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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Oct 07. 2024

단지 근교 나들이일 뿐인데...

[소소해도 행복한 걸 어떡해?]

늦은 오후,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요즘 날도 좋은데 내일 콧바람이나 쐬러 나가자.”     


“네? 갑자기요?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으세요?”     


“가고 싶은 곳이 따로 있는 건 아니야. 그저 바람 좀 쐬고 싶다는 거지.”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말씀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고관절 수술 이후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어머니께서는 나들이하시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매일 아버지를 간병하셔야 했고, 바깥세상과의 접촉도 점점 줄어들었다. 어머니께는 답답한 일상을 잠시나마 잊을 기회가 필요하셨던 것 같다.     


“알겠어요. 다만, 제가 허리가 안 좋아서 운전을 오래 못하니 가까운 근교로 가시죠. 점심을 먹고 바람도 쐬고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내일 오전에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고 나서야 부모님께서 얼마나 오랜 시간 외출 없이 지내셨는지 실감이 났다. 부모님은 장사를 하시던 시절에는 누구보다도 활기찬 생활을 하셨다. 재래시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여행을 자주 가는 상인회 모임에도 빠짐없이 다니셨던 분들이었다. 그런 분들이 지금은 집에서만 지내시고, 가까운 동네 산책이 일상의 전부가 되었으니 답답함이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음 날, 부모님과의 점심 약속을 위해 아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두 분은 이미 나갈 준비를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부모님의 모습이 마치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나는 오늘의 일정 계획을 말씀드렸다.     


“오늘은 수락산에 있는 전통 가옥 식당에서 쌈밥을 먹고, 근처 대형 카페에서 차 한잔하는 걸로 잡아봤어요. 괜찮으세요?”     


어머니는 평소 채소를 좋아하셔서 쌈밥이라는 메뉴에 흡족해하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썩 만족스럽지 않아 보였다. 아버지는 야채보다는 고기를 더 좋아하시는 분이었지만, 어머니의 의견을 따르시며 별다른 불만을 드러내지 않으셨다. 나이가 들수록 남자들은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는 말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그 말이 실감 났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은 이미 차들로 빽빽했다. 우리는 대기 번호를 받고, 잠시 기다리며 수락산의 경치를 감상했다. 시원한 바람과 눈 부신 햇살이 일상에서 쌓였던 피로를 씻어주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느끼는 여유로움에 부모님께서도 만족스러워하시는 듯했다.


우리의 순서가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이내 다양한 쌈 채소와 숯불에 구운 고기, 삼색 찰밥이 식탁 위에 가득 차려졌다. 평소 입맛이 까다로우신 어머니는 모처럼 밥그릇을 다 비우실 정도로 맛있게 드셨다.      


“오늘 생전 처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늘 한결같은 어머니의 익숙한 칭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아버지도 식사 내내 미소를 지으셨다. 오랜만의 외출에 두 분 모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근처 대형 카페로 향했다. 주차장은 사람들로 가득했고, 주문을 기다리는 줄도 길었다. 어머니께서는 카페 안의 붐비는 풍경을 보며 말씀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순전히 먹자주의야. 저축은 하고 하나?”     


“어머니도 별걸 다 신경 쓰세요.”     


나도 그 말을 듣고 잠시 웃었다. 요즘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간다. 풍요로움 속에서 자란 지금의 성인들은 한국전쟁 이후 부모님 세대처럼 먹고 살기 위해 일만 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카페는 캠핑 테마로 꾸며져 있어서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 부모님을 모시고 온 자녀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이런 곳에 와 본 적이 없는 걸 떠올리며, 마음 한편으로 죄송한 감정이 들었다. 부모님은 아마도 더 많은 시간을 나들이하며 보내고 싶으셨을 텐데, 그동안 나의 무관심 때문에 그러지 못했던 것 같았다.     


“앞으로는 자주 오자고요. 큰 카페들이 요즘 여기저기 많아요. 볼거리도 많고 좋잖아요.”     


어쩌면 아버지의 수술을 핑계로 내가 더 움츠러들고 부모님과의 외출을 소홀히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서 답답해하셨을 일상과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순간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오늘처럼 부모님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이 작은 순간들이 부모님께 작은 위안이 되었기를 바랐다.


그날의 나들이는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일상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작은 행복이었고, 나에게는 아들로서 부족함을 성찰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는 더 자주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바람을 가슴에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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