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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엉짱 Oct 24. 2024

그건 번아웃이었어.

[소소해도 행복할 걸 어떡해?]

출근길, 늘 그렇듯 나는 지하철의 붐비는 인파 속에서 마치 콩나물시루의 한 줄기 가냘픈 콩나물처럼 허우적거렸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그 좁은 공간에서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사람들의 숨으로 채워진 탁한 공기가 코를 찌를 때면, 힘들더라도 차라리 한두 시간 더 일찍 나올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언젠가부터 갑갑한 지하철 속에서 나의 몸은 심상치 않음을 알리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은 답답해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억지로 숨을 쉬려 했지만, 공기는 목구멍에서 딱 멈춰버린 듯했다. 갑자기 온몸의 힘이 쭉 빠지면서 눈앞은 점점 흐릿해졌다.      


‘내리면 안 돼, 이제 곧 회사야.’     


‘아니야, 지금 내려, 당장!’


머릿속에서는 힘들어하는 마음의 소리가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결국 나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덜덜거리는 다리로 플랫폼 의자에 주저앉았다. 가쁜 심호흡을 하며 몸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그러고 보니, 이런 일이 자주 있었다. 지하철을 타거나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갑자기 숨이 막히고, 몸이 무거워졌다. 머릿속이 백지로 변해버리고, 눈가엔 알 수 없는 눈물이 고였다. 나는 이런 증상을 무시하려고 애썼다.      


“뭐,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스트레스잖아.”     


나 자신을 위로하며, 다시 그 빡빡한 출퇴근길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 일러스트 출처 : chatGPT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나는 직장에서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보고서를 내일 아침에 볼 수 있도록 마무리해 줘.”     


상사들은 매일 재촉하기에 바빴다. 주말도 없는 출퇴근길에서 나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그리고 또 출근하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내 머릿속은 오롯이 회사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렇게 나는 늘 바빴다.      


“오늘은 좀 괜찮았어?”     


집에 돌아오면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그 질문에 대답할 에너지도 없었다. 나의 일상은 그저 버티기였다. 직장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그날만을 위해 살아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삶이 점점 더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가장 큰 문제는  자신도 이 상태가 번아웃이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TV에서나 듣던 번아웃은 나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나는 그저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겪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인사고과가 진행될 때면 나는 그야말로 절망에 빠졌다. 연간 목표를 초과 달성했는데, 돌아온 것은 그저 잘했다며. 다음 해에도 기대한다는 말뿐이었다. 보상은커녕, 더 많은 기대와 압박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료들도 불만을 쏟아내기는 마찬가지였다. 회사는 우리에게 계속해서 요구만 하고, 정작 우리는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중간관리자로서 나는 상사와 동료들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버렸다. 상사들은 더 많은 일을 요구하고, 동료들은 불만을 토로하며 원망의 눈빛을 보냈다.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갔고, 나는 점점 무력해졌다. 입에 약을 달고 살게 되었고, 지친 몸을 이끌고 매일 출근하는 일이 고역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벗어나고 싶었다. 이 모든 스트레스와 압박, 그리고 나를 짓누르는 현실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이게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나는 그저 생계유지를 위해 회사에 다니고 있을 뿐, 내 삶에 행복은 어디에도 없었다. 출퇴근길의 스트레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괴롭히는 성과에 대한 압박. 이 모든 것이 나를 지치게 했다. 나의 몸과 마음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내가 무시했던 몸의 신호들은 나를 돌봐달라는 외침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다는 몸의 항의에, 나는 그제야 휴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당시 내가 겪었던 것은 분명 번아웃이었다.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스트레스는 쌓여갔고, 결국 나를 무너뜨렸다. 회사에서 인정받기 위해 달리던 나의 모습은 어느새 초라해졌고, 나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으로 전락했다.


결국 나는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 더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기회가 생겼을 때 그 직장을 떠났다. 그때는 두렵고 혼란스러웠지만, 어쩌면 그것은 앞으로 닥칠 위험으로부터 나를 구해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뒤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돌보는 시간을 가졌다. 회사와 일에만 집중하던 나의 삶에서 벗어나,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지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행복이란 과연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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