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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Sep 30. 2024

어머니의 수면 내시경 검사

[소소해도 행복한 걸 어떡해?]

어머니께서는 이년마다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으신다. 이제는 연세가 있으시니 건강 검진을 하실 때면 신경이 많이 쓰인다. 어머니께서는 매번 내시경 검사를 받으실 때마다 그 과정을 많이 힘들어하셨다. 편하게 받을 수 있는 수면 내시경 대신 일반 내시경 검사를 고집하셨기 때문이다. 수면 내시경 검사에 추가되는 몇만 원의 자기 부담금이 아깝다는 이유였다. 어머니는 조금 힘들어도 그냥 일반 내시경 검사를 받겠다고 고집하셨다. 내가 검진 비용을 내겠다고 해도 어머니는 쓸데없는 돈 낭비라며 고개를 저으셨다.     


“내가 조금만 힘들면 되니까 굳이 수면 내시경을 할 필요는 없다. 돈은 아껴야지.”     


아들로서 어머니가 검사 때마다 많이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수면 내시경을 권유해 드렸지만, 어머니는 늘 나의 걱정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고집을 부렸다. 어머니께서 편안하게 검사를 받으셔야 한다고,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으시라고 다시 한번 강하게 말씀드렸다. 한바탕 입씨름이 벌어진 후에야 다행히도 어머니는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으시기로 동의하셨다. 내심 놀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검사 당일, 어머니는 대부분의 건강 검진을 마치시고 마지막 내시경 검사를 위해 준비하셨다. 팔에 주삿바늘을 꽂고,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시던 어머니의 표정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잠시 후 검사실 간호사가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고, 어머니는 걱정 섞인 표정으로 간호사와 함께 검사실로 들어가셨다.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보호자 대기실에 있던 나에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사는 언제 해요?”     


“할머니, 검사 끝났어요. 이제 가시면 돼요.”     


“아니, 검사는 언제 했어요? 거짓말도 참....”      


어머니는 아직 검사를 받지도 않았는데, 가셔도 된다는 간호사의 말에 짜증이 나신 듯했다.     


“할머니 주무실 때 내시경 검사를 다 끝냈어요.”     


“내가 잤다고요? 난 잔 적이 없는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기실에서 이 대화를 듣고 있던 나는 어머니와 간호사의 실랑이가 더 이상 길어지지 않도록 회복실에 들어가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그리고 어머니께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해 드렸다.     


“어머니, 검사실에 들어가셔서 침대에 누우셨을 때, 검사하시는 분이 팔에 꽂은 주바늘에 약물을 넣으셨죠?”     


“그래. 뭔가가 팔에 들어가더라.”


“어머니는 그때부터 잠이 드셔서 내시경 검사를 받으신 거예요. 한 삼십 분 정도 걸렸어요.”     


“벌써 삼십 분이 지났다고?”     


“네, 어머니. 시간을 한번 확인해 보세요.”     


어머니는 그제야 신기한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자신에게 벌어진 상황을 파악하신 듯한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어리둥절한 기색이 가득했다.     


“뭐 이런 일이 다 있냐? 난 그냥 침대에 누웠다가 일어난 게 다인데 벌써 검사가 끝났다니? 그거참 신기하네?”     


어머니는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것을 경험한 듯한 눈빛으로 말씀을 이어가셨다. 그렇게 수면 내시경 검사를 처음 받아보신 어머니는 검사 자체보다 그 과정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욱 신기해하셨다. 나는 어머니의 이런 반응에 웃음이 나왔다.     


“괜찮으세요? 어지럽거나 몸에 무리는 없으세요?”     


“그런 건 없어. 아무렇지도 않아.”     


“그러니까 제가 매번 어머니께 편안하게 수면 내시경을 받으시라고 말씀드렸던 거예요.”     


* 일러스트 출처 : chatGPT


어머니는 그제야 미소를 지으시더니, 지금껏 고집을 부리며 일반 내시경 검사를 받아오셨던 지난날들을 떠올리시는 듯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번 검사를 계기로 어머니는 다음부터는 무조건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으실 것이란 사실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머니는 처음 접해본 수면 내시경 검사에 대한 경험을 반복해서 이야기하셨다.      


“내가 정말 잠든 채로 검사를 받았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네. 그동안 왜 고집부렸는지 모르겠어. 이렇게 쉬울 줄 알았으면 진작에 했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니까요, 어머니. 다음번에도 꼭 수면 내시경 받으세요. 힘들지 않게 편하게 검사받으시면 좋잖아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이번 검사를 통해 어머니는 자신의 고집을 내려놓으시고, 좀 더 편안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꼭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셨다. 앞으로 조금 더 편안하게 검진을 받으실 것이다. 이제는 어머니와 내시경 검사 때문에 입씨름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의 한숨이 밀려왔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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