. (덧3,참조.)



4. "영어를 못한다고? 거짓말 하지 마!"


영화를 보다보면, 제임스나 앨드리지, 샌본과 군의관 등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이 철저히 미국인의 전형적인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전쟁으로 인해 극도의 공포심을 느끼던 앨드리지가 결국 제임스의 작전을 수행하다 다리를 다치고 본국으로 이송되면서 제임스에게 "목숨을 살려준건 고맙지만, 우리는 그 작전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울부짖는 장면은 소름끼칠만큼 직접적으로, 미군의 제국주의로 고통받는 자국민들의 입장을 대변한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을 것이 두려워 아이를 갖기 싫은 척 하는 샌본, 예일대를 나온 엘리트로 "현장경험이 없다"는 앨드리지의 도발에 전장에 나왔다가 사망하고 마는 치기어린 군의관 등도 모두 상징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허트로커>에서 캐서린 비글로우가 가장 공들여 그린 '미국인'은 역시 주인공인 제임스다. 제임스는 철저히 미국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런 그의 사고가 가장 극명히 드러나는 장면은, 베컴을 찾기위해 부대 안 dvd 장사꾼을 총으로 위협해 함께가는 시퀀스다. dvd 장사에게 영어로 베컴의 근황을 물어본 제임스는, 그가 영어를 할줄모른다는 말을 믿지않고 계속해서 영어로 질문을 한다. 이후 도착한 집에서도 "영어 할줄 아냐"는 질문만 계속해서 퍼부어대는 그의 모습에서, 감독이 제임스를 미국인의 어떤 특징을 갖춘 인물로 묘사하고자 했는지가 극명히 드러난다. 




 


5. 왜 하필이면 '폭발물 제거반(EOD)'의 이야기인가


한 장면, 한 대사도 버릴 게 없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폭발물제거반의 일원들이라는 사실도 역시 의미가 있다. 이들이 제거해야 하는 폭발물이란, 땅속이나 기타 다른 곳에 '숨겨져 있는 위험'들이다. 미국이 이라크를 선제공격하면서 내건 명분-잠재된 위험의 제거-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영화는 맹목적으로 폭탄을 제거하려는, 유능한 요원이지만 전쟁중독자로 정상적인 일상적 사고를 하지 못하는 제임스의 모습을 통해 지나친 개입주의로 전쟁을 일으키는 미군의 모습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제임스가 "이제껏 성공한 작전수행(폭발물제거)이 873번"이라고 말하는 위의 장면은, 이같은 시각에서 보면 미군의 쓸데없는?개입주의로 일으킨 크고작은 분쟁이 '873번'에 육박할 만큼이나 셀수없이 많다는 것을 비난하는 장면같다. 영화가 개봉했던 2008년 당시(물론 지금까지도) 미군의 선제공격은 전세계적인 비난을 받았고, 2015년 현재는 IS를 만든 것이 미군의 개입주의라는 비난도 일고 있는 점을 볼 때, 영화의 이같은 풍자는 유의미한 것이다. 


실제로 제임스는, 영화속에서 정작 중요한 사건이 있을때마다 실패하고 만다. 앨드리지 말마따나 "하지도 않아도 될 일을 괜히 해서는" 고락을 함께했던 동료의 다리를 못쓰게 만드는가 하면, 자식이 넷이나 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구해주지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물러날 뿐이다. 이처럼 영화 속 제임스는 수많은 폭발물을 제거하지만, 그가 제거하는 데 성공한 폭발물들은 대부분 땅 안에 있던 것들이고-실제로는 그런 것들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영화속에서 '숨겨진, 보이지않는 폭발물'이라는 것이 갖는 상징성이 분명 있다-, 정작 눈앞에 닥친 가시적인 위험상황에서 제임스는 대부분 실패했다. 제임스를 전쟁광으로 만들고, 끊임없이 가시적인 위험을 제거하는 일에 실패하는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영화 <허트로커>는, 최근(?)에 가장 돋보이는, 독보적인 전쟁영화임이 분명하다. 


(많은 이들이 무서운 장면으로 꼽는 제임스가 땅속에 숨겨진 폭발물을 한꺼번에 들고 있는 아슬아슬한 장면은, 현실에 대응해 생각해보면 더욱 섬뜩한 장면이다.)



덧1. 처음에는 좀 지겨운 감이 있다. 이유는 서사구조에 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몇개의 커다란 장면들이 나열되는 느낌인데, 연결이 유기적이라기보다는 일의 진행-휴식-일의 진행-휴식의 반복이라는 느낌을 준다. 캐서린 비글로우는 그림을 전공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각 시퀀스는 하나의 그림같은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후 하나도 버릴 시퀀스가 없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소름이 돋았다. 


덧2. 영화의 감상기는 나의 정치적견해(?)와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밝힌다. 국제정치와 전쟁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일정한 입장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sns에서 나의 정치적인 생각을 드러내지않을 생각. 그것과는 별개로 자국의, 그것도 현재진행형인 사태?를 이렇게 영화로 그려낼 수 있는 문화적 역량에는 감탄할수밖에 없다. 


덧3. 2001년 9월 11일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난 뒤 2002년 1월 미국은 북한, 이라크,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다. 그 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함으로써 자국민 보호와 세계평화에 이바지한다는 대외명분을 내세워 동맹국인 영국 오스트레일리아와 함께 2003년 3월 17일 48시간의 최후통첩을 보낸 뒤, 3월 20일 오전 5시 30분 바그다드 남동부 등에 미사일 폭격을 가함으로써 전쟁을 개시하였다. 작전명은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이다. (덧3 의 출처는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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