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여러 작품에서 본 소재들이다. 소심한 남자와 적극적인 여자의 만남.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남자는 적극적인 여자에게 반하고 결국에는 서로 사랑하게 되지만 결말은 먹먹한, 예를 들어 '4월은 너의 거짓말','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같은 작품들이 생각난다. 그리고 주인공이 '선행성 기억상실증'으로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설정은 이미 익숙하다. 그래도 내가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이런 류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감동받았고 어떤 식으로 그들의 감정을 표현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 없는 히노 마오리에게 고백을 하게 된 것은 그에게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런 장난같은 고백을 그녀가 받아준 것은 더 놀라운 일이었다. 어쨌든 둘은 조건부 연애를 시작하고 가미야 토오루와 히노 마오리의 인생은 180도 달라진다. 가미야 토오루는 하루하루가 설레게 되고 히노 마오리의 일기는 행복으로 가득찬다. 처음에는 좋아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히노 마오리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재미없는 세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그녀는 가미야 토오루에게 빛이었다. 그래서 조건부 연애로 시작하고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그였지만 오히려 더 잘해주고 진심을 다하게 된다.
바로 결말로 넘어가면, 그런 노력 덕분이었을까? 히노 마오리의 선행성 기억상실증은 놀랍게도 치료가 된다. 그렇지만 가미야 토오루는 이미 심장병으로 죽은 뒤였다.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가미야 토오루에 대한 기록을 모두 지우지만 그녀가 계속 그렸던 크로키는 그녀만 아는 '소중한 것은 소중한 곳에' 남겨져 있었고 그것을 통해 가미야 토오루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 사실에 아파하지만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져서 상처받고 아프다고 해도 가미야 토오루를 끝까지 기억하기로 한다.
1. 시점의 변화
보통 책을 보면 이야기를 서술하는 주인공이 있거나 작가가 3인칭 시점에서 쓰여 마련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서로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고 어떤 감정이었는지를 가미야 토오루, 히노 마오리, 와타야 이즈미, 이렇게 3명의 시점으로 서술하는 사람을 바꿔가며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가? 한 사람의 감정만 알고 다른 사람의 감정은 추론하면서 보는 것보다 한 가지 사건에 대해 주인공이 아닌 주변의 사람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고 어떤 감정과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보니 더욱 뭉클해지고 더 많이 공감되었다.
2. 병에 걸리지 않은 주인공의 갑작스러운 죽음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음에도 굉장히 충격적이었던 것은 내가 본 작품들에서는 모두 병에 걸려있던 주인공이 죽었기에 병과 아무 상관이 없어 보였던 가미야 토오루가 갑자기 죽은 것은 충격이었다. 가미야 토오루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와 살고 있다는 것부터 떡밥이었다. 건강했고 행복한 일만 가득했던 가미야 토오루였고 그가 정말 죽었다는 것이 히노 마오리의 선행성 기억상실증이 나았다는 이야기 다음에 나왔기에 더 안타까웠다. 앞으로 행복할 일만 남은 그가 죽은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이 부분부터 책이 더 빠르게 넘어갔고 더욱 몰입되었으며 마지막 챕터를 보기 전, 벽을 바라보고 멍때리면서 심호흡을 했어야 할 만큼 정말 슬펐다.
작품에서 '황혼'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무렵을 황혼이라 하지만 '너의 이름은'에서도 그렇고 일본 작품에서 황혼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바로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황혼에 만난 가미야 토오루와 히노 마오리의 장면에서 이미 슬픈 결말을 예언한 것이었다. 중간중간에 이런 결말에 대한 떡밥은 계속 나온다. '우리는 언젠가 헤어지겠지만'라는 표현과 히노 마오리가 가미야 토오루를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어째서 눈물이 멈추지 않는 거지?' 이런 표현들은 두 사람이 결코 행복한 결말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행복한 결말을 바랐다...
그래도 슬픈 결말 속에 히노 마오리가 상처를 안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묘사는 마음의 상처로 힘든 사람들에게 분명 와닿을 것이며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감동적인 책을 찾는 사람 또는 마음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