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인 어느 날 큰딸이 퇴근하면서 스티로폼 상자를 들고 집에 들어왔다. 추석을 맞아 무용을 배우는 학생의 어머님이 가족들과 함께 먹으라며 왕새우를 보내주셨다고 한다. 큰딸은 작은 엔터테인먼트 기획사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무용을 가르치는 강사로 일을 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동네 횟집에서 왕새우 튀김을 즐겨 먹었는데, 아쉽게도 그 횟집이 작년에 폐업한 이후로는 왕새우를 먹을 일이 없었다. 스티로폼 상자의 뚜껑을 열자, 왕새우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렇게 고마운 일이 있을까.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집에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왕새우 요리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버터갈릭왕새우라는 메뉴가 눈에 띄었다.
“오늘 저녁 요리는 버터갈릭왕새우야. 맛있게 만들어줄 테니 기대해.”
“와우!”
새우요리를 좋아하는 딸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망치지만 말고 잘 만들어봐.”
배고픔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와 함께 아내와 딸들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저녁 요리가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왕새우 손질은 처음이었다. 머리를 자르고, 껍질을 벗겨냈다. 꼬리 쪽 껍질은 먹을 때 손잡이용으로 남겨두었다. 이쑤시개를 이용해 등에서 내장을 뽑아냈다. 서툴게 손질하는 내 모습을 본 아내가 많이 답답했는지 두 팔을 걷어붙이며 거들기 시작했다. 그래,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손질이 끝난 왕새우에 올리브유와 소금, 그리고 약간의 올리고당을 넣어 밑간을 했다. 비닐장갑을 끼고 왕새우를 주물럭거렸는데, 손끝에서 느껴지는 물컹거림에 닭살이 돋았다. 혹시 아내와 딸들이 이 모습을 본 건 아닐까, 눈치를 살피며 슬쩍 주위를 둘러봤다. 밑간이 끝난 왕새우를 잠시 재웠다. 내 입에는 이미 군침이 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프라이팬을 달구고 버터와 다진 마늘, 파슬리를 넣고 왕새우를 볶기 시작했다. 버터가 녹아내리며 풍겨오는 고소한 향이 코끝을 자극했고, 그 향이 온 집안을 감싸며 퍼졌다. 왕새우는 노릇노릇하게 익어갔고, 딸들은 기대감에 가득 찬 표정으로 주방을 기웃거렸다. 배고픔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는 요란해지기 시작했다.
‘고소한 향만큼 맛도 좋으면 좋겠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왕새우가 익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완벽한 요리가 되기를 바랐다.
나는 요리를 할 때 정해진 레시피를 철저히 따른다.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맛이 달라지는 것을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시피에 나온 양념의 비율이나 순서를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한다. 내가 이렇게 요리를 할 때마다 아내는 늘 입버릇처럼 말한다.
“간을 봐가면서 요리를 해야지. 어떻게 레시피에만 맞추려고 해?”
그 말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요리를 할 때마다 레시피에 의존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아내는 경험과 감각을 믿지만, 나는 정해진 틀 안에서 안심하고 요리하는 초보요리사였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아내는 한숨을 쉬곤 했다.
“그렇게는 못해. 나한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 안 해? 간까지 맞춰가며 요리를 할 줄 알면 달인 아니야?”
매번 반복되는 입씨름이지만 우리가 주고받는 레퍼토리는 항상 변함이 없다. 정해진 대로 해도 이상한 맛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거기에 간까지 맞춰가며 요리를 한다는 것은 내겐 아직 무리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잘 만들지는 못하지만, 가족들이 남기지 않고 잘 먹어주면, 그것만으로도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버터갈릭왕새우가 완성된 후,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 앉았다. 접시에 담긴 왕새우를 보고 딸들이 감탄을 내뱉었다.
“아빠, 진짜 맛있어 보인다! 진짜 아빠가 한 거 맞아?”
딸들의 감탄과 의구심이 교차했다. 이 반응은 오늘 만든 왕새우 요리가 성공했음을 의미했다.
아내도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음, 이거 진짜 괜찮은데?”
왕새우는 먹음직스러울 정도로 고소한 버터 향과 노릇노릇 알맞게 익은 쫄깃함이 어우러졌다. 불안했던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이었다. 아내와 딸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함께 왕새우를 먹기 시작했다.
집에서 하는 요리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레시피에 맞춰 정확히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요리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무더운 여름날의 끝자락에서, 왕새우 덕분에 우리 가족은 함께 웃으며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특별한 날은 아니었지만, 왕새우와 함께한 저녁은 우리에게 소소한 행복과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