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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Sep 19. 2024

열심히 vs 잘

[소소해도 행복할 걸 어떡해?]

직장 생활 10년 차 무렵이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며칠간 밤낮으로 공들여 준비한 기획안을 들고 상사의 방을 찾았다. 상사는 내 기획안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하나하나 수정이 필요한 부분을 짚으며 피드백을 시작했다. 상사의 지적을 듣는 동안, 서로의 생각 차이가 분명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나는 상사의 말을 경청하며 수정 요구를 받아들였다. 피드백을 마친 상사는 나를 바라보며 한마디 던졌다.

     

“우리 잘 좀 하자.”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대답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러자 상사가 한숨을 쉬며 다시 말했다.      


“아니, 열심히 말고 잘 좀 하자고.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달라.”


그 말에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다르다니.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하루 종일 그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는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며 직장 생활을 해왔다. 그러나 상사의 한마디는 그 믿음을 단숨에 무너뜨렸다.


그날 밤 나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 것일까? 상사와 회사가 나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지금까지 이런 고민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일까?


어릴 적부터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언제나 열심히 하라고만 말씀하셨다. 그들은 노력하는 것이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내가 자라면서 들어온 일종의 덕담이자 격려였다.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믿음이 생겼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에도, 선배들은 언제나 열심히 하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세상은 열심히 노력만 하는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 사회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했고,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찾아내는 영리한 사람을 더 높이 평가했다. 무작정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똑같은 결과를 낸다면, 열심히 노력하지 않더라도 더 효율적이고 영리한 방식을 찾는 사람이 인정받는 시대가 된 것이다.


상사와의 그날 대화는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주어진 일을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보다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게 되었다. 밤새워 일하는 대신, 일과 시간 내에 업무를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혼자 해결하려 애쓰기보다는 팀원들과 협력하고 조언을 구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도 항상 말했다.


“열심히 하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사회생활에서는 무조건적인 노력이 아니라, 일의 결과를 높일 수 있는 효율적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여전히 열심히 노력하면 잘하게 된다는 믿음을 버릴 수 없다. 노력하는 것은 나의 근본적인 가치관이자 지금까지 삶을 살아오면서 힘이 되어준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 노력이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문득, 이재규 감독의 영화 <역린>에서 나온 '중용 23장'의 문구가 떠오른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 나오고, 겉에 베어 나오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 일러스트 출처 : chatGPT

   

어떤 일을 하든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 갈등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최선을 다해 정성스럽게 임한다면 그것이 바로 잘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열심히 하는 노력은 분명 의미가 있다. 나는 지금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잘하는 사람인가?’

     

우리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잘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열심히 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이 둘은 따로가 아니라 결국 하나의 길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노력하되, 올바르게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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