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려고 성공하고 싶은 이유를 찾다.

다시 읽고 다시 쓰기 8)

by 작가 이윤호

누구나 자존감이 높아지기를 원한다. 성공은 자존감을 높여준다. 높아진 자존감은 더 많은 성공을 위한 기반이 된다. 그렇기에 누구나 성공하고 싶어 한다. 나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우리를 성공에 목메게 한다. 그래서 이뤄낸 성공 끝에 무엇을 원하는가. 돈? 명예? 행복한 삶? 또한 당신의 성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나 자신을 위해? 아니면 다른 사람을 위해? 누군가는 성공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가차 없이 버릴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성공은 타인을 동반해야 가치 있는 일 일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성공하고 싶고 그 성공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어릴 때 내가 공부를 열심히 한 이유는 눈치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부부에게 첫째는 엄청난 관심의 대상이다. 부모님들도 부모님이 처음이기에 어떤 방향이 옳은지 모른다. 그렇기에 유독 첫째에게 엄격하다. 내 형이 그랬다. 받아쓰기를 조금 틀렸다고 혼났고 성적이 좋지 않다고 혼났다. 나는 그런 형을 보고 혼나기 싫어서 눈치껏 공부했다. 다행히 내 성적은 좋았다. 중학교 때 나는 전교 2등으로 졸업을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냥 무조건 공부만 했다. 내 삶에서 노는 시간이라고는 매주 1번 돌아왔던 2시간 게임 시간이었고 밤늦게 학원이 끝나고 친구들이랑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야기하는 것이 전부였다. 핸드폰이 있었지만 진짜 급한 일이 아니면 쓰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웹툰과 유튜브도 중학교를 졸업하고서 처음 봤던 것 같다. 내 특이점이라고 하면 책은 읽지 않았고 시험에 필요한 교과서만 다 외웠다. 역사 선생님이 서술형 채점을 하다 나에게 어떻게 교과서 있는 그대로 썼냐는 말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정도로 교과서를 다 외웠다. 문제는 교과서만으로 사회적 상식을 채우기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보고 자란 것은 사회가 아니라 교과서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말 다행인 것은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친구는 생겼고 서로 싸웠을 때도 내가 먼저 화해하자고 해본 적도 없다. 불행인 것은 그렇기에 나는 친구를 사귀는 방법도 잘 모르고 잘 헤어지는 방법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친구가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공부'라는 매개체뿐이었다.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적이 떨어지면 주변 사람들이 사라질까 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내가 그들의 기대를 항상 맞춰야 한다는 불안감으로 주변에서 알아주는 고등학교를 갈 수밖에 없었다.


=> 다시 쓰기) 뭐든지 적당히가 중요한 것 같다. 균형잡힌 식사만큼 균형있는 공부가 필요하다. 이전의 공부란 일상생활을 하며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얻는 성취를 의미했다. 시간이 지나 현재의 공부는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거나 익히는 것에 불과해졌다. 사실 노는 것조차 공부다. 노는 것에서 특별한 경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공부다. 그렇지만, 현재는 노는 것과 공부는 다르게 여겨진다. 우리는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 공부를 확대해서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거나 익히는 것만으로는 사회생활을 하기에 어렵다. 넓은 의미의 균형잡힌 공부만이 인성을 기르고 사회생활을 잘 하는 법을 알려줄 수 있다. 이것은 현재의 공부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내가 본 천재들은 다 잘할 때도 있었다. 사회생활, 공부, 운동. 등등 모든 것을 불공평하게 잘했다. 그렇지만 그들도 처음부터 익숙했던 것이 아닌 경험을 통해 다 배운 것이다. 학문을 익히는 것에만 집중한 것이 아닌 주변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사회의 아이들은 미래를 위해 좁은 의미의 공부뿐 만 아니라 넓은 의미의 공부, 즉 일상생활에서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균형잡힌 공부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넘쳤다. 하지만 내가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는 것을 아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 열심히 했지만 내신등급이 4점대 위를 올라갈 수가 없었다. 물론, 수시보다는 정시로 대학교를 많이 보내는 학교이기에 불안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수능을 위한 기본적 베이스도 없었다. 암기를 위한 공부만 되어있고 읽고 이해하는 공부는 부족했던 것이다. 정시와 수시 둘 다 놓칠 수 있는 상황이 왔을 때 나는 일반 고등학교를 가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 내가 원한 선택이 아니었다고 다른 사람들을 원망한 적도 있다. 그 와중에 나는 중학교 때부터 같이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어떤 사건으로 전학을 갔다. 그전까지는 어떻게 친구를 사귀는지 모르지만 친한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하지만 그 친구와 멀어지게 된 이후의 나는 다시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만 했다. 다행히 호기심이 많았던 다른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줬고 나는 다른 사람이 좋아할 만한 말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새로운 사회에 적응해갔다. 그렇지만 내가 하는 사회생활은 내가 없고 타인을 위한 것이었다. 나의 생각보다는 무조건 다른 사람이 먼저였다. 본인에게 맞지 않는 거짓된 가면을 쓰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 가면은 항상 벗고 싶지만 더 이상 벗을 수없는 것이 되었을 때 나는 매일매일이 힘들었다. 의지하고 싶어졌다. 누군가 내가 무너지지 않게 잡아줬으면 했다. 이기적이지만 그렇게 사귄 친구가 있다. 처음 내가 먼저 다가간 친구였다. 그렇지만 그 친구와 싸웠을 때도 내가 먼저 화해를 시도해본 적이 없었기에 먼저 다가갈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그 친구와도 오해가 쌓인 채 먼저 이야기를 걸어보지도 못하고 멀어져 갔다. 나는 더 이상 내 가면을 유지할 힘이 없었다. 그 친구에게 느끼는 죄책감이었고 나를 좋아해 준 사람들에게 상처만 줬기에 힘들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잊고 잘해보고자 간 대학교에서도 많은 친구를 사귀었음에도 언제 그런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동시에 그때의 감정이 떠올라 대학생활을 하기 어려웠다. 그 후 내 삶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를 철저히 사회에서 소외시켜갔다.


=> 다시 쓰기) 멋대로 기대한 것도 나였고 실망한 것도 나였다. 그리고 솔직한 마음을 듣고 싶지 않아 피했던 것도 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후회하며 살았다. 도망쳤던 것을 후회했다. 그렇지만 그 일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났어도 나는 그대로였다. 결국, 그때의 나에게 그 선택이 나의 최선이었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쉬워보였을 뿐이고 아쉬웠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변했을 것이라며 신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기를 빌었다. 그 기회가 왔을 때 나는 예전 그대로였다.


만약 나를 끝까지 믿어준 친구들과 나를 밑바닥에서 끌고 올라와준 친구들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죄책감과 의미 없는 반성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나의 성공의 기준에는 항상 타인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이 없는 성공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타인을 위해 성공하고 싶은 내가 싫었다. '그래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뭔데?'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나를 위한 삶을 살자고 다짐했다. 목적이 '나'였으면 했다. 목표도 '나'를 위해서 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그 생각이 잘못됐음을 알았다. 타인을 위해 성공하고 싶은 나는 사실 누구보다 나를 위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을 돕고 도움이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이 내가 느끼는 행복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결국 나는 언제나 나를 위한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던 글도 사실 나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글이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간절한 글이었다. 나는 이런 문구가 정말 마음에 든다.


'나를 위한 글이 다른 사람에게도 위안이 되기를...'


=> 다시 쓰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찾기로 했다. 부모님이 원해서 하는 공부가 아닌 나를 위한 공부를 원했고 주변의 기대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삶을 살고자 했다. 그러나 이미 나는 나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주변의 기대가 없는 삶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보여주는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인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힘들 때 나의 이야기와 나의 말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세상이 재미있어졌다.


이것이 내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내가 얼마나 잘 해낼 수 있는지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정말 힘들었던 내 삶에서 내가 느낀 성장의 감정을 다른 누군가도 느꼈으면 한 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았을 때 사람이 얼마나 열정적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힘들다고 잠깐 쉬어가는 사람은 있어도 포기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한다. 나는 어릴 때 약간의 언어 장애가 있었다. 그래서 머릿속으로 말을 떠올리고 뱉으려 하지만 말이 안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그렇다. 그런 내가 중학교 때 처음 전교 1등을 하고 전교 회장이 되었을 때 나는 '이만하면 되지 않았을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한 것 같은데', '언어 장애가 있던 내가 이 정도까지 했으면 정말 많이 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모든 것을 놔도 되는 이유를 합리화한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했으면 그만하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지고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보여줘도 않을까? 이제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싶은지도 명확히 알았다. 분명한 목표가 생겼기 때문에 단단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흔들릴 때가 분명히 있다. 꾸준히 공부하기 힘들고 포기하지는 말라고 하면서 포기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실패가 많아질수록 자존감은 낮아져 가고 목표가 점점 낮아지고 사회와 합리화하며 바뀌어 간다. 다른 사람을 위하자고 하면서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는 짜증 낼 때도 있다. 정말 위선적으로 보일 때도 많다. 그러면 어떤가.


도종환 시인의 작품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우리도 흔들리기에 인간인 것이다. 돌고 돌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만 있다면 많이 흔들려도 좋다. 부러지지만 않을 수 있다면 많이 흔들리는 것이 오히려 안전하다. 흔들리는 경험이 나를 더 익숙하게 만들고 그것이 숨 쉬듯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흔들리자. 내가 성공하고 싶은 이유를 찾고 그 이유를 위해 달려가는 삶은 반드시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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