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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Aug 16. 2023

지난 일기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아침 출근 택시 안,  두 시간밖에 못 잔 터라 다른 날보다 훨씬 피곤한 상태였지만 차 안에서 잠이 오질 않아 함께 일하는 동생에게 말을 꺼냈다.   



나 새벽에 일기를 읽다가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일기를 멈췄다. 

어느 순간부터 꾸준히 쓰지 않았던 최근 일기는 19년부터 이어져 23년이 되어서야 드디어 막을 내렸고 

한참 활발히 이야기를 담았던 작년에 이어 새 일기장엔 더 이상 한 사람의 이름을 남기면 안 되겠다 싶어 일기를 멈춰버렸다. 


일기는 멈췄으면서도 브런치엔 글을 쓴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긴 하지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절대' 삭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 가끔 너무 솔직하게 담아놓은 이야기들이 부끄러워 삭제 버튼을 눌러버리곤 한다. 

그러면 그 감정들이 한순간에 모두 사라져 버리고 다시는 쓸 수 없는 이야기가, 영영 없던 말들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손글씨로 담았던 일기는 어떤 부끄러운 이야기든 초등학생 때부터 고스란히 담겨 오래된 고물처럼 한구석에 담겨져 있다. 


볼 사람이 없으니 나의 생각과 감정에 그 어느 때보다 솔직했던 그 손글씨 일기를 멈췄었다.


그리고 며칠 전 새 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지난 일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참 열심히 기록해놓은 이야기들이 웃기기도 잊고 있었던 그날이 떠오르기도 해서 오그라들기도 하고 

마냥 재밌었다.     





그런 적이 있더랬다. 

넓은 공간을 가득 메우는 음악 한 곡에도 괜히 신경 쓰였던 적이





사소한 농담과 이야기에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뚝딱이가 되기도

작은 배려 하나가 스윗하게 느껴지기도 

'낮이라 차분한 거다'라는 말에 '이 모습도 멋있는데?'라는 별거 아닌 말을 보낼까 말까 고민한 적도 

혼자 커튼을 치며 구시렁거리는 소리에 순간적으로 쳐다보다 '어? 잘생겼네?'라는 생각이 들어 '진짜 미쳤구나' 한 적도  

그곳에 있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이 느껴져 아쉽기도 했던,,

sns 업데이트 소식이 반가우면서도 걱정되기도 했던 그런 시간들이 있었다. 


가끔 '여기 도청장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생각이나 말이 읽힌 것 같아 놀랐던 적도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를 할 수 있을까 기대했다 크게 실망하기도

나름 티 안 낸다고 노력했지만 이미 친한 지인들에게 모두 들통나버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큰 의미 두지 않기' 가 시무 1조로 정해졌던 생각해 보면 우습고도 재미있는  날들. 


일기장에 세세하게 남겨놓은 이야기가 참 웃기다. 잊고 있었던 순간과 이야기들을 정성스레도 써놨구나. 

이래서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라는 옛날 노래가 있는 건가. 지우기 쉬워야 하니까. (어른들은 역시 현명하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내가 그 사람이 귀엽다는 것이다. 지난주 토요일 빼빼로도 줄 겸 일 얘기도 할 겸 오픈 시간에 맞춰 찾아갔는데 출근 전이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창밖을 보니 퉁퉁 부은 얼굴로 흰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날 **사장이랑 뭘 먹었다는데 술인가 보다. 힘들다면서 밤새 노는 건 더 힘들지 않나? 

근데 그런 꾸미지 않은 모습이 그냥 더 귀여워 보였다. 늘 넘기고 있던 머리를 내린 것도.


자기가 받은 빼빼로를 주길래 선물 받은 걸 주는 거냐며 챙겨온 거 못 주겠다 하자 자기 것도 있냐며 환하게 웃었다. 기브 앤 테이크니 달라며. 


                                                                                                                      - 11월의 어느 날.




문득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오후 일정으로 인해 시간이 빠듯했지만 그날따라 하필 오픈 시간이 늦어져 계속 시간을 체크하며 기다렸던 날이다. 


이러다 정성스레 챙긴 빼빼로를 못 주는 건 아닌지 걱정하던 찰나 나타났던 퉁퉁 부은 얼굴과 처음 보는 내추럴한 모습에 '귀엽다' 생각한 날이라 읽으면서도 웃겼다. 

근데 누구나 센티해진다는 새벽이라 그런가. 


진짜 우습게도  지난 일기를 읽다가 순간 나도 모르게 울어버렸다.





자기 주려고 포장지 산 것도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들 네 개 줄 때 너는 배로 담았다는 걸 알기나 할까. 
가장 예쁘게 완성된 것들만 골라 넣었다는걸. 
우리가 어찌 될지도 모르면서,
내 감정 하나 제대로 파악도 못하면서 
널 보러 갈 때면 옷매무새 하나 신경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너는 알까.  
아마 영영 모를 거야.




지금도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울컥한 건지 모르겠다. 

웃으면서 보다가 갑자기 울어버리다니,,

심지어 내 스스로도 머리와 다르게 행동하는 내 모습이 당황스러워 "미쳤니?" 했다.    


몇 개월 전 내가 안쓰러웠나 보다. 몇 개월 더 산 나는 지금의 결말을 아니까.  

친구 말에 의하면  "그럴 수도 있지." 

원래 누굴 좋아할 때 이야기가 제일 재밌는 법이다. 응원하고 존중하는 사람이었다면 더더욱. 


단 일기에 제일 마음에 안 드는 한 부분이 있다면, 짝사랑이라도 좋으니 나에게도 설레는 일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조건 따지지 않을 테니 그냥 오랜만에 사랑에 빠져 설레고 싶다 일기에 적었던 것.!


'역시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고 실수를 반복하지.' 


지난 일기를 모두 읽어본 결과 그냥 재미없는 일상이 차라리 나은 거였어. (어후, 좋은 것만 써놔서 그렇지 뒷담화도 엄청 해놨다구!! 답장도 느리지, 짝사랑하기엔 얼마나 얄미운 나쁜 남자인데~~ 나 바보같은거 숨겨야 해서 못 쓰는 이야기들,,) 



올해 23년에 적은 이야기까진 차마 더 읽을 수가 없었던.


매일 매일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던 그런 일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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